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이루는 최소의 단위를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물질로 보았다. 이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네 가지 물질이 따뜻하고 차갑고, 습하고 건조한 성질과 만나서 결합과 해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네 가지 물질설은 2000년 이상 세상을 지배했다.
기원전 1세기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만물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입자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의 생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루크레티우스는 단 한 권 남긴 저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그 입자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그대는 열린 귀와, 근심으로부터 벗어난 <민활한 정신을> 참된 설명으로 돌리라.
그대가, 신실한 열정으로 그대에게 주어진 나의 선물을,
그것이 이해되기도 전에 무시하고 떠나지 않도록.
왜냐하면 나는 그대를 위해 하늘과 신들과 최고의 이치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할 것이며, 사물들의 기원을 펼쳐 밝힐 것이니까.
한데 자연은 거기로부터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사물들을 자라게 하고 키우며,
또한 같은 것들을 사멸하도록 다시 거기로 헤쳐 보내도다.
이것들은, 우리가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재료라고, 사물이 될 생산적인 몸이라고 부르고,
사물의 씨앗이라고 지칭해 버릇하던 것이며, 같은 이것들을 첫 번째 알갱이라 칭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것인 이것들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알갱이가 바로 원자를 뜻한다.
기원전 1세기에 이미 원자의 존재를 말했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어떤 여인이 준 사랑의 미약을 먹고는 정신 이상이 되어, 제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기록한 것이 현재 전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주장이 있으나, 믿기 어렵다.'(아카넷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저자 설명)고 기술되어 있다.
단 한 권 전해지는 루크레티우스의 이 저작물은 양자컴퓨터로 계산할 때의 기본 단위인 *큐비트(qubit)
(*기존의 컴퓨터는 정보를 0과 1의 비트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하는 반면, 양자 컴퓨터는 정보를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 큐비트 단위로 처리하고 저장한다. 즉 기존의 컴퓨터는 0과 1이 아닌 중첩 상태의 비트를 없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양자 컴퓨터에서는 그것의 존재를 있는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훨씬 다양한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를 공부하는 현재,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이야기를 도입으로 꿈에 대한 귀한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2세기의 작가, 꿈 해몽가, 아르테미도로스(Artemidoros)의 <꿈의 열쇠>다. 꿈에 관한 고대의 모든 지식이 압축된 필생의 역작이자 현재까지 그 원전이 전해지는 유일한 해몽서인 <꿈의 열쇠>는 수세기에 걸쳐 해몽의 필독서로 널리 읽혔고, 중세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아르테미도로스는 19세기 이후 프로이트, 푸코, 쇼펜하우어 등에 의해 재조명되면서 귀중한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에 유행했던 미신과 신비주의적 해몽법이 아닌, 철저하게 경험과 자료에 근거한 '합리적인 꿈 해석'의 입장을 취한 것으로 현대의 꿈 해석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의 종류를 ‘단순한 꿈’과 ‘예지몽’으로 나누고、해석의 대상이 될 꿈은 후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단순한 꿈’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 아무것도 예지 하지 않은 것, 수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 터무니없는 욕망, 과도한 두려움, 포만 혹은 영양실조에서 온다. ‘예지몽’은 수면 이후에도 유효한 것이고,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으로 귀착되는 것을 지칭한다.(291쪽)
이는 칼융이 분석심리학에서 무의식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나눈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칼 융의 이론에서 개인 무의식은 개인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면서 겪은 모든 정신적인 경험이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후천적인 무의식이다. 집단 무의식은 개인의 경험을 넘은 선천적 무의식으로 보편적 무의식이라고도 한다.
‘개인 무의식보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영역에, 개인을 넘은, 집단이나 민족, 인류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천적인 원형의 작용동력을 찾아냈다. 원형의 작용과 그 결과적으로 개인의 꿈이나 공상에 나타나는 어떤 종류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여러 가지 시대나 민족의 신화에도 공통되어 존재하는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 판단은, 자아와 외적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 정해져 오는 면이 있지만, 집단 무의식 중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제원형의 역동작용으로도 영향을 받는 면이 있다고 보았다.’(위키백과)
아르테미도로스 <꿈의 열쇠>, 이 책에서 흥미 있게 보았던 대목들을 요약해 본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에 대해 “사실에 입각”하여 “내 원칙의 증인이자 척도로서 늘 경험에 의지”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례를 수집하고, 기존의 문헌들을 검토하여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과 대조하였으며, 그 가운데 비교적 빈도가 높은 것들을 선별하여 일반화했다. 그는 여행과 다독、 특히 의학서를 많이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리스 사회에서 해몽은 “생활의 기술”이며、 그 기능 가운데 하나가 ‘치료’였다. 따라서 해몽가는 다름 아닌 사제와 의사였다. 고대인들에게 자신을 아는 행위는 치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이 기본적으로 미래와 관련이 있고 꿈을 해석하는 목적은 꿈꾼 자에게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아르테미도로스에 의하면 꿈은 낮의 활동의 연장이며 꿈꾸는 사람은 몸은 자고 있어도 영혼은 낮의 경험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꿈을 현실의 방향을 잡는 것으로 보았다.(10-18쪽)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은 현재를 의미하고, 예지몽은 미래를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의 감정 가운데 일부는 자연스럽게 영혼의 움직임을 따르며, 영혼에 자리를 잡아 꿈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꿈을 꾸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본다.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그 바탕에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예지몽은 ‘수면 중의 꿈’이면서 곧 발생할 것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할 뿐만 아니라 수면 이후에도 활동한다. 예지몽은 현실화될 계획을 이끌어 자연스럽게 영혼을 자극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31-32쪽)
캡처한 이미지는 곤 사토시 감독의 1분 3초 짜리 단편 영화 <오하이오>다. 한 여자가 침대에 앉아서 양치를 하고 있다.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또 한 명의 투명한 여자는 아직 자고 있다. 일부는 깨어났지만 일부는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이 장면은 몸과 영혼이 따로 또 같이 작용하는데 대한 상상과 이해를 돕는, 놀랍고 귀한 시각 자료라고 생각된다.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간을 네 가지 구성체. 즉 물질몸. 에테르체(기), 아스트랄체(감정),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잠을 잘 때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곤 사토시가 보여준 장면처럼 물질몸과 에테르체는 침대 위에 있고, 아스트랄체와 자아가 분리되어 달에 가는데, 거기에서 형상을 새겨 넣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의 천사가 그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까지 확대된다.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슈타이너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그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언젠가 시간의 심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일까?” 확실한 것은 이것이 다른 우주 발생설에 나오는 조물주나 뱀, 황소보다도 더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 258쪽)라는 말로 루돌프 슈타이너의 초월적인 세계관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다.
2세기 작가 아르테미도로스는 단 한 권의 필생의 역작 <꿈의 열쇠>를 통해 꿈의 세계, 무의식의 영역, 개척되지 않는 가능성의 땅은 바로 신의 선물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