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치킨집을 그리워하며
동네 골목길에 작은 치킨집이 생겼다. 못 보던 상호라서 자영업인 줄 알았는데 뒤에 프랜차이즈라는 걸 알게 됐다. 정겨운 기와 그림의 간판과 밝은 원목의 인테리어와 노란 백열등 조명의 가게가 그 골목에 들어선 것이 동네 주민으로서 썩 반가운 일이었다. 배달비도 만만치 않은 요즘 오다가다 직접 공수해 오면 배달비도 절약할 수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싼 느낌이 있긴 했지만 반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치킨의 맛과 품질이 중요한데 너무 만족스웠다. 후라이드와 양념, 오븐 구이, 갈릭소스 등 메뉴가 많지는 않지만 한 번씩 돌아가면서 먹기에 딱 좋았다. 특히 삶은 콩나물을 추가한 양념 치킨은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힐링푸드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이 치킨집에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주인장 부부와 그 공간에 있는 강아지 웰시코기 때문이었다. 신혼처럼 보이는 젊은 부부가 같이 일하고 있었는데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섬세한 친절이 인상 깊었던 차였다. 좁은 가게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음식을 준비하는 분도, 손님도 조금 불편할 것 같아서 전화 주문을 해놓고 음식이 나올 시간에 맞춰서 가지러 가는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한 번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저녁에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서 가게로 들어갔다. 비가 많이 와서 집에 갔다가 다시 가지러 오는 것이 번거로울 것 같아서 기다렸다가 가져가도 되겠냐고 했고, 친절한 주인장은 '물론이죠.'하고 밝게 말해주었다.
이십 분가량 그 공간에 머물면서 특별한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처음 내가 들어갔을 때 주인장 아저씨 혼자 주방에서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내가 들어오자 가게 안쪽에 있던 웰시코기가 '누가 왔나?' 하고는 머리로 커튼을 걷으며 나와봤다. 이 똘똘한 강아지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터득한 듯이 처음 보는 내 앞에 앉아서 머리를 조아리며 손길을 기다리기도 했고, 낯선 개를 조금 무서워하는 내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를 들어 머리를 갸우뚱하거나 눈을 깜빡이는 귀여움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영리한 웰기코기는 가게 직원으로의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듯했다.
가게 한쪽에 장식물이 하나 있었다. 돔형의 유리 덮개 안에 빨간 장미 꽃다발이 들어있고, 그 앞에 '우리가 만난 지 벌써 7년이네요. 앞으로도 서로서로 이해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아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편지가 있었다. 그 편지를 읽자마자 출입문의 '땡그랑' 종소리가 들리면서 여사장님이 들어왔다. 비가 많이 오는 중에 배달을 다녀오느라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강아지가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워서 앞발을 공중에 휘저으며 격하게 인사를 했고, 여사장님은 강아지의 머리를 재빠르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 똑똑한 강아지는 한 세트의 임무를 다 마친 듯이 곧바로 자기의 거처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남편 되는 주방에서 일하던 남사장님은 '이제 내가 갈게요.'라고 말했고, 아내인 여사장님은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어서 주방에서 대화를 이어가는데 웃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요즘 젊은 부부 같지 않게 상호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힘들고 피곤할 텐데 그저 서로 격려하고 웃으면서 일하는 모습이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가까이서 그 부부를 지켜본 것은 비가 많이 오던 날 하루였고, 그 이후로 맑은 날에도 여러 번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 가게는 쿠폰을 10장 모으면 메뉴 중 아무거나 한 마리를 무료로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고, 딱 열 장을 모아서 다음번 주문 때 한 마리 서비스를 받기 직전이었다.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 가게 유리문에 메모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A4용지에 급하게 갈겨쓴 것 같은 문체의 글이 적혀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쉽니다.' '무슨 사정이지...? 며칠 있으면 다시 하겠지.' 생각했다. 일주일쯤 지났나? '몸이 아파서 당분간 휴업합니다. 죄송합니다.'로 조금 더 정돈된 글씨체로 바뀌어 있었다. '몸이 아프다니. 누가, 어디가, 얼마큼 아프다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당분간이라고 했으니 조금 쉬다가 곧 다시 하겠지.' 생각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문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잘 닦아서 반짝거리던 유리문은 희뿌연 먼지로 뒤덮여서 내부가 잘 보이지 않게 변해갔고, 문 아래 틈으로 밀어 넣은 전단지들이 쌓여갔다. 그 무렵, 내가 모아둔 쿠폰 열 장에 대한 원망도 살짝 일어났다.
어느 날 저녁, 그 골목을 지나는데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고, 가게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골목을 지날 때 내 기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던 백열등 불빛이었다. '이제 다시 영업을 하려나보다.' 반가운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가게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 사장님과 새 주인이 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곧 새 주인 부부가 운영하는 치킨집이 오픈했다. '요즘 사람들 같지 않던 사이좋은 그 신혼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마음이 쓰였다. 새 주인에게 그동안 모아둔 쿠폰 얘기를 하자 흔쾌히 받아주었고, 같은 가게에서 새로운 손맛의 치킨을 맛보았다.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잘했지만 옛날과는 확연히 다른 맛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지금, 냉장고 옆면에 새 주인의 치킨 쿠폰 한 장이 오랫동안 붙어있다.
이후로 동네 산책을 하면서 옷가게, 미용실, 꽃집, 식당...... 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휴업합니다'라는 문구를 자주 보게 되었다. '가정사 때문에', '몸이 아파서'와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부연하기도 하고, 아무런 설명 없이 곧바로 '임대'가 붙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보아왔던 이웃들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공사가 시작되고 새 주인이 웃으며 반기는 골목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들이 써 붙이는 '개인적인 사정'이란 게 꼭 개인적인 사정 일까도 생각해 본다. 모든 사정 있는 개인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