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소재로 꿈과 현실을 오가는 곤 사토시 감독의 영화 <파프리카>는 그동안 내가 본 꿈에 대해 묘사한 영화들 중 가장 꿈에 근접한 형식과 내용의 수작이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품은 아직 세상에 없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이 신선했다. 정신 치료용으로 꿈을 활용하기 위해 개발된 'DC 미니'라는 헤드폰 모양의 꿈 스캐너는 제어장치를 아직 넣지 못한 미완성의 상태에서 누군가의 침입으로 분실된다. 정신 치료와 타인의 꿈을 공유한다는 애초의 개발 목적에 근접했으나 제어장치 없는 'DC 미니'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았다. 꿈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과학적인 열쇠는 타인의 꿈을 불법복제하고 도용하면서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고 현실 세계와 꿈 세계가 뒤섞이면서 예상할 수 없었던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실사 영화에 비해 꿈을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꿈의 속성들을 더 잘 재현한 것 같아서 놀라웠고, 꿈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후로 곤 사토시 감독의 천재성에 감탄하여 다른 작품들도 모두 찾아서 보았는데 불행히도 46세 이른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색의 화려한 색감, 독특한 스토리 전개, 실제 꿈처럼 개연성 없는 대사들, 초현실적인 장면들, 기괴한 꿈의 퍼레이드와 히라사와 스스무의 ost도 압권이다.
분열되고 중첩되는 감정과 꿈의 다층적 속성을 잘 표현한 이미지들
쥘 베른의 부지런한 상상력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본지 오래된 <파프리카>를 다시 보면서(예전에는 넷플릭스에 있었는데, 현재는 넷플릭스에 없고, 티빙에서 보았다.) 곤 사토시의 상상의 산물 'DC 미니'가 언젠가 실제로 개발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 틀림없이 그런 지점이 올 것 같다.
텔레비전, 인터넷, 로켓, 잠수함과 같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들이 세상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그저 갑작스럽게 필요에 의해서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세기 작가 쥘 베른의 소설을 읽고 영감을 받은 과학자들이 그 아이디어들을 실험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러니까 과학 기술 이전에 상상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라운 상상력에 대해 사람들은 쥘 베른을 예언가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는 '백과사전이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하며 부지런히 공부하고, 2천 권에 달하는 노트에 자세히 기록해 두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80일간의 세계 일주>,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해저 2만 리>와 같은 모험 소설의 생생한 집필을 위해서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니고 이를 위한 배도 세 척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상상력은 공상이 아닌 철저한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꿈의 퍼레이드, 분열된 정신일까? 가능성의 보고일까?
프로이트는 1900년 <꿈의 해석>을 통해 현실에서 해소되지 않은 억압된 욕망이 꿈을 통해서 여러 가지 왜곡된 형태로 나온다고 보았고, 분석가가 추적해서 숨겨진 욕망을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이 이론은 그 이후로 100여 년 동안 꿈에 관한 핵심 이론으로 굳건하게 이어져왔다.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는 칼 융을 이인자로 생각하고 친밀하게 여겼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부정하면서 결국 견해 차이로 결별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오로지 성적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융은 더 넓은 의미로서의 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분석심리학을 창시한다. 융은 개인의 무의식에는 개인의 경험을 넘은 보편적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보았고 그 이미지가 '원형'의 형태로 꿈에 등장한다고 생각했다.
하버드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꿈 연구가인 엘런 홉슨은 현대 신경과학을 통해 뇌에 대한 프로이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이함'이라는 꿈의 특성은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억압된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뇌가 물리적으로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보았다. 무의식적 욕망이 아니라 움직이고 보려는 추동이 꿈의 진정한 잠재 내용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꿈은 정신 분열적 상태이며 따라서 해석에 의미가 없으므로 프로이트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는 주장이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꿈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이며 앨런 홉스의 제자인 로버트 스틱골드는 꿈에 관한 가장 주목받는 최신 이론을 발표했다. 바로 넥스트 업 NEXT UP(Network Exploration to Understand Possibilities) 모델이다. 넥스트업 모델에서 보는 꿈은 '기존의 기억에서 이전에는 탐색하지 않았던 약한 연관성을 발견하고 강화해 새로운 지식을 추출하는 독특한 수면 의존적 기억 처리 과정이다. 보통 뇌는 중요한 사건이나 직장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 개인적 근심 등 그날의 새로운 기억을 암호화하고 이 기억에서 출발해 약한 연관성이 있는 다른 기억을 찾는다. 이 기억은 그날의 기억일 수도 있고 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다음에 뇌는 기억을 꿈 내러티브로 엮어 보통 때에는 고려하지 않을 연관성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넥스트업은 꿈속에서 발견되고 드러난, 새롭고 창의적이며 통찰력 있고 유연한 연관성을 찾고 강화한다.' (<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 146-147쪽)
넥스트 업은 '일어날 가능성을 위해 신경회로를 탐색하는 과정'으로서의 꿈이며, 하루의 긴 시간 잠을 자는 동안 다른 감각에 비해서 비활성화되는 시각의 불리함, 즉 시각의 퇴행에 대한 진화의 목적으로 선택한 하나의 방법이 꿈이라는 놀라운 시각을 제시한다.
꿈은 의식에 떠오르지 않은 더 많고 '약한 연관성'을 제시한다
현실에서는 우리 자신만을 바꿀 수 있을 뿐, 세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꿈에서는 꿈속의 자아와 꿈속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상상의 힘이 하는 일이다. 근육도 운동을 하면 할수록 큰 덩어리가 세부적으로 쪼개어져서 밀도가 높아지면서 더 탄탄하고 건강해지듯이, 컴퓨터 속 폴더를 세분화하고 이름 붙이는 것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듯이, 우리 뇌의 신경회로도 더 구체적, 세부적으로 범주화해서 폴더를 만들수록 더 많고 다양하고 유용한 꿈의 파일을 저장할 수 있다.
다음은 필자 본인이 십여 년간 해오고 있는 꿈작업 방법인데, 2023년에 발표된 넥스트업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 낮의 활동을 보다 더 자발적으로, 의식적으로, 집중적으로,강도 높게, 열심히 한다.
2. 내일은 어떻게 할지 질문을 가지고 잠으로 간다.(꿈일기장이나 노트에 구체적인 글로 쓰는 것도 좋다.)
3. 잠들기 전에 잠과 꿈의 선하고 순한 기능을 믿고 긴장을 풀고, (신학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잠에 든다. 'Let it go'(내버려 두는)하는 것이다.
4. 아침에 급하게 일어나서 핸드폰을 본다든가 습관화된 의식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그러려면 예상 기상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여유 있게 깨도록 조절하는 것이 좋고, 저녁 시간부터 서서히 조절해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꿈의 이미지나 느낌 속에 머무르면서 어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연결해 본다.
5.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고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지속한다. (꿈의 이미지를 낚는 것은 낚시나 농사, 사냥과 비슷하다. 실망하지 않고 계속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만약 꿈이 안 나오더라도 질 높은 수면이 보장된다.)
한낮의 태양이 어두운 밤을 비추네 밤이 꿈꾸는 낮에 밝음이 꿈꾸는 어둠에 아무것도 모르는 태양은 어둠을 묻은 그림자를 태우고 마침내 스스로를 태우지 한밤중 활짝 핀 꽃나무 그늘은 한낮의 사람은 갈 수 없는 곳 -영화 <파프리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