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모닝페이지 <개구리와 깔따구>에 이어서 동물 소재로 라임을 맞추어 <기러기와 호박벌>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19세기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바로<기러기 이야기>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 떼의 기러기가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한 들판에 내려앉아 하루를 쉬게 되었다. 다음날 날이 밝아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데 한 기러기가 주위를 살펴보니 추수 직후라 먹을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거위들은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고 날짐승들의 위협으로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이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가. 거위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기러기는 무리를 따라가지 않고 하루만 더 묵으면서 곡식을 먹고 힘을 차려서 날아가려고 마음을 먹는다.
기러기는 대장 기러기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내일은 힘을 내서 날아가 조만간 무리와 합류하겠다고 말한다. 대열에서 이탈한 기러기는 거위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무리는 떠나가고 혼자 남아 너른 들판의 낱알곡식을 혼자 여유롭게 먹고 하루를 지낸 기러기는 추위를 피해 힘들게 날아갈 필요도 없고 아무 걱정 없이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았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먹을 걱정을 하지 않고 보낸 기러기는 그다음 날이 되자 고민에 빠진다.
‘그래, 오늘 하루만 더 먹고 내일은 더 빨리 날아서 무리들과 합류해야지.’
그래서 그날도 먹이가 풍부한 너른 들판을 여유롭게 노닐며 곡식을 주워 먹고 지냈다. 그렇게 하루하루 미루다가 결국 겨울이 오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 푸른 창공에 기러기 떼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 난 기러기야. 여기서 편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하늘을 날 때의 상쾌한 기분과 자유로움이 그리워. 자, 이제 날아가 보자.’
기러기는 날려고 날개를 움직여보았지만 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날지를 않아 날개에 기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기러기는 거위들을 향해 자기처럼 거위들도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거위들은 기러기를 향해 날지도 못하면서 말만 하는 뜬 구름 잡는 몽상가라고 비난했다. 쉽고 편안함에 안주해 버린 기러기는 끝내 기러기의 본성을 잃고 거위보다 못한 존재로 비난받으며 거위들 틈에 살게 된다.
결국 거위들에게 동화된 기러기는 날기를 포기하고 거위처럼 뒤뚱거리며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기러기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하늘 날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부여받은 기능이 퇴화되어 날지 못하게 된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위는 절대 기러기가 될 수 없으나,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돼 버린다. 경계하라!”
날 수 있는데 오랫동안 날지 않은 결과 날 수 없게 되어버린 기러기의 퇴화에 반대되는 귀여운 동물이 있으니 바로 호박벌이다. 통통한 몸에 노란 꽃가루를 가득 묻힌 채 호박꽃 속에 숨어서 꿀을 먹고 있는 호박벌은 몸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날개를 가졌다. 이에 호기심을 품은 과학자들은 호박벌의 몸과 날개의 상관관계를 계산했는데 결과적으로 과학적으로는 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 밝혀졌다. 과학자들의 심각한 연구에 아랑곳하지 않는 호박벌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날아다니면서 꿀을 모은다. 심지어 자기보다 몸집이 날렵하고 비교적 날개가 큰 꿀벌이 초당 240회의 날갯짓을 하는 것에 비해 몸체가 통통하고 날개가 더 작은 호박벌은 초당 260회의 날갯짓을 하며 꿀을 모으기 위해 하루 200km 이상 비행을 한다.
신체 구조상의 불가능한 기능을 극복하고 기적의 비행을 할 수 있는 이유를 과학자들이 분석하기를 계속되는 날갯짓으로 날개 안쪽의 근육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호박벌은 자신의 불가능한 몸의 구조나 날 수 없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모르고, 자의식 없음으로 인해 비교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오로지 꿀을 모은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단순한 일관성이 조건과 한계를 돌파하지 않았을까?
예부터 우화, 즉 동물의 이야기는 도덕적인 명제나 인간의 행동을 은유적으로 예시해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보편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날 수 있는데도 날 수 없는 무리 속에서 안주하면서 오랫동안 날지 않아서 본성을 잃어버리고 날 수 없게 된 기러기의 퇴화와 날 수 없는 구조임에도 꿀을 모은다는 일념으로 꾸준하고 재빠른 날갯짓을 멈추지 않으므로써 자신의 구조적인 불가능을 넘어선 호박벌의 진화는 우리 안에 습성으로 잠재되어 있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인생 별거 있나. 살던 대로 살아라!'라는 명령과 '인생은 한 번뿐이고, 나는 특별한 존재다.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명령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자의식이 있기에 프로그래밍되어 멈추지 않고 행위하는 동물보다 나약하고, 또한 한번 마음을 내면 동물보다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