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드미(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고안한 동작 예술)를 할 때, 첫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일어서기'였다.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머리를 발 가까이에 가져가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만든다. 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엉덩이, 척추 한마디 한마디, 목뼈를 지나 머리, 둥글게 말린 몸을 직립의 상태가 될 때까지 천천히 일으켜세운다.
두 발은 땅에 단단하게 붙이고 머리끝 정수리의 한가운데에 투명한 실이 연결된 것처럼, 그 실이 우주에 있는 나의 별에 연결되어 당겨지듯이 반듯하게 선채 시선을 앞으로 향한다.
캄캄하고 텅 빈 우주 공간 속에서, 생명이 움트는 식물의 싹처럼, 신체의 각 부위를 의식하면서, 나의 의지로, 서서히 일어섬과 동시에 무언가 나보다 큰 존재에 연결되어 끌어당겨지는 듯이 반듯하게 일어선다.
유리드미를 경험한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은 동작으로 '일어서기'에 대해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일상 속에서 일어서는 동작을 수시로 하지만, 보다 의식적으로 '일어서기'를 하면서 매일의 작은 죽음인 '잠'으로부터 매일의 작은 삶인 '깸'을 경험하는 이 동작의 숭고함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곤 했다.
일어서기 다음으로 배우는 동작은 '걷기'이다. 한 발이 땅에서 떨어져서 허공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고 착지하는 한걸음을 3단계로 나누어서 천천히 의식적으로 걸음으로써 걷기 명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일어서기'와 마찬가지로 '걷기'를 할 때면 일상적으로 늘 걷는 동작임에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는 아기가 된 것처럼, 한동안 걷지 많았다가 재활 치료를 하는 사람처럼 걷기가 낯설고 새로운 감동이 느껴지곤 했다.
땅에서 발을 떼고, 앞으로 옮기고, 다음 위치에 착지하고, 땅에서 발을 들어 올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다음 위치에 내려놓고...... 나의 의지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걷기는 바쁘게 우왕좌왕하는 당연하고 상투적인 일상의 동작이 아니라 신성한 의지적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고, 기고, 상체를 들어 올리고, 앉고, 서고, 걷기까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간단한 소리로 옹알이를 하다가 단어를 발음하기 시작하며, 단어를 조합한 간단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바르게 서고 걷는 것과 언어는 같이 발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래전에 배운 아동 발달 단계를 떠올리다가 인간의 발달 과정과 같은 단계로, 역으로 퇴행도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뼈와 근육이 약해지고 감소하면서 보행의 자유를 상실하는 어르신들은 언어적인 퇴행도 동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걸음이 느려지는 노인은 언어 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반듯하게 서지 못하면 자유의지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바르게 서는 것으로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된다.
흙의 밀어올림과 태양의 이끄심으로 움트는 새싹처럼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빛을 향해 반듯하게 서는 것으로 생명력을 가득 충전한다.
앞으로 걷고, 뒤로 걷고, 옆으로, 옆으로, 원을 그리며...... 빠르게, 또는 느리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