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조 디스펜자 박사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에 실린 척추 사고와 마음의 힘으로 극복한 사례를 읽고 쓰면서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가 떠 올랐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불과 2년 전 이맘때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업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롭게 하게 된 일이라 그 일에 잘 적응하고 잘 해내기 위해 모든 것으로 몰입을 하던 중이었다. 많은 양의 그림을 수작업으로 드로잉 하고 색연필로 꼼꼼하게 채색을 하고 가위로 오려서 아트웍을 제작했다. 이어 그림들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촬영을 한 다음, 촬영물을 포토샵과 애프터이펙트 등 그래픽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영상 편집을 하고 효과음을 넣는 것으로 2-3분 분량의 영상물로 완성하는 2주 기반의 일련의 과정은 많은 시간과 정교함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스스로 업무량과 일정 조율을 잘 못할 경우, 리듬을 잃게 되고 자연적으로 건강을 잃게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잘 알고 있었음에도 한번 작업에 착수하면 계획된 일정을 초과해서 끊지 못하고 밤늦게 까지일을 하는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고,그러다 문제가 생기고야 말았다. 틈틈이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는 등 나름의노력을하던 중아치 형으로 생긴 허리 스트레칭용 소도구를 구입했고,그 위에 눕는 순간이었다. "찌릿!" 허리에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조심스럽게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당장은 괜찮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때 디스크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더 커지고 급기야는 허리를 바로 펴지도 못할 지경으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꺾인 채로 실내를 걸어 다닐 만큼 급성으로 나빠졌다.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할 상태였지만 조 디스펜자 박사가 자신이 수술을 하게 되면 나머지 인생을 통증과 약물에 찌들어 살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믿고 자연치유법을 선택했듯이 그때의나도 뭔가 나만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다. 이대로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급성 디스크라든가 어떤 병명을 진단받게 될 것이고 수술이든 간단한 시술이든 약물 치료든 뭐든 당분간의 일상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고, 잠도 줄여가면서 적응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담도 더 커져서 잘못하면 어렵게 구한 일을 놓칠지도 모르며, 환자라는 정체성과 우울한 감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또 다른 에너지에 대한 부담도 예측이 되었다. 당장은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와 파스로 버티면서 하루 이틀 경과를 보고 병원에 가자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마침 가장 최악의 상태일 때 작업 과정 중 가장 허리를 많이 쓰고집중해야 할 촬영이 잡혀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건강 문제로 일정을 조정하는 아마추어 같은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다리를 접을 수 있는 상을 펴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해서 촬영을 끝냈다.
다행히 더 악화되지는 않았고 서서히 바로 서기가 가능해졌다.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통증 이후라 병원에 가지 않고 다시 바르게 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다. 작업에 매몰되어 걷기조차 잘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근육이 굳어지고 신경이 약해진 것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대가는 반드시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올바른 방법을 찾고 배우도록 만든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무언가 해야 했고, 걷기부터 시작했다. 걷기에 대해서 검색을 하자 EBS 다큐 걷기부터 시작해서 걷기 혁명, 걷기 명상, 이시형 박사의 걷기의 중요성, 10CM 보폭 넓혀 걷기, 마사이 워킹...... 등 걷기에 대한 영상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걷기에 대한 영상을 들으면서 동네 시냇가를 걸었다. 걷는 동안 또 허리에 무리가 오거나 안 좋아지면 병원에 갈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10분씩 시간을 늘려갔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걷기가 일상이 되었고, 영상 강의뿐 아니라 건강에 대한 책 읽기를 병행하는 것도 몸이 빠르게 회복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근태 작가님의 <고수의 몸 이야기>를 읽으면서 '걷기는 운동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중요한 글을 읽었음에도 당장은 살만했는지 실행하지 않고 있었는데 몇 번이고 이어서 '당장 헬스장에 등록을 하라!'는 문장을 읽다가 어느날, 벌떡 일어나서 헬스장에 6개월 등록을 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얼마나 몸이 굳어있었는지 누워서 다리를 90도로 들어 올리는 것조차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듯이 통증이 느껴졌다. 그때 역시 허리가 아팠을 때처럼두려움을 느끼면서 며칠 운동 해보고 통증이 생기면 병원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한 달...... 10분씩 시간과 강도를 늘여가면서 운동을 일상화, 습관화했고, 운동을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컨디션의 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졌다.
그 헬스장은 일요일, 공휴일은 쉬는 날이라 운동을 안 하는 날도 있었는데, 6개월 후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헬스장을 발견했고, 그곳에 1년 등록을 했고, 태풍이 부는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1년 동안 꾸준히 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도 운동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참혹한 상태를 떠올리며 꾸역꾸역 가기도 했지만 시간들이 쌓이면서 이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거나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기본적인 생체 리듬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년이 종료되는 시점인 지금, 다시 1년을 갱신했는데, 이번에는 1년 등록 회비에 한 달에 1만 원을 더 내면 하루에 2회 출입할 수 있는 회원권을 끊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해서 기분 좋은 활력을 확장하고 테스트해 볼 생각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유의 형태로 '보행의 자유'를 말씀하셨다. 나 역시 하나의 자유를 꼽으라면 '보행의 자유'를 선택하겠다. 이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튼튼한 내 두 다리로 걸어 다니기를 바란다.
신은 통증과 질병을 통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일깨우고 배우도록 한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꺾인 채로 엎드리다시피 해서 촬영했던 그 두려움은 책상 앞에 오랜 시간 앉아있는 악습을 떨치도록 하고 바르게 서는 것, 팔을 쭉쭉 뻗는 것, 다리를 힘차게 흔들며 걷는 것, 어깨를 활짝 펴는 것, 앞으로, 뒤로, 옆으로, 위, 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르쳐 주었다.
덧없는 희로애락과 불필요하게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 넋을 잃고 책상 앞에 앉아있지는 않는지 주시하고, 벌떡 일어나 몸을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