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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Nov 29. 2023

나는 똑똑해지고 십다

-대니얼 키스(Daniel Keyes), <앨저넌에게 꽃을>을 읽고


 서랍 속에서, 수년 전에 읽고 써둔 대니얼 키스, <앨저넌에게 꽃을>의 독후감을 꺼내서 퇴고하는 것으로 오늘의 모닝페이지를 대신하려고 한다.

 이 책은 똑똑해지게 되는 한 모자란 남자의 이야기이다.


 IQ 68, 지적발달장애로 인해 일곱 살 수준의 지능을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 찰리 고든은 증오와 수치심으로 자신을 향해 칼까지 든 엄마에게 버려졌다. 가족들에게로부터 외면당한 찰리는 빵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빵집 동료들은 부족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찰리를 좋아하고 그의 주변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그에게는 항상 똑똑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똑똑해지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 똑똑해지면 엄마가 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줄 테니까.


 32세의 지적장애인인 찰리 고든. 그의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주일에 세 번, 센터에 나가 열심히 공부하는 그에게 저명한 대학교수가 꿈같은 제안을 하게 된다. 똑똑해지고 싶은 찰리의 욕망을 읽은 교수는 게놈 프로젝트의 실험 대상이 되어 뇌수술을 하고 그 변화에 대 실 보고서를 쓰고 테스트를 받는 조건을 내건다. 박사님은 수술이 아프지는 않다고 말했지만 남들처럼 영리해지고 싶은 열망이 큰 찰리는 똑똑해질 수만 있다면 아파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 실험에 응하게 되고, 테스트의 과정에서 자신과 같은 실험을 통해 높은 지능을 갖게 된 하얀 생쥐 앨저넌을 만나게 된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교수는 찰리에게 당장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머리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면서 자신과 연구진들을 믿으라고 한다. 또 어제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과 그것을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하면 자신의 문제를 밝힐 수 있다고 말한다. 박사는 꿈과 기억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왜 그런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더라도, 앞으로 언젠가는 모든 것이 결부되어 자신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찰리는 머리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모든 지시사항을 열심히 따르게 되고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똑똑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다음은 지능이 높아진 찰리가 쓴 글들이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연구실의 일이 끝난 뒤 대학 캠퍼스를 서성이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책을 들고 오가는 젊은 남녀학생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이 교실에서 공부한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들이 캠퍼스 식당에 모여 책과 정치와 사상에 대해 토론할 때, 나도 커피를 마시면서 그들과 함께 얘기하고 싶다. 그들이 시와 과학, 철학에 대해, 셰익스피어와 밀턴에 대해,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에 대해, 플라톤과 헤겔과 칸트에 대해, 내 가슴에 교회의 종소리처럼 다가오는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

 때때로 나는 주변의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나도 학생인 척한다. 나는 책을 들고 다니며 파이프를 피우기 시작한다.

어리석은 생각 같지만 연구실에 속해 있는 이상 나도 이 대학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캠퍼스 식당에서 몇 명의 남학생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셰익스피어극을 썼을까 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있는 뚱뚱한 남자-이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모두 말로가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낀 작은 몸집의 레니는 말로가 썼다는 설은 믿을 수 없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이 썼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대학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어서, 극 중에서 엿볼 수 있는 높은 교양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신입생 모자를 쓴 사람이,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셰익스피어 극은 여자가 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와 예술과 신에 대해 얘기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따위의 얘기를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속으로 매우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 가서 교육을 받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 줄곧 믿어왔던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과, 무슨 일이건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임을 깨달았다.

 그들이 토론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몸 안에서 부글부글 열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대학에 가서 사람들이 유익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요즘은 자유시간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내며, 책을 읽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다. 특별히 이렇다 할 분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지금은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디킨스, 헤밍웨이, 포크너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그동안의 굶주림을 채우고 있다.

(85-87쪽)


 IQ68에서 IQ180이라는 놀라운 지능을  소유하게 된 찰리는 행복해졌을까? 기억을 되찾으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자신을 향한 웃음이 모자란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비웃음이었음을 깨닫고 상처를 받는다. 주변 사람들은 몰라보게 변화된 찰리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그를 떠나간다. 겨우 사귀게 된 여자친구도 너무 똑똑한 남자친구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떠나간다. 찰리는 마음에 입은 상처는 높은 지능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힘들게 쟁취한 그 뛰어난 지능으로 마주치게 된 것은 예전보다 더 외롭고 불행해진 현실이었다.


 게다가 자신보다 먼저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생쥐 앨저넌이 부작용으로 급격한 퇴행을 겪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앨저넌의 모습에서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예측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지능을 높이는 가설 전체에 의문점과 결함이 발견된다. 언젠가 이 문제를 극복하게 될 날이 오겠지만 찰리는 그 실험의 실험체로서 더 이상 인체실험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소설은 찰리가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소설의 전 과정을 통해 IQ가 낮을 때 맞춤법이 엉망이고 문장도 떠듬떠듬 이어나가던 찰리가 수술 후 논리가 완벽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고, 이후에 퇴행을 겪으면서 다시 처음의 낮은 지능으로 돌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다른 설명 없이 문체 자체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백미이며 특별한 묘미다.

 천재적인 지능에 까지 도달했던 찰리가 다시 퇴행이 되면서 쓴 보고서들의 제목들이다.

 '나는 전에 천재였다고 말하니까 그는 웃었다

 동정은 실타

 마법의 가루를 사고 십다

 제발...... 제발...... 일끼와 쓰기를 잊어버리지 안토록 해주세요...'


 지능이 낮아서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 부담을 안고 지능이 높아지는 실험적인 뇌수술을 강행하지만 높아진 지능으로 마주한 세상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주인공의 이런 상황은 지적 수준과 행복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인체 실험의 비윤리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히기도 했고, 지능이 높아지면서 잃어버리는 관계와 인간적인 고독에 대한 경종으로도 느껴졌지만, 나는 찰리의 똑똑해지고 싶고, 배우고 싶고,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열의와 에너지에 감동을 받았고, 중요한 것을 잃으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고 또 소멸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찰리의 삶 전 과정에 지지를 보낸다.


 찰리가 느끼는 지적 결핍과 관계의 박탈에서 오는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오고 있는 중년의 나에게도 찰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비애가 있음을 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생존의 질과 양을 늘리는데 가장 이로운 방향을 설정하고, 결단을 내려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만하는 것 또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고 목적이기에 부작용의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성장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 아닐까? 찰리의 성취와 퇴행이 오롯이 내 삶에 투영된다.


 지능 장애인 찰리를 내세운 이 소설은 정신의 자각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정신적 진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므로 찰리와 동일시되었고, 감정이입이 되었고, 울림이 컸다.

 성장 진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일이기에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성장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과거의 행복에 머무를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이것만 해내면 더 행복해질 거야." 온 힘을 다해 달려온 곳에서 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보이는 것이 어쩌면 유한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그런 부족함과 슬픔을 당연한 것으로 마주할 담담한 마음이 힘을 생각하게 한다.


 급격한 지능의 발달로 급격한 행동 퇴행을 겪으며 이른 죽음을 맞이한 앨저넌의 무덤에 꽃을 놓아달라고 부탁하는 찰리의 엄숙한 메시지는 부조화와 부적응의 퇴행 속에서도 성장을 향하는 우리 자신에게 바치는 헌화로 들린다.

 지적장애가 있든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든, 평범하든 특별하든 우리 각자는 어차피 지는 것이 정해져 있음에도 자신의 가능성을 피워내는 한 송이 꽃이다.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고 땅에 씨앗을 떨어뜨리며 죽어갈 한 송이 숭고한 꽃들이다. 그렇게 진 꽃은 틀림없이 아름다운 흙이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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