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를 생각하다가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만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 자유 놀이 시간에 나무 블럭으로 무언가를 지으면서 하루를 열었다. 그런 리듬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오면 어제하던 놀이를 자연스럽게 했다. 아직 자기 놀이를 찾지 못한 아이는 뭔가 시도하지 않고 선생님이 도와주기를 바라면서 기다렸다. 그런 아이는 선뜻 도와주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었고, 해보다가 안되면 도와달라고 요청할 때 도와주었다.
그런 요청이 없어도 선뜻 도와주고 싶은 아이는 잘 안되는대도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애쓰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는 어찌나 예쁜지 안볼 때 살짝 블록 하나를 올려주기도 했다. 자기 일을 즐겁게 열심히 하는 아이가 자기 의도대로 멋진 성을 지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선생님인 나에게도 큰 기쁨이었으니까.
우리보다 높은 의식의 존재인 천사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도 그와같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도와달라고 청하기만 하고 있는 힘껏 시도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할 때 까지 기다려준다. 그렇지 않고 개입하면 스스로의 힘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즐겁게 열심히 하고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질문을 하면 천사가 관심을 갖고 같이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
천사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선명한 꿈으로,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몽롱한 형상으로,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의 형태로 답을 준다. 마치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런건 어떨까?"
의견을 내거나 힌트를 주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자신의 의견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데,
"네가 한번 잘 만들어 봐."
라는 식의 겸손한 태도다.
"내가 어제 질문했는데 답은 안주고 이상한 개꿈만 꿨네."
와 같은 불만과 불신으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천사의 힌트와 의견을 잘 보고 들으려면 신중하게 관찰하고 경청하는 태도여야 한다. 유머도 필요하다. 우리의 천사는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하이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본다.
“잠들기 전에 너의 천사에게 네가 어떻게 해야될지 물어봐라. 그러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뭘 해야할지 알게 될 것이다.”
천사에게 물어보면 아침에 '답을 준다'가 아니라 '뭘 해야하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힌트와 의견을 잘 듣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한다는 말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흰 운동화가 보였다. 또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숲길이 보였다.
이 두 이미지를 조합하자 새소리가 들리는 아침의 숲길을 흰 운동화를 신고 걸어가는 내가 보였다. 그 옆에 나란히 걸어가는 내 천사 프랭크가 있었다. 천사는 하늘을 날지 않고 우리와 함께 걷는다.
혹시 나중에 내 경험이 천사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나가키 료스케가 <천사론> 머리말에서 인용한 단테의 <신곡> 천국편(28곡)에서 ‘그레고리우스가 하늘에서 깨어나서 진리를 보고 과거 자신이 지상에 있을 때 천사에 대해서 틀리게 썼던 실수에 웃었다’는 대목처럼 나도 웃으면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럴리 없을 것이다. 내 천사 프랭크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므로.
모쪼록 어두운 숲속에서 보고 들은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퍼즐 한조각으로 작용하는 ‘천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천사 프랭크와 더불어 더없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