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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사는 나 VS 현실에 사는 나

-간극 줄이기

by 오렌


꿈에 대한 글을 쓰게 된 동기


1화를 업로드해 놓고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면서 꿈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를 좀 설명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막무가내로 꿈이 중요하다고 결론부터 외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4년간 정신분석을 받았다. 분석을 종결하면 분석가의 지도하에 폭발적으로 나왔던 꿈이 더 이상 안 꾸어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 이후로 혼자서 꿈 작업을 하면서도 꿈은 계속 이어졌고, 꿈 노트가 한 권 두권 쌓여갈수록 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더 커져갔다.

꿈의 신비한 기능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무수히 했지만 심리학을 전공한 전문적인 분석가도 아니고, 학문적으로 깊이가 있는 학자도 아니고, 생리학적으로 꿈을 연구하는 과학자도 아닌 입장에서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꿈에 대해 말할 수 있을지 포지션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꿈에 관한 책을 읽고 요약하는 방식도 탐탁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분석받은 꿈의 내용을 쓰기에도 적절치 않은 것 같아 그 주변부를 배회하면서 자전적 소설이랄까 소설적 자전이랄까 뭐 어쨌든 꿈에 관한 무언가를 계속 기록하고 있었다.


사실 4년 전에 꿈을 소재로 <우리는 작은 기쁨이다>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적이 있었다. 분석을 받은 지 시간이 너무 지나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빨리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두른 대가로 후회스러운 책이 되고 말았다. 성급한 출간은 후회로 남았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떠오르는 대로, 검열 없이, 눈썹을 휘날리며 쓴 글이었고, 그 글을 쓰지 않았으면 사라졌을 기억의 씨앗들을 받아놓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보다 더 탄탄한 기획'을 해서 '언젠가' 다시 쓰겠다던 생각이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현실에서도 목표를 정하고 집중을 할 때 생산성이 올라가고 구체성을 놓치면 모호해지듯이 꿈도 마찬가지다. 꿈 세계에 관심을 갖고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할수록 구체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십여 년간 꿈에 대한 강한 호기심으로 찾아 읽었던 꿈 관련 책들과 찾아보았던 영화들과 찾아들었던 음악들과 꿈에 관한 기억들과 생각들을 버무린 꿈의 잡동사니 콤비네이션 피자 같은 글을 쓰면서 꿈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가까이서 영감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나가려 한다.

이러한 글에서는 당연히 결론이나 답은 없으니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고, 그저 슬슬 훑어보면서 몇몇 단어나 이미지에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글을 쓰는 보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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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제조과정


'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간단하고 확실하게 좋은 예시가 없는 것 같아서 빌려온 장면은 미셸 공드리 감독의 사랑스러운 영화, <수면의 과학>이다.

달력 일러스트를 그리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여섯 살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꿈 속에서 사는 남자 스테판과 앞집에 이사 온 수공예 예술가인 현실에 사는 여자 스테파니의 로맨틱 드림 판타지 무비다. 스테판은 우연한 기회에 스테파니의 작업을 같이 하게 되면서 친해지게 되고, 스테파니가 꿈에 나오게 되자 스테파니가 자신의 영혼의 짝이며 운명이라고 생각하고는 대책 없이 들이댄다. 스테파니는 3D안경이나 1초 타임머신을 만들어 선물로 주는 순수하고 재미있는 스테판을 좋아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다가오는 스테판을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 스테판은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자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되면서 점차 혼란스러워진다.


꿈속에 사는 남자 스테판과 현실에 사는 여자 스테파니는 둘 다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각각 다른 나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꿈결 같은 의식이 결여된 경직된 나와 너무 이상만 추구한 나머지 현실감각이 무너져서 현실에 적응하기 힘든 나,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서로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다가 진심을 이해하고 교감하듯이 내 안의 이상적인 나와 현실적인 내가 서로를 탐색하고 깊은 이해를 이룰 때 꿈과 현실의 간극이 줄어들고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영화에서 스테판의 꿈속을 방송국으로 설정하고 꿈의 제조과정을 요리를 만드는 과정으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꿈의 냄비에 재료를 넣는다. 복잡한 생각들, 추억이 더해진 기억, 오늘의 기억, 내일의 걱정거리... 모든 꿈의 재료들이 섞여서 꿈이 만들어진다.

악몽은 맛이 없는 요리이고 선몽은 맛있는 요리다. 악몽의 요소들을 분석해서 복잡한 생각이나 내일의 걱정거리를 덜어내고 건강한 기억과 싱싱한 내일의 기대를 추가하면 악몽을 선몽으로 만들 수 있다. 요리 실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악몽도 선몽도 모두 다 버릴 것 없는 재료가 된다. 맛있고 맛없고 가 따로 없고 모두 다 몸과 마음에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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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 사는 나와 현실에 사는 나의 간극 줄이기


한근태 작가님은 '공부란, 현재의 나(As is)와 미래의 나(To be)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이다.'라는 공부에 관한 멋진 정의를 내리셨다. 나에게 있어서 꿈을 기록하는 꿈 일기장과 일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는 꿈속에 사는 나와 현실에 사는 나를 조화롭게 이어주는 매체다. 한근태 작가님의 정의를 빌려서 말하자면 꿈 일기장 속의 나(Being)와 다이어리 속의 나(Doing) 사이의 갭을 줄이기 위한 모든 노력이 나의 공부다. 그러니 공부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다.


사람들은 보통 꿈에 나온 형상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꿈을 탐색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형상 자체가 아닌 꿈을 꿀 때와 꾸고 나서의 감정이다. 꿈 작업을 할 때,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보다 꿈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그 감정을 생각하면서 서서히 깨어나는 것이 꿈을 잘 기억하는 방법이다. 훈련을 통해 꿈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되고 현실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넥스트업 모델에서 보는 꿈은 기존의 기억에서 이전에는 탐색하지 않았단 약한 연관성을 발견하고 강화해 새로운 지식을 추출하는 독특한 수면 의존적 기억 처리 과정이다. 보통 뇌는 중요한 사건이나 직장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 개인적 근심 등 그날의 새로운 기억을 암호화하고 이 기억에서 출발해 약한 연관성이 있는 다른 기억을 찾는다. 이 기억은 그날의 기억일 수도 있고 더 오래된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다. 그다음에 뇌는 기억을 꿈 내러티브로 엮어 보통 때에는 고려하지 않을 연관성을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넥스트업은 꿈속에서 발견되고 드러난, 새롭고 창의적이며 통찰력 있고 유연한 연관성을 찾고 강화한다.'


-<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 146-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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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네가 원하는 게 이루어질 거야


스테파니의 사랑을 의심하며 괴로움에 지쳐 잠든 스테판에게 스테파니가 속삭이는 이 장면이 나에게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이 대사는 스테판과 스테파니와 같은 연인이나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더없이 아름다운 말이지만 꿈속의 내가 현실의 나에게 들려주는 깊은 신뢰와 사랑의 말이기도 하다.

꿈은 나의 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다.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와 세상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세상을 향해 나서면서 나에게 속삭이자.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네가 원하는 게 이루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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