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목표를 향한 집중의 기쁨
어제부로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소재로 해서 써 두었던 글들을 3주의 시간 동안 집중적인 퇴고를 거쳐서 스무편의 글로 편집하여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세상에 내 보냈다.
확실한 목표를 향해 촛점을 맞추고 에너지를 모아서 끝을 내는 일은 '완결'의 기쁨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내가 뿌린 씨앗에 대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크든 작든, 길든 짧든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끝을 내는 일은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
특히 이번 작업으로 마음 속에서 오랫동안 계속된 질문이 하나 해소되었다. 그것은 '개인적인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을 포함하는 글을 굳이 발표를 해야하나?'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10여년 전, 글이 아닌 유리드미(동작 예술)를 할 때 부터 품어왔던 오래된 질문이었다.
시작은 취미반처럼 그냥 배움이 좋아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하다보니 집중반이 되어 많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투자하여 깊이 들어가게 되었고, 결과를 무대에서 발표를 하는 것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유리드미가 아니더라도 음악이나 무용, 연극과 같은 무대 예술은 무대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공연을 해야한다고해서 했고, 공연을 위해서 집중된 연습을 통해 실력이 향상되고 최대치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에 필요한 의상이나 화장도 특별히 해야했고 공연장 대여비 등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않게 들고해서 매 학기마다 부담이 되는 공연을 어찌어찌해서 하긴 했지만 전적인 내 의지로 한 일은 아니었다.
학기의 마무리 공연을 'finish'라고 불렀다. 공연을 함으로써 한 학기의 전 과정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였다. 공연을 하지않으면 마무리가 안된 거라는 말이었다. 설명은 많이 들었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졸업 공연을 하고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 한국 최초의 유리드미스트 선생님의 공연에 대한 의견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공연을 통해서 해야할 일은 관객에게 사랑을 전달해야 한다.'는 놀라운 말씀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우주적인 답변은 더 큰 질문만을 남긴채 내 인생에서 유리드미는 마무리되었다.
이번 작업을 끝내고나서 스스로 느낀 발표의 의미는 발표하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 글에 갇혀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이나 세상적인 성공이나 실패를 떠나서 최선의 힘을 불어넣어서 완결된 이야기를 떠나보냄을 통해 잘 살았든 못 살았든 그게 내 인생이었다고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를 스스로 시원하게 떠나보내지 못할 때, 계속 맴돌면서 그 이야기 속에 갇혀 다른 글을 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뜻하지 않게 당했던 사고를 유의미한 사건으로 돌이켜서 규정하고 내 삶을 수용한 다음 놓아줄 수 있을 때, 그 빈자리에 불어든 새로운 바람으로 다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작업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다른 작업들에 비해서 과정이 복잡하고 기간이 길고 많은 생각과 결정과 수정을 반복해야하는 일이었고, 해묵은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은 완치되었나 싶었던 고질적인 피부 가려움증과 근육통, 체중 증가, 신경성 대장증후군 등 이제는 그 원인을 확실하게 알고있는 심인성 질환들과 한번 더 직면하게 했다.
목표한 끝을 향해서 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피하지 않고 뚫고 나가서 마침내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나는 쉽게 끓어오르고 식는 양은 냄비에서 천천히 끓지만 조금 더 오래 온도가 유지되는 돌냄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자족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살아온 삶이지만 온전히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단단하게 뭉쳐서 어느 순간 '툭' 발에 걸려서 넘어지게 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저만치 앞서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한다. '다시는 안 넘어질거야.' '나는 할 수 있다.' '이번에는 꼭 될거야.' 결의를 다지는 것도 일종의 집착이고 자기 학대다. 나를 넘어뜨린 단단하게 뭉친 것을 잘 들여다 본다. 생각과 감정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껏 해왔던 대로 계속 힘을 내서 달리면 될거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인생의 궤도는 점점 더 울퉁불퉁해지고 단단한 뭉치는 더 많이 튀어나오고 피해서 달릴수록 더 우왕좌왕 동선이 꼬여서 더 자주 넘어지게 된다. 나를 넘어뜨린 단단한 뭉치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내 생각과 감정이다.
세상에 훌륭한 선생, 교수, 성직자, 책, 강의, AI... 많고 많지만 그 의견들에 흔들리거나 휩쓸리지 않을 단단한 내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생각은 중요하다.
나의 감정은 중요하다.
나의 의견은 중요하다.
그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세상의 잣대로는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지만 그때의 너는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이 상황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온 몸의 뼈가 떨어졌다가 붙는 것 처럼 아팠던 것을 생각한다. 소중한 통증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소재로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로 인생의 한 학기를 'finish'한다.
세상의 무대에서 관객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발표의 궁극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혼자만의 일은 아니니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