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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의 협업

-꿈에서 채택한 아이디어

by 오렌


꿈을 생산적으로 활용한 실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지난달,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작업을 하면서 커버 디자인과 각 화마다 삽화 이미지를 직접 그려 넣고 싶어서 내용에 어울리는 장면들을 스케치하던 중이었다.




기본 스케치가 나오고 한 두장의 그림을 샘플로 채색을 했다. 연필로 그린 선을 검은색 펜으로 딴 후, 색연필로 색칠을 한 다음, 완성한 그림을 촬영해서 글이 있는 페이지에 삽입을 했다. 그림만으로는 괜찮아 보였던 그림이 막상 글이 긴 페이지에 들어가자 어울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브런치 텍스트는 기본이 검은색이긴 하지만 짙은 회색을 띠고 있어서 검은색 펜으로 딴 그림이 너무 튀어 보였다.

검은색 펜으로 선을 따지 않고 회색 연필 선으로만 그리고, 색도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만 사용해서 다시 그려보았는데 이건 또 그리다 만 그림처럼 완성도가 떨어져 보였다.

글의 이해를 돕고 글과 어우러져야 할 그림이 들어감으로써 없는 것보다 못한 느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동안 구상하고 스케치한 스무 장 넘는 그림을 앞에 두고 고민이 되었다.

사실 그림은 부차적인 요소라 반드시 넣지 않아도 되고 글의 완성도 있는 퇴고가 중요한 시점이었는데, 예측을 빗나간 그림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게 되어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림을 포기하고 글에 집중할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지를 구상하고 스케치해 온 시간들도 고스란히 살려내고 싶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의 천사를 기억하자.

그렇다! 낮동안 의식적으로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내일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천사에게 물어보고 잠에 들었다. 나의 천사는 꿈에 백설공주의 드레스를 들고 왔다. 백설공주 옷을 닮은 동화 같은 분위기의 드레스가 나왔는데,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에 흰색 무늬가 수놓아져 있어서 왕실의 공주들이 입는 것 같이 아주 고급스럽고 환상적인 색감이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A!'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원색에 가까운 빨강, 파랑, 노랑이 아니라 꿈에서 본 것 같이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운 삼원색으로 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포착은 산책을 하면서 우연히 알고리즘이 밀어 올려준 하나의 장면이었다. 평소에 찾아보지 않는 종류의 영상인데 그날따라 휴대폰에 떠오른 썸네일 이미지는 바로 빅뱅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뮤직 비디오였다. 삼원색이지만 비비드 한 원색이 아니라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어젯밤 꿈에서 본 느낌과 똑같았다. 색연필보다는 마커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색깔의 마커로 테스트를 해본 후 세 가지 색깔을 골랐다.




새로운 느낌으로 그리기에 착수했고, 커버 이미지부터 20화 까지의 모든 그림을 그렸고, 각 이미지를 각 화마다 삽입했다. 글보다 그림이 너무 튀지도 않고 잘 맞는 맞춤복 같이 착장이 되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우리의 천사가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슬쩍 아이디어를 건네준다. 꿈을 통해서, 알고리즘을 통해서, 카페 뒷자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의식과 무의식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잘 보고 잘 듣고 잘 활용하려는 의도와 마음이 세상에 펼쳐진 정보들을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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