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을 말할 수 없고,
여름 한 철 깔따구는 가을을 말할 수 없다.
개구리는 우물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고,
깔따구는 여름이라는 시간에 갇혀 있다.
산책을 하는 동안 최진석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새로운 차원을 느꼈고, 그 충격과 감동의 여파가 날아가버리기 전에 기록하려고 한다.
우물 안 개구리 비유나 여름 한 철 벌레에 대한 비유를 살아오면서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마다 그에 대한 해석은 자기 만의 좁은 관점에 갇히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입장에서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는 것 같이 여겨지더라도 상대적으로 언제나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임을 알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오늘 들은 강의에서 최진석 교수가 풀이하는 장자의 입장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좁은 관점에 갇혀 있는 우물 안 개구리의 처지, 그렇게 작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비참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보고 알게 되는 것의 중요함이다. 그렇게 된 사람은 비로소 '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줄을 모르고 단순히 우물 안 개구리의 공간적 한계만을 의식한다면, 끊임없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는 쪽으로만 방향 설정을 한다면, 우물 밖을 정처 없이 돌아다닐 뿐 정작 우물 안 개구리 비유의 더 넓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 것일 터였다.
안 가본 세상을 가봄으로써 세상을 이해하고 식견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해마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좋다는 강연에 참석하며, 수집한 온갖 정보에 짓눌리고, 끝없이 외부 세계를 배회하는 활동만으로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해석을 들려준다.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이며, 여름 한 철 밖에 살아보지 못한 깔따구의 처지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그 능력을 대단히 높게 말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보는 능력이 없거나 대단히 힘들다는 것이다. 실재와 현실과의 괴리를 처리할 힘이 없는데, 실재를 알게 되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무의식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비밀을 은폐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반성력'이라고 한다. '반성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말로 '탄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반성력이 없는 사람은 탄성이 없는, 푹 퍼진 상태라고 비유한다. 스스로가 개구리와 갈따구임을 아는, 탄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본다는 것은 살아갈 의욕이 뚝 떨어질 만큼 비참한 일이기도 하고, 그만큼 힘과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자기 부정과 수용, 파괴와 창조의 연금술이 일어난다.
냄새나는 거름이 양분이 됨으로써 씨앗이 움트고, 두려운 폭풍우가 지나가고 세상이 더 맑고 깨끗해지듯이 자신의 개구리 됨, 자신의 깔따구성, 공간과 시간의 노예로 살아온 고통과 비참함을 직면하는 힘은 우물 밖 겨울로 나서는 힘찬 발걸음이 된다. 개구리가 왕자가 될 수 있는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