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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아웃>으로 보는 감정과 기억

by 오렌


기쁨이, 슬픔이,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 무형의 감정을 캐릭터화하고, 인간의 뇌 속을 하나의 세계로 시각화한 픽사의 놀라운 상상력 <인사이드아웃>으로 감정과 기억을 만들고 통제하는 꿈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주인공 소녀 라일리는 평화로운 시골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감정에 문제가 생긴다. 더 이상 기쁘지만은 않은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된 것이다. 모든 감정들은 라일리가 원래의 행복한 모습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 분투한다.


잘못된 일만 신경 쓰지 마. 늘 되돌릴 방법은 있으니까!

늘 활기차고 밝은 기쁨이는 주인공 라일라의 핵심 감정으로 라일라가 조금이라도 슬퍼지는 것을 경계하며 항상 긍정적일 것을 강요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의 세포들이 하나의 수정 구슬처럼 표현되는데, 감정들이 기억의 구슬을 만지면 구슬은 그 감정으로 변한다. 기쁨이가 구슬을 만지면 기쁜 기억으로, 슬픔이가 구슬을 만지면 슬픔으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일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기쁨이는 모든 기억을 자신이 조절하기를 바라고 슬픔이는 기억을 만지지 못하도록 통제한다.


울음은 일생의 문제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진정하도록 도와줘.

감정의 쓰레기장에 떨어진 기쁨이는 라일리의 버려진 기억들을 되돌아보다가 기쁨 이면에 존재하는 슬픔의 역할을 알게 된다. 슬픔이 있었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오고 이해와 위로를 받았고 그로 인해 기뻤던 장면들을 보게 된다. 기쁨이는 자신이 좋은 것만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라일리의 마음의 일부인 슬픔이를 외면하고 무시했던 것을 뉘우치며 슬퍼한다. 기쁨이는 슬픔이가 있었기 때문에 라일리가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핵심 기억을 슬픔이에게 준다. 슬픔이는 기쁨이었던 핵심 기억을 받아 들고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돌아보며 라일리에게 기뻤던 기억밖에 없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쁨이는 무조건적인 기쁨이 라일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슬프고, 소심하고, 까칠하고, 화를 내는 모든 감정들을 겪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더욱 단단하게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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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해. 그 불행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생각해."

"너는 우리의 일을 그렇게 기억하니? 실망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어. 긍정적으로 생각해!"

같은 경험을 공유한 두 사람 사이에서 할 수 있는 대화이다. 감정은 누군가에 의해 설득되거나 포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두 사람이 각각 그 경험을 다르게 기억할 수 있다. 사실적 기억은 같을 수 있지만 감정적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억에는 감정이 담긴다.

'4세기말의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기억은 경험과는 다르다. 경험은 그곳에 있지만 경험을 기억하는 감정이 달라짐에 따라 경험할 당시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영원한 현재다.

현재의 상태가 여유롭고 행복하지만 과거의 슬픔을 기억하고 불행해질 수 있다.

현재의 상태가 궁핍하지만 과거의 즐거웠던 감정을 기억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과거에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지금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과거에 싫어했던 것이 좋아질 수도 있다.

과거의 두려움을 기억하면서도 지금은 두렵지 않을 수 있다.

끝나버린 슬픔을 기억하면서 기뻐질 수도 있고,

끝나버린 행복을 기억하면서 안타까워질 수도 있다.'

(인류의 새로운 시작, MARS #5. 어둠의 시간)


감정이 담긴 기억이 다음 기억에 그 감정을 데리고 온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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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특정 기억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만드는 '뇌 속의 물질'을 과학자들이 찾아냈다. 실험 쥐에게 특정 소리를 들려줄 때 달콤한 음식을 주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같은 소리를 들려주면서 쓴 음식을 주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고, 뇌 편도체에서 분비되는 뉴로텐신이라는 단백질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뉴로텐신이 분비되기 전에는 부정적인 기억만 형성이 되고, 뉴로텐신이 분비되고 나서는 긍정적인 기억이 만들어졌다. 뉴로텐 신을 못 만들면 긍정적인 기억을 만들지 못하고, 뉴로텐신을 잘 만들면 긍정적인 기억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결론으로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등 감정에 얽힘 기억을 조절하는데 기여를 하게 된 연구라고 한다.


생리학적으로 현실에서, 일상생활에서, 오늘, 지금 이 순간, 기억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더 나은 기분과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뇌를 갖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음식, 잠, 운동이다.

목표를 잃고, 무기력해지고, 할 일을 미루고, 과소비를 하고, 초콜릿이나 탄수화물만 생각나고,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른다면, 생리적인 균형이 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잠을 충분히 잤는지, 건강한 음식을 먹었는지, 운동은 하고 있는지...... 체크해 볼 일이다.

활력적인 삶의 태도와 맑은 정신을 유지해서 인생의 목표를 이끌어가는 것은 전두엽의 역할인데, 충분하고 질 높은 잠과 건강한 음식, 꾸준한 운동은 전두엽의 크기를 키우고, 연결을 활성화시켜 의지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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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라일리가 잠이 들면 '생각 기차'는 운행을 멈추고 '꿈 제작소'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꿈 제작소에서는 라일리가 그날 겪었던 일을 소재로 과거의 기억과 연결해서 꿈을 만들어 본부로 전송하고 본부에서는 감정캐릭터들이 꿈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면서 라일리의 성장과 행복을 도모한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감정들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면의 감정들을 잘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덧붙여 '꿈 제작소'는 하루종일 바쁘게 운행한 '생각 기차'를 멈출 때 비로소 작동한다는 원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의식적인 생각을 멈추고 잠을 잘 때 무의식의 영역에서 그 생각을 받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꿈 제작소에서 감정과 기억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으로 건강한 음식, 충분한 잠, 꾸준한 운동을 한번 더 기억하고 의식적으로 실천한다면 꿈 제작소가 더 튼튼하게 재건되고 활발발하게 작동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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