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꿈에서 독수리를 보았다. 사실 독수리는 아니었고 독수리 같이 생긴 검은 큰 새였는데 머리 부분이 살색으로 벗겨져 있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크기도 독수리 보다 훨씬 커서 지붕을 덮을 정도였다. 이름을 정확히 몰라도 문자로 기록하려면 비슷하게 아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으니 일단 '흰머리 독수리'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상이었기에 그게 인면조인가 생각해보기도 하고, 머리 부분이 벗겨진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유추해보기도 했다.
두 번째 독수리
오랜 시간이 지나 고대 마야 문명에 대한 책을 읽다가 그 새의 이름이 콘도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길이가 1.3m, 날개를 펼치면 3m, 몸무게가 10kg이나 되는 거대한 육식성의 맹금류, 콘도르. 원래 그렇게 생긴 그 개체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검은 머리여야 하는데 머리 쪽만 벗겨진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떤 의미를 유추했던 것은 무지한 나의 망상이었다. 내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생긴 독특한 생명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본 적이 없고 그 존재를 모르니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독수리의 특성에 끼워 맞추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독수리에 비해 뭔가 부족한 모습으로 보였고, 그러자 없는 의미를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이다. 콘도르라는 크고 멋진 새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멀고 오랜 세상에서 신대륙을 열었던 것이다.
세 번째 독수리
위의 글은 2019년에 쓴 것이었는데, 최근에 (정확히 2023년 10월 26일) 그 독수리의 정보가 한번 더 업데이트되었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에서 '로크'라는 이름의 동물에 대해서 읽게 되면서였다.
'로크는 독수리와 콘도르를 거대하게 확대시킨 동물이다. 중국해나 인도차이나해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콘도르를 본 아랍인들이 로크를 떠올리게 된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 로크가 서구에 알려진 것은 순전히 <아라비안나이트>덕분이다. 우리는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나오는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
"동료들에 의해 외딴섬에 버려진 신드바드가 저 멀리에 하얀색 원형 지붕이 있는 것을 보았고, 다음 날은 커다란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을 보았다. 원형 지붕은 다름 아닌 로크의 알이었고 구름처럼 보이던 것은 로크였다. (......) 마다가스카르 섬 주민들은 일 년 중 특정 기간이 되면 남쪽에서 굉장히 몸집이 큰 새가 날아온다고 말한다. 새의 이름은 로크라고 한다. 생김새는 독수리와 비슷한데 크기는 독수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로크는 대단히 힘이 좋기 때문에 발톱으로 코끼리를 낚아채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잡아먹는다. 로크를 본 사람에 따르면 날개 길이는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열여섯 걸음이나 되고 깃털은 하나가 여덟 걸음이나 된다고 한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p55-57)
처음에 독수리 꿈을 꾼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전이다. 그러니까 언어로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하지만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앎이 나중에 의식에서 연결되면서 더 견고한 언어와 앎으로 확장되는 경험이었다. 십여 년 전, 그 꿈을 꿀 때 <아라비안나이트>의 로크를 알았더라면 이미지를 보자마자 로크인 줄 알았겠지만.
무한한 다양체의 이미지
십여 년 전 꿈에서 본 독수리같이 생긴 큰 새가 흰머리 독수리가 아니라 콘도르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그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정보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로크를 알게 되면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다.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 세 마리가 아닌 무한한 다양체로의 독수리가 있다는 예감이 든다. 단지 그것을 모를 뿐. 상상할 수 없을 뿐.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무의식 안에는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오래된 세계의 힘들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칼 융은 집단무의식이라고 말했다. 칼 융은 무의식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누었고, 개인무의식은 개인의 출생 이후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 집단무의식은 선천적인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류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의 몇 프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흔히들 한다. 꿈을 통해서 본 세계의 방대하고 다양한 층위를 생각하면 그 말에 동의하게 된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것들은 극히 나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거나 못하는 힘이 차고 넘친다는 것을.
무의식은 믿음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매 순간 변화한다
기원전 90년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이미지는 몸에서 떨어져 나간 영상과 세계 속의 영상이 만나서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심리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느끼고 아는 존재>에서 인간이 생성하는 이미지를 내부장기 이미지, 몸 이미지, 외부 이미지의 세 가지 범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원전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했던 말과 흡사하다. 또한 다마지오는 마음의 내용물인 이미지들을 크게 세 가지 세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의 세계, 우리 안의 오래된 세계, 몸의 세계다.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는 정신의 의식과도 같고, 내부 장기, 신경, 뼈, 혈관 등 보이지 않는 내부의 몸은 정신의 무의식과도 같다. 신체의 활동에 대해 내부의 장기를 의식적으로 안다면(음식이 소화되는 과정 등)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므로 무의식에서 기능하면서 돕고 있는 것처럼 무의식도 깨어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다. 악한 힘으로든 선한 힘으로든. 그러므로 쥐어진 앎 이전에 자신과 세계에 대한 깊고 넓은 믿음이 있을 때 무의식은 믿음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매 순간 변화한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내부와 세계의 이미지는 관점의 채택으로만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마음이 풍성해진 과정을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풍성해지는 과정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 안에서 마음의 요소들이 추가되는 과정이다. (......) 현재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마음속 내용물은 내게 속하며, 내 소유이며, 나라는 유기체 안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p157)
'유기체가 마음을 소유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즉 유기체 내부의 지도화와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유기체/사물의 구조, 행동, 공간적 위치의 지도화는 유기체의 관점을 채택함으로써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p17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