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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06. 2023

다시 시작하는 모닝 페이지

 

기억


 3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는 모닝 페이지. 글이 막힐 때 펼쳐본 지난 모닝 페이지는 나를 감동시키는 문장들의 향연이었다. 7개월 전의 결연한 각오가 지금 여기서 반복되고 있다.

 글을 읽고 쓰는 것만큼 존재를 기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점점 확고해지고 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기의 방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현자의 말에 뼈아프게 공감하는 시절이다.      


 그날을 기억한다. 

 올해 4월, 수년 만에 다시 모닝 페이지를 쓰기 위해 찾았던 무인카페는 정말 좋았다. 맛있는 아메리카노와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재즈 음악과 적당한 조도. 모든 것이 나의 모닝 페이지의 지속을 축하하며 다정하게 모여들었다.      


 그날을 기억한다.

 세찬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커튼 없는 커다란 통유리 창은 빗물과 습기가 만들어 내는 지극히 감성적인 패턴으로 칠해져서 다시 펜을 든 나를 칭찬해 주었다. 두려움 속에서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모든 것으로 격려하는 이 세상의 친절을 나는 안다. 내 예측을 넘어서는 추락에도 툭툭 털고 일어서서 기꺼이 달려가는 이유다.     


 그날은 비의 격려가 있었다면 오늘 아침은 단풍의 지켜봄이 있다. 고개를 들면 바라보이는 눈 앞에는 초록에서 주황으로 향하고 있는 잎들이 가득한 나무가 있다.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여덟 그루, 모두 여덟 그루다. 초록, 연두, 노랑, 갈색, 주황, 빨강. 빛을 받는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물든 잎새들, 곧 떨어져서 사라질 잎새들이 박수를 쳐 준다.


 여름, 이곳, 같은 자리에서 보았던 싱그런 초록의 잎사귀들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추락을 앞둔 11월의 단풍은 여름의 활기찬 초록보다 아름답다.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사사키 아타루가 반복해서 했던 이 말은 올해 읽었던 문장 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문장이다. 문득 초조해질 때, 이 문장을 되뇌이며 깊은 호흡을 하는 것은 다시 고결한 시간으로 복귀할 수 있는 정말 유용한 처방이다. 

 




 어젯밤, 한 장면의 지워지지 않는 꿈을 꾸었다. 자잘한 다이아몬드가 촘촘하게 둘러진 금반지를 낀 희고 예쁜 두 손이 포개어진 꿈이었다. 그 손은 지금, 현재의 내 손보다 희고 깨끗하고 울퉁불퉁한 힘줄이나 마디가 없이 매끈하고 젊었다. 그런 느낌이 좋은 꿈은 해석이 없이도 그저 좋은 꿈이다. 이미, 벌써,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으니까.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 좋은 꿈을 꾸면 책이나 검색으로 뜻을 찾아보게 된다. 더 크고 좋은 희망적인 의미를 덧대어 마음에 힘을 싣고 싶은 아이 같은 마음, 세상살이가 무조건 잘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넌 무조건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옛날 옛날 2세기의 작가, 아르테미도로스가 <꿈의 열쇠>에서 풀이한 두 손이 나오는 꿈의 의미는 지금의 나에게 더없는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이었다. 

 ‘두 손이 함께 있는 꿈은 기술, 글쓰기, 말을 의미한다.’ 

 ‘두 손이 기술, 글쓰기, 말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지?’

 간략한 설명은 이랬다.

 ‘기술인 이유는 사람들이  손으로 하기 때문이고, 글쓰기인 이유는 사람들이  손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며, 말인 이유는 말을 할 때 두 손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꿈풀이가 맞든 틀리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기분 좋은 느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행간


 일요일 아침, 읽을거리와 쓸거리를 배낭에 넣어서 무인 카페에 왔다. 자족의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이거면 족하다. 무엇이 주어진들 읽고 쓰기의 지속보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이 소박한 나의 진실을 깨닫기 위해 어마어마한 길을 걷고 뛰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돌아 돌아왔다. 더 이상 어딘가로 헤매 다니며 구도의 길을 찾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붉은 단풍들이 지더라도 그 소멸은 회한과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잎들을 떨군 나무는 하얀 땅 위에 앙상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서 여전히 나를 지켜볼 것이기에.     

 내가 나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바라볼 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세상도 나에게 우호적으로 반응한다. 인생의 기쁜 비밀이다.


 바람이 불면 떨어진 낙엽이 바닥에 뒹군다.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있다가 바람이 불면 일어나 팔랑팔랑 아스팔트 위 무대를 휘저으며 눈 길을 모은다. 날개를 접었다 펴는 나비, 거리에서 힘차게 춤을 추는 댄서, 꺼져가면서 마지막 온기를 전하는 불꽃의 춤과 닮았다.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음식을 먹었고, 너무 많은 말을 했고, 남에게 교육이나 도움이라는 명분으로 충고도 너무 많이 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줄여나갈 것이다.     


 어제 심박수 측정 밴드를 주문했고 오늘 배송 예정이다. 오늘 중에 가장 기대되는 일이다. 심박수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접하고 나서 가끔씩 생각을 했지만 ‘운동을 하면 됐지.’하면서 물질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밀어내오다가 11월에 접어들어 어깨가 움츠러들면서 다시 심박수 밴드가 생각났다. 그리고 ‘월동준비’라는 명목하에 일상으로 영입했다. 한껏 몸과 마음을 움츠린 채로 난방기구나 보온용품만 준비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열기와 열정을 올리는 것으로 스스로 활발발한 발열체가 되기로 했다.     


 노트에 펜으로 쓰는 아날로그 글쓰기를 좋아한다.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글쓰기의 효율도 좋지만, 한 문장 쓰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또 한 문장 쓰고 펜을 내려놓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다른 테이블에 앉은 노부부가 하는 대화를 엿들으며 미소 짓기도 하는 행간이 큰 글쓰기가 좋다.     



믿음


 나는 기억한다. 

 냉동실에서 꺼내면 녹기 시작하는 아이스크림처럼, 구체성을 놓쳐버리면 금방 무너져내리는 인간의 정신을, 그 두려움을.     


 나는 기억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의 작은 두려움과 실직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큰 두려움을.     


 나는 기억한다. 

 작은 두려움과 큰 두려움, 어떤 종류의 두려움 앞에서든 내 앞의 구체적인 것을 바라볼 때, 움켜잡을 때 점점 작아져서 어느새 사라지던 환상의 경계를.     


 나는 기억한다.

 뛸 듯이 기뻤던 성공에의 환희도, 죽을 듯이 고통스러웠던 실패에의 절망도 짧게든 길게든 언젠가 사라지던 환상의 실체를.     


 나는 기억한다. 

 진심이라고 외치던 말의 허무를. 최선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의 말로를. 영원이라는 간절함을 담은 마음의 찰나를.     


 나는 믿는다.

 이 모든 허무와 허상과 환상, 찰나의 영원과 아름다움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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