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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Feb 05. 2016

글쓰기 워밍업

어젯밤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얇은 패딩을 두개나 입었는데도 어찌나 바람이 찬지 10월 중순밖에 안되었는데 11월 말 정도의 날씨로 느껴졌다.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틀고 일을하다가 곧바로 귀를 덮는 헬맷으로 바꿔야할 판이다.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에 아침의 몸이 맥을 못추고 흐느적거리다가 어제 오후 늦게 배달된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면서 감각이 조금씩 살아났다.
짧은 이력, 밥, 돈, 몸, 길, 글.. 1음절의 제목들, 음식을 묘사한 선명하고도 활력적인 표현과 문체들에 갑작스런 기온 변화로 무기력해진 세포들이 슬슬 깨어난다.
김훈 작가는 문학이 영혼을 살리고 어쩌고 하는 개소리하는 놈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지만 나는 영혼이란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만 단어 하나에, 문장 한줄에, 음식에 대한 맛깔스런 표현 한문장에 금방 회복이 되고 힘을 얻는 조증 환자이다.

한 대목을 옮겨적어본다.
 '무더운 여름날, 몸과 마음이 지쳐서 흐느적거릴 때, 밥을 물에 말고 밥숟가락 위에 통통한 새우젓을 한 마리씩 엊어서 점심을 먹으면 뱃속이 편안해지고 질퍽거리던 마음이 보송보송해진다. 잘 익어서 사각거리는 오이지를 고추장에 찍어서 물에 만 밥을 먹거나, 소금물에 담근 짠지를 가늘게 썰어서 찬물에 띄우고 거기에 식초와 고춧가루를 쳐서 먹으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마음이 개운해진다는 것은 느끼하고 비리고 들척지근한 것들을 생리적으로 내친다는 뜻이다. 나는 무짠지가 우러난 국물에 찬밥을 말아먹는다. 그맛은 단순하고 선명해서 음식의 맛이라기보다는 모든 맛이 발생하기 이전의 새벽의 맛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시원적인 맛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 입속과 뱃속과 손끝에 세포가 살아난다.
눈이 즐겁고 입가에 미소가 돌고 마음에 기쁨이 차오른다.
따끈한 차를 한 잔 준비해서 더 행복한 상태로 마저 읽으려고 주방으로 총총히 바쁘게 걷게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지고, 장을 보고 싶어지고, 요리를 하고 싶어지고, 글을 잘 쓰고 싶어지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안그래도 '깨어있는 마음으로 식사하기'의 행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한끼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에 좀 더 마음을 실어보고자 하고 있는 참에 김훈의 글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저녁엔 장을 봐서 밥을 해먹고 글을 쓰고 싶다는 계획이 생긴다. 
읽는 이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구체적인 생동감을 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읽는 사람이 책을 덮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어요. 온천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열이 났을 때 약을 먹어서 열이 내리는 것 같은, 그런 치유의 과정을 언어로 쓰기로 한 거죠. 그런 작품을 읽은 사람은 잠시 동안 다른 세상에 들어가 무섭고 기분 나쁜 체험을 하더라도 반드시 출구를 찾게 돼요. 마치 유령의 집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요시모토 바나나의 말이다.

슈타이너의 말에 의하면 의지의 속박에서 풀려나면 춤이되고, 감정이 살아나면 노래가 되고, 생각이 명료해지면 언어가 된다고 했다.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명료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도 슬슬 움직여보자.
자신의 결함과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자기치유와 자기정의의 춤과 노래와 글과 말이 세상에 빛이 되어 차고 넘칠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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