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일로 갑작스럽게 그만두긴 했지만 그 일이 없었다면 더 오래 일했을 것이고, 선배들과 주임들, 스캐쥴러와 소장의 총애를 받아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주임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의지를 발휘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꿈을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지만 사실 너무나 무거운 짐이기도 했으니까. 이렇듯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인된 일을 통해 지혜롭게 인도되는 힘이 있다. 행복하기만 했다면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 테니.
1년가량 했던 메이드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두려울 만큼 힘든 일이었지만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와 여자들의 출산 경험담과 같이 세상의 한 모퉁이를 가열차게 쓸었던 영웅담이 되어 다음으로 건너가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다.
다시 방과 후 수업이나 파트타임과 같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메이드 일을 하기 전과 별 다를 바 없었지만 나는 새로운 종류의 시선과 명랑함을 갖게 된 것 같았다. 성급하고 초조한 마음도 훨씬 누그러지고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쉬는 날이면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하듯이 도서관 언덕을 오르던 모습도 달라졌다. 이웃들 사이에서 햇볕을 받으면서 걷기도 하고, 시냇물 가 돌계단에 앉아서 한참 동안 오리를 관찰하기도 하고, 꽃 검색 어플로 들꽃의 이름을 찾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 동네에 새로 생긴 디저트 가게에 가서 맛있는 케이크를 맛보기도 했다. 또, 내 동기는 자신의 소망대로 미술 전시회를 했을까? 몰래 시험을 준비하던 동료는 간호조무사가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주말에 바쁜 햄버거 가게나 카페에 가게 되면 직원들이 미처 치우지 못해서 지저분 해져있는 반납대를 몰래 치워주는 직업병도 즐거운 후유증으로 생겼다. 주말의 러시 상황이란 그 얼마나 숨통을 조여 오는 일이었던가!
그러던 어느 날, 과거에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에게서 안부 연락이 왔고 오랜만에 만났다. 동료도 나도 그때보다 살이 쪄 있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같이 일할 때 책 읽기 모임을 했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의기투합하여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꽤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했는데도 그 동료가 국문학 전공 석사까지 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각자 다른 생업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저녁에 모여서 두세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처음에 둘이서 하다가 다른 동료가 합류해서 셋이 되고, 또 다른 아는 사람이 관심을 가져서 넷이 되고, 그 사람이 집안에 일이 생겨서 다시 셋이 되기도 하면서 소박한 모임이 3년 정도 이어졌다.
책 읽기로 시작해서 글쓰기로 이어졌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모두가 놀랐던 글쓰기 방법을 고안했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고 참고하여 우리 모임에 맞게 만들어 본 형식으로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그날의 글제를 지정하면 30분의 정해진 시간 동안 즉석에서 글을 쓰고, 이어서 자신이 쓴 글을 낭송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이런 식이면 좋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도해 본 것이었는데, 효과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생각나는 글제는 이런 것들이다.
집착에 대하여
숨기고 싶은 것들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일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는 것
일 년 후. 깨달음. 변화
내 마음의 시계
내 안의 좋은 것
책임
희망, 단 하나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제법 묵직한 제목이 주어지면 처음에는 쉽게 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답답함을 견디는 시간을 보낸다. 어느 순간 펜을 잡은 손이 빨라지기 시작하고 마감 시간이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5분만 더 쓰자는 제안을 할 만큼 많은 감정들이 쏟아지곤 했다. 우리가 모두 놀란 함께 글쓰기의 하이라이트는 낭송 시간이었다. 글을 쓸 때는 담담하게 쓴 것이었는데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모든 구성원들이 예외 없이 겪게 된 것이다.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터져서 추스를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당사자도, 듣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그 분위기를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로의 말이나 어깨를 두드리는 등의 몸짓을 하기도 했지만 곧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은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내는 깊은 공감이었다. 다시 누군가가 눈물을 터뜨리는 상황이 생기면 그 사람이 다 울 때까지 차를 준비하러 일어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함께하는 방식을 진솔하게 나누고 배워나갔다. 그 행동 역시 그 사람이야 울든 말든 나는 내 할 일 한다는 식의 의도가 아니라 서로를 올바로 이해하고 성숙한 자세를 견지할 때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공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머뭇거리는 시간이 짧아지고 곧바로 오랜 묵은 감정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추가 시간 없이 정해진 시간에 끝내게 되었고, 낭송 시간에 우는 일도 줄었다. 눈물을 감추고 애써 웃는 것이 아니라 나와야 할 눈물이 빠져나와 마른자리에서 자연스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많은 대가를 치른 천년의 미소였다. 3년가량 지속되던 공부 모임은 코로나 영향으로 중단되었는데 함께 글 쓰고 나누었던 그 시간이 새록새록 신비스럽게 떠오른다.
아침에 깨어날 때, 삶은 달걀의 껍질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가는 꿈을 꾸었다. 꿈의 느낌이 참 좋아서 이부자리에 한참을 머물러 있으면서 내가 시도해 왔던 생산적인 일들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은 일,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일로 글쓰기 클래스가 소환되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더 나이가 들고, 더 성숙해지고, 더 자유로워질 어느 날, 길모퉁이 작은 글쓰기 카페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생업에 충실한 사람들이 평일 저녁에 글쓰기 카페에 머문다. 글제를 정하고 각자 편한 구석에 가서 30분간 글을 쓰고, 자기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겠다. 어설픈 위로 없이 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눈물이 마른 자연스러운 미소로 차를 마시면 좋겠다. 요란스러운 인사 없이 각자 가던 길을 가면 좋겠다. 카페 이름도 지었다. 사랑스러운 배우 맥 라이언이 나왔던 영화 <유브 갓 메일>의 배경이 되었던 뉴욕의 ‘길모퉁이 서점(the corner bookstore)’을 빌려왔다.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