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통하지 않는 분노는 펜을 들게 한다
멘토 언니의 말이 사실로 드러났다. 어떤 이유로 스캐쥴러에게 찍히게 되면 방을 적게 줘서 돈을 못 벌도록 한다거나 힘든 동선이나 지저분하게 사용한 방을 준다든가 아예 일하러 못 나오도록 장난을 치기도 하고 교묘하게 힘들게 만들어서 괴롭힌다는 말을 들어서 참고는 하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었고, 나에게는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그 소문이 확실하게 체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 년 중 가장 바쁜 여름 성수기를 맞아 메이드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신참이면서 업무에 적응한 나에게 기본 이상의 엑스트라가 대거 할당되었고, 여름 내내 유니폼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리며 일한 대가로 이전보다 많은 급여를 받은 날이었다. 땀 흘린 만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건강한 세상에 대한 확인으로 흐뭇한 퇴근길이었다. 스캐쥴러가 락커 뒤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특별히 나를 좋게 봐서 방을 많이 준거라며 자기한테 잘 보이면 먹고사는 건 보장해 주겠다는 이상한 말이었다. ‘먹고사는 걸 왜 자기가 보장을 해준다는 거지?’ 소화되지 않은 말을 곱씹으며 문을 나서는 뒤통수에 대고 과장된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쳐댔다. 그런 말을 누구에게나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그 억지스러운 웃음과 건전하지 못한 말의 내용이 등짝에 들러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멘토 언니한테 말해봤더니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이곳의 관행이니 그냥 ‘양말 몇 켤레’ 선물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일하는 게 앞으로 힘들어질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스캐쥴러 말처럼 정말 특별히 신경 써서 큰돈을 벌게 해 준 거라면, 앞으로 힘들어지지 않으려면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되나? 생각이 들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다음 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는데 하우스키핑 사무실 앞에 메이드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대열로 다가갔는데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일에는 눈치가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일부 메이드들이 스캐쥴을 잘 받기 위한 목적으로 스캐쥴러한테 뭔가 선물을 하기 위해 늘어선 줄이었다. 놀라웠다. 이런 허드렛일조차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청탁이 오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주는 선물로는 떡이나 빵, 초콜릿같이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스캐쥴러의 특별 배려로 번 돈의 일부를 상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스캐쥴러가 락커 뒤에 있다가 나타나서 했던 말의 의미가 온전히 이해되었다. 나도 줄을 서라는 것이었다. 버티기로 했다. 안되면 소장한테 고발하겠다는 전략도 세워두었다. 일주일 후에 객실 정비를 하고 있는데 업무 폰으로 전화가 왔다. 스캐쥴러였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느냐는 원색적인 압력이었다. 고분고분하지 않자 갑자기 힘을 빼면서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양말 한 켤레’라도 마음의 표시를 하라는 것이었다. 생각해 둔 대로 곧바로 소장한테 전화를 했다. 소장은 내가 상황 설명을 다 하기도 전에 자기는 모르는 일이며 지금까지 ‘양말 한 켤레’도 받은 적이 없다고 완강한 태도로 부인했다. 멘토 언니부터 스캐쥴러, 소장에 이르기까지 공히 사용하는 ‘양말 한 켤레’는 이곳에서 제일 작은 선물로 통용되는 단어인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스캐쥴러가 행동대장이었고 소장은 그로부터 취한 약탈물을 나눠갖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그 둘이 내연 관계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내 전략이 먹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일로 인해서 해묵은 비리의 온상까지 알게 되었다. 어떤 주임은 주임이 되기 위해 과장에게 성 상납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주임은 나를 제일 예뻐하고 챙겨주시는 분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VIP 손님이 안 드시고 남겨둔 서비스 초콜릿을 모아뒀다가 애 갖다 주라며 몰래 챙겨주기도 하고, 내 몫이라며 삶은 계란을 남겨놓기도 하고, 호텔 근처에 새로 생긴 만둣집이 맛있다며 한번 같이 가자고도 하는 정이 많은 분이셨다. 그와 비슷한 사실인지 소문인지 확인되지 않는 말들이 호텔 곳곳에 떠다녔다. 청소 일을 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배 언니들은 나의 저항에 대해 다 부질없는 짓이라며 이런 일이 늘 반복되어 왔지만 순응하지 않는 사람만 희생된다는 말이 똑같이 들려왔다. 이 일로 관심이 없었던 회사의 조직 체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소장 위에 총괄 사장이 있으며 그 사람은 제주도에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때의 분노는 제주도행 비행기 표를 끊을 기세였다.
불편한 공기 속에서 말이 없이 묵묵하게 일만 하는 서열 1위인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늘 시선을 아래에 두고 뒤뚱거리듯 천천히 복도를 걸어 다니는데, 방은 귀신같이 빨리해서 어떻게 청소하는지 지금껏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그 선배가 청소하는 방에는 물소리도 안 나고 청소기 돌리는 소리도 안 나는데 빠르고 깨끗하게 너무 잘하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한 층에 두 명의 메이드가 배치되어 일을 하는데도 늘 일손이 부족하게 여겨져서 다들 힘들어하는데 서열 1위는 혼자서 한 층을 해치우고도 뛰어다니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서열 2위는 서열 1위에 대해 ‘저건 돈을 좋아해서 이 일 말고도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른다’고 했다. 메이드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소장과 스캐쥴러에게 일러바치는 조력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서열 1위는 마녀로 불리기도 했다. 바로 그 서열 1위는 내가 본 이래로 가장 반듯한 자세로 서서 처음으로 내 눈을 똑바로 보았다. 나도 서열 1위를 그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었다. 쥐 잡아먹은 듯이 지나치게 빨갛게 바른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입술은 부르터 있었고 눈은 실핏줄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서열 1위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도 돈 벌러 왔잖아. 조용히 일하면 안 되겠어?”
승산 없는 싸움을 그만두고 순응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날부로 식권과 유니폼을 반납하고 호텔 헤르메스를 떠났다.
마지막 날 같이 일했던 주임이 바로 그 성 상납 소문의 주인공이었고, 주임님은 섭섭하다며 밥을 사주겠다고 하셔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게 됐다. 주변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유일하게 영업 중인 족발집에 들어갔다. 주임님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똑똑한 네가 우리를 잘살게 해 줄 줄 알았다.”
세월이 느껴지는 두꺼운 눈꺼풀 아래의 깊고 작은 눈에는 눈물이 맺힌 채, 입가에는 웃음을 띤 채 장난처럼 말했다.
“제가 무슨 수로 그렇게 합니까?”
“그래. 많이 먹어라.”
주임님은 묻지도 않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느라 거의 드시지 않았고, 나는 다시는 안 볼 사람의 굴곡진 인생 역정을 들으면서 혼자서 2~3인분의 족발을 해치웠다. 분노와 슬픔이 변한 식욕이었다. 그게 그곳에서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똑똑한 네가 우리를 잘살게 해 줄 줄 알았다.’는 말로 왜 그분이 나를 챙겼고, 성 상납을 했다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주임님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의 불행한 삶에 공감이 갔다. 그곳에서의 일들은 생각할수록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인생의 다양한 질감이 느껴졌다. 배가 터질 듯이 불렀고 동시에 텅 빈 듯이 심하게 고파왔다.
세상에 통하지 않는 분노는 펜을 들게 한다. 그곳에서 겪은 부정부패와 비리에 분노했던 순간들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래도 되는가? 돈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저버려서 되는가? 먹고사는 문제가 어디까지 중요한가? 누군가 힘 있는 사람이 나를 잘 살게 해 줄 수 있는가? 그렇게 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런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청소를 하며 가빠진 호흡과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 치솟았던 수많은 양심의 소리와 질문들. 달걀로 바위 치기같이 뻔한 결과 때문에 체념을 선택하지만, 때때로 달걀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용기가 의외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바위에서 깨어진 달걀 껍데기 사이로 달걀물이 흘러내린다. 그 물을 피하려고 움직인 벌레가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서 제 갈 길을 간다. 미미한 듯한 분노와 외침, 작은 움직임으로도 뭔가가 일어나고 변하고 흐르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상황을 개선할 힘이 없었던 나와 동료들, 미래의 사람들,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이 숙성되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글쓰기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고, 무너지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수단이었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때울 수 있는 것으로 발견한 일이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이렇게 크게 네 가지로 말했다. 조지 오웰이 말하는 동기에 따르면 이 글은 순전히 앙갚음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순전한 이기심에 해당하는 글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