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정도 기침을 했다. 열이 나거나 다른 증상은 없이 마른기침만 해서 처음 하루 이틀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사흘째 되는 날은 밤에 기침이 심해져서 약국에서 기침감기약을 사 먹었다. 약을 먹으면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은 잦아들다가 약효가 떨어질 때 즈음되면 다시 기침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다른 증상은 없어서 사논 약을 다 먹고 그때 봐서 병원을 가려고 하고 있었다. 잔기침이 수시로 나니 도서관에서도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 같아서 자주 밖에 나가게 되고, 일상의 틈바구니로 들어온 바이러스가 생활의 질을 떨어지고 있었다.
딱 일주일 되었을 때, 낮에 도서관에서 백일해가 유행한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자마자 30년 전에 결핵에 결렸던 기억이 떠 올랐다. 결핵에 걸려서 대학교를 1년 휴학하고, 매일 약을 한 줌씩 6개월간 먹으면서 무기력하게 지냈던 그 나쁜 느낌말이다. 혹시......?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다. 약은 한번 분량이 남아있었고,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일찌감치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말했다.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일주일이면 저절로 떨어질 때가 됐어.'
밤에 기침이 더 심해졌고, 잠에서 자주 깰 정도였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꿈을 꾸었다.
내가 클림트나 에곤쉴레 그림에 나오는 마른 여자가 되어 나체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실제의 나의 피지컬은 과체중인데, 꿈속의 나는 등의 척추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있었고, 마른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파 보이는 그 여자, 나를 피부가 희고 퉁퉁하고 건장하게 보이는 남자 의사 선생님이 흰색 반팔 티셔츠 같은 가운을 입고 온몸을 주무르면서 열성적으로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오늘은 꼭 병원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먹어졌다. 더 이상 회피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꿈의 선명한 시각적 효과와 그로 인해 전해지는 강렬한 감정은 실천력을 불러왔다.
에곤 쉴레의 그림처럼 말라서 죽어가는 듯한 여자도 내 안의 기침하는 사람이고, 그 여자를 살려내는 희고 건강한 느낌의 열성적인 의사도 내 안의 치유력이다. 꿈속에서 다 죽어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회피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올라왔고 병원에 갔다. 작고 친절한 여자 의사 선생님은 백일해는 아기들에게 유행하는 것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일주일분 약과 주사를 처방해 주셨다. 주사를 맞고 처방된 약을 먹으면서 병세는 금방 호전되었다.
십여 년 전에 꿈으로 발견한 병을 치료한 사례가 있었다. 나체인 가슴 끝에 귤이 붙어있는 이상한 꿈이었다.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 유방암 검사를 했고, 놀랍게도 유방암 0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유방암 0기란, 아직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1기로 진행될 수 있는 석회 물질이 발견된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수술 날짜를 빠르게 잡았고, 수술은 하루 입원할 정도로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통증도, 수술 자국도 없었고, 당시에 극한 알바로 잠도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수술과 입원이 휴가같이 달콤하게 여겨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하튼 꿈은 보이지 않는 몸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사례다. 김서영 교수의 <내 무의식의 방>에서 '치유'에 대한 색다른 정의를 찾을 수 있었다.
치유란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결정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자기와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꿈이야말로 대화하기 가장 좋은 재료다.
아픈 내 모습은 왜 클림트나 에곤 쉴레 그림의 여자처럼 나왔을까? 이 질문은 오래전,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보면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내밀한 소망을 끌어냈다. 사랑받으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는, 너무 많이 듣고 읽어서 식상해진 경구도 떠오른다. 꿈이 말하는 다양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 개인의 취약함과 비교되는 불멸성, 신성이다. 우리 안에는 한없이 나약한 죽음의 존재, 타나토스에 이끌리는 나와 그를 극복하려는 사랑의 존재, 에로스가 동시에 존재한다. 나를 살리려는 의지, 나를 도우려는 마음,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실천력은 모두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