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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26. 2023

훌륭한 불행이 아닌 아무나 행복한 사람 되기


강호동 : 어떤 사람이 될 거예요? 어른이 되면?
이경규 :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이효리 :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수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한 “그냥 아무나 돼.”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게 꽤 파급력 있게 회자되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말로 강요받고, 부담을 느낀 사람들의 '그냥 자신으로 커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나마 이효리의 쎄고 쿨한 조언이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효리는 얼굴에 있는 잡티나 주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든가, 주위 사람들에게 한 상담 전문가와 같은 말을 비해서 수많은 인용 사례들을 남기며 아름답게 변화해 가는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서 무심히 뿜어져 나온 어떤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경탄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사유해 본 사람의 깊은 내공은 그 사람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저절로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 자체가 퍼스널 브랜딩이 되는 것이다.




 한 유명 래퍼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한 인터뷰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 현수(가명)는 어릴 때부터 항상 공부도 잘했고, 착하고, 부모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였어요.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다 잘 극복해 낼 거라고 믿어요... 현수야, 아빠도 엄마도,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너를 믿는다.”

 부모님이 나온 인터뷰 영상을 보자마자 그 래퍼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냈다. 말로 다 전달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나는 그 래퍼 원인 모를 힘듦이 어머니로부터 온 문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통 우울하고 걱정스러운 갑갑한 분위기로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 없이 잘해왔다. 그러니 잘해 낼 거라고, 믿는다고 끊임없이 강조하는 어머니의 분위기는 좋게 말하면 선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답답한 공기, 솔직히 말하면 그 답답한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사랑하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이효리처럼 쎄고 쿨하게,

 “이제 성인이니까 좋아하는 것 하면서 맘대로 살고, 부담 없이 재미있게 해.”

 그렇게 마음의 무게를 덜어줘야 한다는 걸 배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온 마음의 무게를 실어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강요하는데, 바람처럼 자유롭고 가벼워야 할 음악이 잘 될 리가 없지 않을까? 아들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 거두는 것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에게 치료이고 해방이고 자유로운 음악이 된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자신에게 돌려 자신을 믿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아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일테고.

 

 


 같은 주제의 드라마도 기억이 난다. 평생 아들에게 헌신해 온, 의존이 심한 어머니가 아들이 어떤 난관을 겪으면서 짐을 싸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준호(가명)야, 엄마는 너를 믿는다. 꼭…”

 말을 이어나가려고 하자 성인이 된 남자는 억눌렀던 감정을 폭발하면서 뒤돌아보았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분노에 가득 찬 큰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외쳤다.

 “믿지 마세요. 제발! 그놈의 믿는다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요!”

 

 쓰다 보니 비슷한 예가 줄줄이 사탕처럼 엮여서 올라온다.

 공부모임에서 한 50대 학인이 아들이 첫날 시험을 잘 쳤는데, 둘째 날 시험을 망쳤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기 주변에 공부를 많이한 누군가가 말하기를 엄마인 자신이 사회활동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자녀의 힘까지 빼앗았다는 식의 말을 했다며 모종의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이 좀 자중했으면 아들이 시험을 망치지 않았을 거라며.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람이 그런 미신 같은 말을 전하고 또 믿다니! 자식의 잘됨을 바라고 기원하는 어머니 마음을 탓할 수야 없겠지만, 좀 더 냉철하게 들여다 보지 않으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뭉뚱그려진 모호하고 거대한 감정의 실체로 인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크게 소모적인 삶을 살게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그 불안한 마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그 불안 덩어리 때문에 자식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사회생활은 사회생활이고, 자녀의 시험은 시험이고, 더 확고한 자기 결정과 분리된 단단한 마음이다.


 그분은 책을 고르고 읽더라도 <가족이 뭉치는 것이 힘이다>와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고 감탄한다. <자식을 놓아라>와 같은 심리학 책도 많고 많지만 자신에게는 저항이 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강화시키는 쪽이 쉽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집, 집착, 욕심, 강화된 이고, 그 마음을 보는 것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식을 위한 길이 된다. '이러면 잘 될 것을, 이래서 잘 안되었다.' 안달복달하는 그 마음 말이다. 잘 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안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안 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마음 자체가 병이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실수도 하고, 망해도 보면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그냥 좀 내버려 두라.




 즉문즉설과도 같은 종교 방송을 보면 할머니들이 아들에 대한 걱정을 많이도 한다. '아들이 착하다. 효자다. 믿는다. 그런데 며느리가 들어오고 나서......'

 아들은 착하지 않고, 효자도 아니다. 믿지도 마시라. 그냥 성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시라. 그리고, 어머니 본인의 인생을 잘 가꾸시라.

 

 관계에서의 대부분의 문제는 변질된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 존중, 용서, 사랑, 자신에 대한 회복이 없는 관계는 의존이 될 뿐이다. 건강하지 못하고 영원할 수 없다. 사람에 대해, 특히 남편이나 자식, 가까운 사람에게 믿는다는 표현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러나, 깊이, 곰곰이, 잘 생각해 보자. 뭘 믿는다는 건가? 그 믿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자신의 불안이 아닐까? 타인에 대한 믿음이란 건 자신의 불안을 위한 것,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되는 무거운 감정이다.


 자신은 쉽게 용서하고 타인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모순처럼, 타인에게 믿는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약한 정신일 가능성이 크다. 타인을 용서하고, 타인에게 편하게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자신을 굳게 믿는다. 타인의 기대와 믿음에 압도되는 사람은 훌륭해질지는 모르지만 행복해질 수 없다.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지라도, 아무나 되어도 행복할 수 있다. 훌륭한 불행을 떠나 행복한 아무나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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