유브 갓 메일

휴지통에서 건진 남자

by 오렌


지속되고 꽃 피우기를 소망했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부 모임은 중단되었고, 고독한 생활 가운데 ‘이미 작가’로서의 운명을 바라보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요. 우선 메일함은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비워야 합니다. 불필요한 메일을 계속 쌓아두면 데이터센터가 이를 보관하기 위해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게 되고, 결국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불필요한 메일을 삭제하는 것으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니! 메일함을 열어서 쌓여있는 메일들을 삭제했다. 대부분은 불필요한 스팸성 메일이라 주의 깊게 보지 않고 휴지통 아이콘을 클릭, 클릭해서 게임을 하듯이 지워나갔다. 평소에 안 하던 휴지통에 까지 들어갔다. 휴지통에는 수년간 쌓인 메일들이 페이지를 거듭하면서 쌓여있었다. 어차피 버린 메일들이라 확인할 필요도 없어서 쭉쭉 스크롤을 내리면서 무심하게 삭제, 삭제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한 줄의 글이 눈에 띄었다. 스팸 메일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볼드체와 형광빛 칼라, 화려한 이모티콘들의 행렬 사이에서 아무런 강조도 하지 않은 무미건조한 휴먼고딕체가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잘 지내시지요?

그 역시 별 의미 없는 광고성 메일일 수도 있었지만, 보낸 사람 이름을 확인하자 세 글자의 평범한 이름이었고, 무엇보다 ‘작가님’이라는 단어에 이끌려서 클릭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강한솔이라고 합니다. 오래전에 작가님이 운영하셨던 홈페이지를 장기 구독하던 애독자예요. 당시 제가 작가님 홈페이지에 글 남길 때 썼던 아이디가 ‘푸른 바다’였지요. 웹에서 우연히 작가님 연락처를 보게 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메일 보내봅니다. 언제나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멀리서 강한솔 드림


‘오래전’이라는 것은 정말로 오래전이었다. 이십 년이나 전인,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이 편지는 강한솔이 5년 전에 보낸 메일이었고, 내가 스팸 메일인 줄 알고 확인도 하지 않고 휴지통에 버린 지 5년이나 지난 편지였다. 그러니까 5년 전에 쓴 편지가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영화의 소재로 진부하게 쓰이는 설렘 가득한 설정이 내 삶에 등장한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 그렇게 우연히 휴지통에서 건진 메일 한 통에 영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5년 전에 온 편지라 답장을 쓸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이런 일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마음 가는 대로 답장을 썼다.


안녕하세요? 한솔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5년 전에 쓰신 걸 지금 확인했어요. 이제야 답장을 쓴다는 게 좀 이상한 것 같아 쓸까 말까 몇 초간 고민했지만 반가운 마음만큼은 전달하고 싶었어요. ‘푸른 바다’도 한솔님도 아쉽게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한솔님이 우연히 제 연락처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메일을 쓰셨듯이 저 또한 우연히 메일함에서 발견한 한솔님의 안부 메일이 참 반가웠습니다.


답장이 올지 안 올지 궁금했다. 메일 계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읽는다면 답장이 올 것이고, 아니면 안 오겠지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메일함에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강한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한 독자의 이름에 이만한 반가움을 느낀다는 것이.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달나라쯤 되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오직 강한솔의 메일만이 유일한 연락처 같았다. 어제의 클릭보다 더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0과 1의 이진코드로 표현된 컴퓨터 텍스트는 종이에 쓴 손 편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어제보다 긴 편지에 읽기 전부터 행복해졌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답장이 와서 놀랐어요.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를 기억 못 하시는 건 당연해요.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까요. 오렌공작실이었죠? 홈페이지 이름. 그때 제가 학생이었고 홈페이지 만드는 과제 때문에 개인 홈페이지를 검색하다가 찾게 되었어요. 깔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홈페이지 소개 글에 ‘오렌지를 좋아하고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고 되어 있었지요. 그림일기를 연재하셨는데,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_-;;) 따뜻한 감성이 참 좋아서 그때부터 3년 정도나 계속 드나들며 보았었더랬죠. 책이나 영화에 대한 후기도 즐겁게 챙겨봤고 올려주시는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어요. 바흐의 골덴베르크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셔서 찾아서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걸그룹 노래만 듣던 제가 처음으로 클래식 CD를 샀어요. 글렌굴드가 연주하는 골덴베르크인데 아직도 듣고 있답니다. 졸업하고 취업해서 바쁘게 지내는 동안 잠깐 못 들어갔다가 다시 접속해 보니 홈페이지가 없어졌더라고요. 뭔가 에러가 났나 하고 이후에도 가끔 접속해 봤는데, 계속 없는 홈페이지라고 해서 꽤 섭섭했어요. 3년이나 거의 매일 드나들다 보니 알게 모르게 글 정이 들었었나 봐요. 정이란 게 무섭거든요. ㅋㅋ. 참, 한 번은 제가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을 때, 제 아이디 ‘푸른 바다’를 보니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가 생각난다고 댓글을 적어주셨던 생각이 나네요. 아무튼 이렇게 답장을 주셔서 감사하고 잘 지내신다니 너무 좋습니다. 꼭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멀리서 강한솔 드림


나도 잊고 있었던 내 과거의 일부를 기억하고 있는 이 사람이 신기했다. 정말 뇌의 일부가 손상이 되었는지 강한솔이 오렌공작실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나는 그 홈페이지의 이름이 자폐의 골방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폐의 골방은 부재처럼 사용하던 이름이고 메인타이틀은 오렌공작실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오렌지를 좋아하고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는 홈페이지 소개 글까지 어제 본 듯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경이로웠다. 홈페이지, 오렌공작실, 그림일기, 책, 영화, 배경음악, 겨울바다……. 따뜻하게 서늘한, 되찾고 싶기에 잊힌, 낙조의 오렌지 빛……. 알지도 못하는 강한솔이 내 인생의 퍼즐 한 조각을 가지고 나타났다.


두 번째 편지를 읽고 나서는 첫 번째 편지를 읽었을 때의 반가움만은 아니었다. 텍스트의 길이만큼 무거워진 것 같았다. 사실 실제로는 특별히 할 말도 없는데, 감정은 계속 말을 나누고 싶었다. 강한솔을 통해서 나에 대한 기억을 더 찾고 싶었고, 20년 전의 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강한솔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당장 답장을 쓰고 싶었지만 약간 템포를 늦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밀당은 꼭 연애 감정과 닮아있었다. 하루를 견디는 것도 조금 힘들게 여겨졌다. 하루가 지나서 답장을 썼다.


저도 잊고 있었던 그 시절 기억들을 말씀해 주셔서 놀라웠고, 덕분에 시간여행을 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홈페이지에 대해서 더 기억나는 게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일부러 기억해 내시지는 말고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실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대학생이었다고 했으니까 나보다는 나이가 어릴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40대 중반쯤 되었을 테니 결혼은 당연히 했겠지? 아닐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이 이런 메일을 쓰겠어? 요즘 비혼자들이 워낙 많긴 하지. 돌싱도. 나도 내가 돌싱이 되리라고 상상도 못 했으니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강한솔의 신변에 대해 속물처럼 이리저리 상상하고 있었다. 긴 겨울잠을 자던 연애 세포가 깨어난 것 같았다. 이 같은 갑작스러운 전진은 같은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리라.

메일이 왔다. 그의 나이와 직장과 결혼 여부를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뭔가 속내를 들킨 것 같았다. 편지를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 같은 내용들의 행진이었다.


작가님 메일 잘 읽었습니다. 우연히 연락처를 보고 드린 안부 메일이었는데, 이어지는 메일이 자꾸만 더 반갑네요. 이쯤에서 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작가님에 대해서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3년간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알게 된 정보들이 있는데, 작가님은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니까 기본적인 신상 소개는 하는 것이 예의인 것 같습니다. 메일 주소에서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생년을 사용해서) 나이는 45 세구요, 지금 네 아이의 아빠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참, 아내도 그때 작가님 홈페이지를 같이 봐서 아마 알 거예요. 그때 캠퍼스 커플이었거든요. ㅎㅎ. 아이들도 커가고 앞날이 걱정되어서 투잡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작가님 편지가 너무 반갑지만 어쩌면 답변을 못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을 영원히 아름다운 친구로 간직하겠습니다. 친구는 꼭 자주 연락을 안 해도 언제까지나 친구니까요. 모쪼록 하시는 모든 일들이 잘 되시기를 바라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멀리서 강한솔 드림




계속 이어지는 연락이 반갑다고는 했지만, 아내 이야기며 네 아이의 아빠라는 신상 공개에서, 마무리 인사에서, 행간에서 전해지는 분위기에서 강한솔도 편치만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그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알게 된 오래전 홈페이지 독자로부터 ‘작가님’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전생에 있었던 일이라도 되는 듯이, 지금 ‘작가’라는 단어를 의식의 표면 위에 처음 떠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0년 전에도 홈페이지에 매일 글을 쓰면서 독자와 소통을 했던 기억이 연결되었다. 강한솔의 마지막 편지는 긴 여운을 남겼다. 특히 내 마음속에 화두처럼 던져진 것은 ‘영원히 아름다운 친구’라는 문구였다. 그 말이 내 안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물가를 산책하거나 싱그런 초록의 나무를 볼 때, 푸른 바다를 바라볼 때, 오렌지빛 낙조를 감상할 때, 바흐를 들을 때,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영원’을, ‘아름다움’을, ‘친구’를 생각했다.


과거의 나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현재의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인 독자, 인생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난 후,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메일은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한 것이고, 실제로 더 많은 메일이 오갔다. 책에 대해, 영화에 대해, 여행에 대해, 음식에 대해, 꿈에 대해, 음악에 대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화의 소재가 주어지면 꺼져가는 불씨에 장작을 던져 넣은 것처럼 이야기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강한솔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푸른 바다’에서 온갖 생명체가 건져 올려지는 것은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누군가 먼저 멈추지 않으면 이야기의 바다는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천일야화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가 된 것 같았다. 세헤라자데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무엇 때문에 강한솔과의 이야기가 이토록 절실했던 것일까?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오직 글로만 만난 강한솔은 자신이 소개한 45세로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십 대 소년과 말을 하는 것 같았고, 그때만큼은 나 자신도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소녀가 된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 같았고 소울메이트라는 게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솔에게 키다리 아저씨와 안네의 일기의 키티와 빨강머리 앤의 길버트와 편지를 3년 동안 주고받았던 중학교 때 첫사랑 친구와 내 삶의 모든 그립고 좋은 것들을 투사하고 있었다. 말로 인해서 깨어난 기억은 나이가 없는 마음의 본성을 가르쳐 주었다. 강한솔과의 편지가 이토록 달콤하고 절실했던 건 원하지 않게 잃어버린 첫사랑, 거기서 멈춰버린 독서, 이루지 못한 꿈의 조각들,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의 파편들을 조금이라도 더 맛보려는 끈질긴 환상이었다.


그 감정의 실체를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앙리 보스코가 말한 ‘마음속에서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꿈틀거리는 것이 하느님의 천사’라면 강한솔과의 편지는 천사가 함께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 이후로 ‘예술만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내게 가르쳐 준 빛보다 찬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빛이 내 마음속에 비추었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의 모든 소재가 내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던 프루스트의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글쓰기란, 사랑하는 사람을 불멸화 하는 것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척하기를 그만두고 진짜가 되고 싶어졌다. 글을 통해서만 개인적인 신변의 경계를 넘어서서 ‘영원히 아름다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분과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매개체는 오직 문학과 예술뿐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온전히 나의 가치가 된 것은 강한솔과의 편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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