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세계인문학포럼에 참가한다.
대주제는 '관계의 인문학 : 소통. 공존. 공감'으로 급변하는 세상의 지형을 탐색하고 변화에 대비할 인문학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침 9시 30분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이런저런 주제의 대중 강연을 듣는다는 정해진 상황만으로 사전 참가 신청을 한 일주일 전부터 설레었다. 자발적인 참여로 무료로 진행되는 이러한 강연이 1,2년에 한 번 사흘 동안만 열린다는 게 시작 전부터 아쉽다.
포럼(forum)은 고대 로마 시의 중심에 있던 집회용 광장을 뜻하는 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공의 문제에 대한 주제를 놓고 청중의 참여와 사회자의 진행으로 이루어지는 공개 토론을 말한다. 디지털 문해력이 새로운 생산성의 능력이 되는 시대를 대비해서 이러한 대중 포럼의 공간이 상설로 운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좋은 강연이 시간마다 있어서 시장 갔다 오는 길에 들러서 듣기도 하고, 또 자신이 준비한 짧은 주제 연구로 발표 신청을 하면 특별한 자격이 없어도 강연자가 되기도 하는. 평생 교육의 토양이 범시민적으로 일구어지면 좋겠다.
오래전에 그 당시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언어장애가 생겼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것 같이 여겨진) 증상에 스트레스가 컸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정신분석을 받고 억압된 정신적인 문제를 직면하는 것으로 해결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정신분석을 받는다거나 의학적인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떤 계기로 발도르프 교사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 연수 프로그램에서 고대 로마시대의 집회용 광장에서 진행되었던 포럼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있었고 그 매력에 흠뻑 젖어들어 열심히 다녔다.
연수에 참가한 첫날,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오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마치 총을 든 적군이 한발 한발 추적해 오는 것처럼 진땀이 났다. 일어나서 뭐라고 말을 했는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심하게 떨어서 다른 사람들 까지 긴장하게 만들었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간 곳에서 잊을 수 없이 수치스러운 기억을 만들고 말았다. 그날만큼은 연수를 취소하고 안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무슨 기백이었는지 다음 주에도 갔고, 다다음 주에도 갔다. 자기소개뿐만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유 아침 뉴스 시간에도 손을 들고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했다. 벌벌 떨면서.
연수가 있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뉴스 타임 때 말할 내용을 정리해서 메모했다. 스피치가 이어지면서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되고 재미있는 내용을 준비하면 사람들의 굳은 표정이 풀리고 밝아진다는 사실을 비롯해서 발표의 구체적인 요령들이 쌓여갔다. 때문에 군중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두려움에서 점점 안심으로, 자신감으로, 즐거움으로 변해갔다.
뉴스 타임은 그 후로 7년 간 이어졌고, 더 이상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떨고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셀프 언어치료의 작은 용기는 차곡차곡 쌓여서 논문 발표가 되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는 유치원 아이들과 만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백이 아니라 발표 불안을 고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 정신이 병든 채 골방에 있지 않고 사람들과 밝은 표정으로 대면하고 싶은 깊은 열망이 스스로를 교탁 앞으로 끌어내었던 것 같다.
매일 업로드의 부담을 스스로 떠안은 연재에 대해 만약 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지난 모닝 페이지의 글을 고쳐 써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웠건만 여의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상 지난 글로 분량을 채울까 하고 노트를 뒤적여 보았는데 불과 몇 개월 전 글인데도 문체가 지나치게 밝아서 눈이 시렸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난 다음의 후회스러운 기분처럼 글을 읽는데 숨이 가빴다. 전반적인 내용이나 문장들은 고쳐쓰기를 통해서 재표출할만한 글들이 있어 보이는데 문체는 전반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지금 글을 쓸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고 해서 그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예전에 써둔 글을 대신해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흘 전의 내 예측이 보기 좋게 틀렸다. 시간적인 여유가 빠듯해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틀린 예측을 통해서 일어나는 학습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면서 신선한 글을 쓰게 된 셈이다.
다행히 지금 내 심경을 정확하게 표현해 놓은 글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매우 많을 수도 있고 매우 적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삶을 조사하도록 하라.
나의 말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그것이 성장하고 있는 자의 말이기 때문이다.
(칼 융, <RED BOOK> 2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