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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으로 생각해 보는 생각의 힘

-생각을 훔치고 심는 전쟁

by 오렌


한 카페에 두 남녀가 있다. 남자가 말한다.

꿈속에선 뭐든지 가능해. 우리 무의식은 꿈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인지하는데 우린 인식조차 못해.

우리가 기억하는 건 꿈의 시작이 아니라 항상 꿈의 중간부터잖아?"

남자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진 여자는 지금 여기가 꿈속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건축물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만들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간다.

꿈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하고 환상적으로 그려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인셉션>(2010)으로 꿈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고도로 발달한 세계, 인간들은 미개척의 영역인 잠과 꿈을 조작해서 타인의 생각을 훔치고 심는 특별한 기술을 갖게 된다. 강력한 수면제와 안정제를 투약해서 잠에 든 후,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대로 꿈을 꾸고 꿈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꿈 기술의 발달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게 되기에 이르고, 깨어나지 않고 꿈속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꿈이 현실이 된 사람들은 이 기술을 악용해서 타인의 꿈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훔치게 된다. 이름하여 '익스트렉션, 추출'이라고 부른다.


주인공 코브는 꿈을 이용한 추출에서 최고의 기술자다. 코브는 점점 더 깊은 꿈의 세계에 심취해 들어간다. 꿈속에서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더 깊은 꿈을 꾸는, 이른바 '꿈의 다중 단계'에 도달하기에 이른다. 꿈의 가장 깊은 세계를 '림보'라고 한다. 코브는 실험 대상으로 삼았던 그의 아내 멜과 함께 무의식의 밑바닥인 림보에 빠지게 되고, 수십 년의 세월을 림보에서 보내게 된다. 코브는 멜의 무의식에 한 가지 인셉션(생각)을 심어놓는데, 바로 지금 있는 곳은 현실이 아니고, 죽음으로써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생각 덕분에 꿈에서 죽음으로써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데, 멜은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는 인셉션 때문에 자신이 있는 곳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타인의 생각을 훔치는 것을 익스트렉션, 추출이라고 했듯이, 타인에게 생각을 심는 것을 인셉션이라고 한다. 정신적인 취약함을 이용해서 타인을 설득하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스라이팅과 유사한 듯하다.


멜이 죽기 전에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편지를 남기면서 남편인 코브가 유력한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고, 코브는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피해 미국을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된다. 코브는 세상을 떠돌며 자신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데...... 코볼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에서 경쟁사 대표인 사이토의 생각을 추출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코브는 꿈의 다중 단계 기술을 이용해서 고난도의 작전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꿈에서 깨어난 사이토는 코브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추출이 아닌, 다른 사람의 무의식에 생각을 심는 일, 바로 인셉션이다.


경쟁사의 회장이 건강악화로 아들인 로버트 피셔가 회사를 물려받게 되었는데, 피셔의 무의식에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지 않겠다는 생각을 심어 달라는 것이 의뢰의 내용이다. 조건은, 성공하게 되면 코브의 살인혐의를 풀어주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인셉션을 함께 할 팀을 꾸린다. 작전의 총괄제작 담당 아서, 꿈의 설계 담당 아리아드네, 꿈속에서의 연기 담당 임스, 꿈을 꾸게 하는 약품과 기계 담당 요셉, 그리고 이 모든 비용 담당으로 의뢰자 사이토로 구성한다.


사이토는 로버트 피셔가 LA로 가는 일정을 알아내고는 항공사 전체를 사버린다. 10시간 동안 꿈꿀 시간을 확보하고 비행기 1등석에서 팀원들 모두는 피셔와 같은 꿈을 공유하게 된다. 피셔에게 생각을 심기 위해 다중 단계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이 피셔에게 심으려는 생각, 즉 인셉션은 이렇다.

평생 동안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피셔에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을 무척 사랑했으며, 아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하지 않기를,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를 바란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심으려는 것이다.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 림보에 이르려면 다중 단계의 꿈의 세계를 통과해야 한다.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의 1등석의 현실에서 들어간 1단계는 비 오는 도시의 차 안에서 잠이 드는 꿈이다. 여기서 잠이 들어서 들어간 2단계는 호텔이다. 호텔에서 잠이 들어서 들어간 3단계 꿈은 눈 덮인 산속의 요새다. 이곳에서 피셔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작전대로 피셔의 머릿속에 강력한 인셉션이 침투하게 된다.


애초의 인셉션 작전은 3단계 까지였지만 코브의 무의식에 있던 멜의 등장으로 코브의 무의식 가장 밑바닥인 림보에 까지 들어가게 된다. 사이토가 1단계 꿈에서 총에 맞게 되는데 깨어나지 못하도록 강력한 안정제를 투약했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고 림보에 빠지게 된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이 영화에서 설정한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꿈에서 죽는 것과 또 하나는 꿈속 현실에서 떨어지는 것, 이른바 '킥'을 하면 된다.


인셉션을 완료한 팀원들은 꿈의 각 단계에서 순차적으로 킥을 실행한다. 현실 세계에서 킥을 알리는 음악을 사인하면 3단계 설원에서 떨어지는 킥으로 호텔로 돌아오고, 2단계 호텔 엘리베이터가 폭발하면서 1단계 차 안으로 돌아오고, 1단계 차 속에서 물속으로 떨어지는 킥으로 현실로 깨어난다.

약속대로 코브는 살인혐의가 없어지고 무사히 입국장을 통과해서 그리운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들을 품에 안은 현실이 과연 현실인지 찜찜한 여운을 남긴 채......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생명력이 강해. 전염성이 강하고 원대한 계획의 씨가 되기도 하지.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파괴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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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유명해진 소품으로 팽이가 있다. 팽이의 역할은 꿈과 현실, 꿈의 다중 세계를 무수히 오가는 데 있어서 나중에는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는 물건이다. 이 영화에서는 '토템'이라고 부른다. 팽이의 무게감이나 중심은 자신만이 알기 때문에 그것으로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타인의 꿈속의 토템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꿈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스토리와 구조, 세계관이 다층적이고 복잡한 이 영화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지만 이 토템의 존재는 특별히 모든 것이 똑같아질 때 구별할 수 있는 '나만의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나만의 고유성, 개성, 본성, 천성, 쪼개어도 쪼개지지 않는 최소한의 무엇.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오랜 시간 동안 꿈의 도둑에 대한 소재로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와 기괴한 상상력과 가상현실을 구현한 M.C. 에셔의 그림에서 비주얼적인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끝없이 연결되고, 하늘과 땅이 뒤집지고, 벽으로 걸어 다니는 초현실적인 세계의 이미지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꿈의 세계, 미로의 형식과 구조와 개념을 시각화하는데 멋지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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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것을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생각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서 심어진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창의적인 의심과 질문으로부터 주체적이고 진실한 내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에 대한 심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일이다. 생각이나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은 얼핏 보면 작은 일 같지만 그로 인한 연쇄적인 선순환으로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운명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생각이야말로 거대한 사건인 것이다.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일, 과학의 심도깊은 발달로도 남아있는 미개척의 영역이기에 무의식에 깊이 들어가서 생각을 바꾼다는 소재는 여전히 흥미로운 상상력과 가능성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감정도 바꿀 수 있다.
감정이 바뀌면 행동도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을 바꾸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

-John C. Max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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