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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07. 2023

연재의 변


1분 청소     


 아무도 없는 아침 무인카페.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컵 두 개가 각각 다른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의자들은 사용 후 다시 테이블 쪽으로 밀어 넣지 않아서 삐뚤빼뚤 튀어나와 있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내가 사장이라도 된 듯이 기본적인 정리를 시작한다.

 치우지 않고 간 컵의 음료를 개수대에 버린 후 수거 홀에 컵을 빠뜨린다. 테이블 위에 쏟아진 음료가 있으면 비치된 휴지로 닦는다. 의자를 정돈하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중 눈에 띄는 큰 것들을 줍는다. 테이블 4개가 있는 작은 공간이라 다 해도 1분 정도 걸리는 소일거리다.

 이 일은 늦은 오후의 헬스장에서도 이어진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공용 유니폼과 수건을 수거함에 넣고 락커룸 가운데 있는 테이블을 바르게 놓는 간단 정비를 하는데 이 역시 1분도 채 안 걸린다.


 이러한 정리 활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무질서한 환경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동반응으로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생각된다. 또 하나의 의식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정돈이 잘 되어있는 환경에서는 뒷사람도 질서를 지킬 확률이 높고, 정돈이 안 되어있는 환경에서는 다음 사람도 무질서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과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 때문이다.

 내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들은 그 장소가 내 삶에 있어서 유용하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곳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장이 힘들어서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 좋은 공간을 이용하는 나도 불편해질 수 있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내가 머무르는 동안은 나에게 소중한 공간이므로 나일상을 지키는 하나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1분 청소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나다. 1분만 바지런히 움직이면 휴식 심박수에서 준비운동 수준의 심박수로 올라간다. 튼튼한 심장으로 글을 쓸 준비가 되는 것이다.          



우산을 든 아이     


 1분도 안 되는 청소를 해놓고 글이 길었다.

 오늘의 날씨는 강한 비바람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조막만 한 손으로 우산대를 꼭 움켜쥐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서 우산을 들이밀며 목적지인 학교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저 아이들 중에서는 담임 선생님이나 짝을 좋아해서, 또는 가방 속에 든 책을 빨리 읽고 싶어서 비바람을 뚫고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운 아이도 있을 것이고, 담임 선생님과 친구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학교에 가야 하는 게 너무나 싫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아이도,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해서 괴롭기만 한 아이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은 비바람과 싸우며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릴 때, 엄마가 아팠기 때문인지 이유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갑자기 비가 오는 날,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나는 한 번도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온 적이 없었다. 혼자서 비를 맞고 오면서 원망 같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그 장면을 덮어버리는 더 큰 것은 나처럼 우산이 없는 친구와 둘이서 빗속을 뛰거나 우리만의 빗속 놀이를 계발해서 엄마와 우산을 쓰고 가는 아이가 부러워할만한 즐거운 하굣길을 만들어내곤 했던 기억이다. 우산을 안 가져온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이에게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나도 나름의 이유로 한 번도 우산을 가져다준 적이 없었고, 내 아이도 나와 같이 우산이 없는 잠깐의 원망과 어둠 속에서 배운 기지로 같이 우산이 없는 친구와의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며 마음이 굳센 아이로 자랐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센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다부진 손발의 움직임들에 응원을 보낸다 '아이야, 우산을 단단히 붙잡고 온몸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지금이 바로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고 있는 순간이야!'         
      




생각보다 강한 단풍     


 집에서 나와서 걸어오면서 어제 보았던 나무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조금 더 감상하고 싶었던 단풍들이 가을비에 너무 쉽게 떨어져 버릴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우산이 날아갈 정도로 세찬 비바람에 당연히 후드득 거의 다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했던 나뭇잎들은 수없이 큰 곡선을 그리며 휘청거리는 나뭇가지를 꼭 붙들고 신기할 정도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흔들리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거센 비바람을 꿋꿋이 버텨내는 저 단풍들은 비 그치고 바람 한점 없는 늦가을 오후, 따뜻한 햇살 속에 사르르 떨어져 내릴 것이다. 내가 안보는 사이에. 신이 정한 프로그램대로. 바로 지금이야.’ 읊조리며.    



연재의 변     


 참, 연재하는 이 글 <굿모닝 페이지>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자유 연상에 기반한 개인 일기에 가까운 글이지만 공개적인 플랫폼에 연재하는 만큼 독자에게 이 글을 연재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드리면 좋을 것 같다.

 처음에 모닝 페이지를 연재하려는 생각이 든 것은 1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앞서 연재하게 된  <꿈으로 만드는 진실한 내 것>을 쓰다가 막혔을 때 예전에 쓴 모닝 페이지를 펼쳐보면서 스스로 힘을 얻고 감동할 만한 문장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첫 연재라 내가 쓰고 싶은 대로만 쓰지 말고 독자가 이 글에서 필요한 게 뭘까를 생각하면서 개연성을 부여하고 자료를 찾아가며 쓰다 보니 의식의 검열이 자꾸 개입되어서 매끄럽게 써지지가 않고 계속해서 덜그럭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지난번에 썼던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곧바로 쓴 글이었다. 논리 정연하게 검열을 거친 글이 아니라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거침없이 적은 글이라 다시 읽어보았을 때 내가 쓴 글이 맞나 싶게 낯선 문장들과 감정들이 신선하게 와닿았고, 구태의연하지 않은 날 것의 선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글이었다.

 나에게 힘이 되었으니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도 힘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4개월, 120일간 쓴 모닝 페이지를 퇴고해서 한편씩 올릴 참으로 기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거에 쓴 글을 올리기보다 오늘의 모닝페이지를 다시 쓰것이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확장되었고 결과적으로 <굿모닝 페이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연재 요일을 ‘매일’로 설정해 놓고 완료 버튼을 누르기에 앞서 망설여졌다. 매일 연재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평일 5일간 연재를 하고 주말은 쉴까? 월, 수, 금 사흘을 할까? 이래 저래 생각을 하다가 처음 생각대로 매일 연재로 하고 혹여 쓰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처음에 연재하려고 생각했던 지난 모닝 페이지 글을 오늘에 연결해서 이어나가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하자면 미래의 걱정되는 나를 과거의 내가 도우면서 해나가겠다는 계산이다.

 ‘굳이 그렇게 매일 하지 않아도 돼. 힘들면 쉬었다 가도 돼.’라는 너그러운 목소리가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매일매일의 성실한 쌓기는 틀린 적이 없다.’는 단호한 목소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의 나에게는 매일매일의 쌓기가 더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 어찌어찌해서든 매일의 연재를 이어 나가보려 한다. 

 시작하는 마음처럼 나 자신과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쌓기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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