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굵직굵직한 주제의 기조강연과 주제별 분과회의 세션을 여러 개 이어서 들어서 내용을 소화하고 곱씹는 것은 이후에 두고두고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발표자들이 열심히 준비한 다양한 주제의 강연을 들으면서 온갖 산해진미가 펼쳐진 뷔페에 무척 오랜만에 온 기분이 들었다. 첫날은 모든 음식을 다 맛보려는 의욕으로, 단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불타올랐다면, 둘째 날인 오늘은 시야가 조금 더 넓어져서 강의 내용뿐 아니라 다양한 참가자들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자나 관계자 또는 제도권의 혜택을 받는 연구자의 입장이 아닌 풀뿌리 시민 인문학자로 참가한 위치는 어떤 것 하나에 대한 책임감 없이,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정한 대로의 태도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었다. 어제, 오늘, 이틀의 포럼에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세상이 급변함에 따른 사람들의 불안도가 높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멀고도 가까운 소통과 상생
질의응답 시간에 영어 진행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중년 남성 한 분이 한국 사람이 더 많은데 왜 영어를 쓰냐고 항의하면서 영어 하는 게 자랑이냐고 소리치고는 강연장을 나가버렸다. 그 안에서 정해진 형식이 있고 제공된 번역기로 들으면 될 일이었는데,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리자는 듯이 자신의 화를 그 공간에 있는 모두에게 투척했다. 준비한 사람들과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또 한 분의 인상적인 질문자는 백발에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었는데 이미지의 힘에 대한 강연을 들은 후 질의응답 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료로 제공된 이미지를 설명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해가 안 가시는지 우리가 그냥 보면 되는데 이런 설명을 왜 하느냐고 화가 섞인 어조로 토로했다.
또 한분은 발표자들의 발표 후에 토론자들이 코멘트하는 내용을 들으시고는 자신도 연구자인데 요즘 이런 강연장에 와보면 갑질이 너무 심하다고 하시면서 포럼의 주제가 소통. 상생인데 소통이 전혀 안된다며 질타를 하셨다. 그분 발언 이후에 아무도 코멘트하지 않았고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그날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소통이 안된다고 격분하시는 그분의 발언도 소통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또 한분은 팔십 대 연세대 명예교수이며 50년간 춘향전을 연구했다고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관심 있으신 분들은 따로 만나서 대화를 했으면 한다고 어필하셨다. 그분은 세션마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모습을 보이셨는데 소통의 인문학에 부합하는 귀감이 되는 인간상으로 보였다.
또 한 명의 인상적인 사람은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온 이 아이는 성인 참가자들 사이의 유일한 어린이 같았다. 기조 강연 후 능숙한 영어로 질문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진행자가 특별히 발언할 기회를 주자 자신은 지금까지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다른 분들께 기회를 양보하겠다는 말을 해서 좌중을 웃게 했다. 옆자리에서 보았을 때 복숭아같이 붉은 뺨이 예쁜,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참가자였다.
한 분의 토론자는 발표자에게 발표 내용과 제목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지적을 했고, 이에 대해 발표자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이 포럼에서 채택되기 위해서 제목을 조금 부풀렸다'는 솔직하고도 실망스러운 답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다다
오늘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시아 태평양 총괄 마이크 킴 기조연설 후, 한 질문자의 질문과 그에 대한 마이크 킴의 답변이었다.
무대 위의 대형 스크린에 비친 질문자는 회색 후드티를 입고 안경을 쓴 젊은 남성이었는데 내 눈에는 그분이 몹시 지쳐 보였다. 그분은 게임 계발을 시작한 30대 프로그래머인데 4차 산업혁명, 5차 산업혁명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서울대를 나오거나... 하지 않아도 그런 길이 있느냐? 무슨 말이든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의 질문이 어제, 오늘 내가 들은 질문 중에 가장 진솔하고 절실하게 들렸다. 마이크 킴도 나와 같은 느낌으로 들었는지 질문자의 절실함에 적절한 답변을 준 것 같았다. 마이크 킴은 이렇게 말했다.
"마인드 셋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을 가야 한다. 실리콘벨리를 가야 한다. 이런 생각 다 필요 없다. 마음가짐만 바꾸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지금 여기서!"
너무나 통쾌한 답변이었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느낀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강의를 사전신청해 놓고 설레며 기다렸던 건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새로운 정보의 물결에 올라타고 싶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산해진미의 뷔페는 두어 접시 먹고 벌써 배가 불렀다. 늘 먹던 집밥의 속편함이 생각났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4차 산업혁명, AI의 등장으로 사라질 직업과 유지될 직업을 말할 때 예술가는 살아남는 직업으로 분류되었으나 지금은 AI 예술가들이 이미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제 어떤 직업군이 안정적이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태세가 되었다. 더 이상 안정적인 곳을 향해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급변하는 세상, 거대 정보 혁명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은 정보를 쥔 고 숙련자의 마음, 정보를 쥐지 못한 저 숙련자의 마음, 마음이 다라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영어 하는 게 자랑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나간 중년 남성, 우리도 눈이 있고 보면 아는데 왜 그걸 설명하느냐과 화를 내신 할아버지, 자신도 연구자인데 이런데 와보면 전부 갑질이라고 눌러있던 감정을 쏟아낸 참가자, 자신의 발제문이 채택되기 위해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을 부풀렸다고 고백한 발표자...... 어둑해진 길을 걸어 나오면서 그분들의 마음을 생각했다.
이 세계를 구원할듯한 주제들의 릴레이 강연 속에서 자신만의 영감을 발견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무언가를 찾지 못해 실망하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상처받고 좌절하는 사람들도, 열정적인 자세로 임하는 사람들도, 한걸음 물러서서 관조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디지털 시대의 지식 양극화 현상이 현장 곳곳에서 관찰되었다. 소통, 공감, 공존, 연대, 상생... 모두가 살기 위해서 외치고 있는 가치가 실현되는 유토피아는 아득하게 멀기도 하고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