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화실에는 재미있는 삼수생 오빠가 둘 있었다. 사실은 사수생이라는 말도 있었고, 오수생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당사자인 메뚜기 오빠와 사마귀 오빠는 하늘이 두쪽나도 자신들은 삼수생이라고 우겼다. 이 곤충 오빠들은 둘이 늘 붙어다녔는데,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에 한 일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았고, 오빠들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삼수생 언니들은 이 둘이 나타나기만 하면 수근대면서 개무시를 했다. 반면에 나를 포함해서 오빠들의 과거 행적을 모르는 여자 후배들은 오빠들이 조금만 웃겨도 배를 잡고 뒤집어졌다. 포스 작렬한 삼수생 언니들은 우리한데 저것들(?)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고, 오빠들 한테는 애들(?) 건드리면 죽여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실기 모의 고사를 친다든가 화실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곤충 오빠들은 선생님들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우리가 열심히 안 하거나 잘 못했을 때 화실 대표로 업드려 뻗쳐서 주임 선생님한테 빳다로 맞기도 했다. 이해하기 힘든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당시의 화실 문화 속에서 두 곤충 오빠들은 선생님과 학생 사이 그 어디맨가에 위치하며 전체를 조율했는데, 애매한 그 입지는 좋게 말하면 메신저, 나쁘게 말하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같았다. 그런 오빠들은 집안의 큰 오빠같이 친근하면서도 든든했다.
메뚜기 오빠는 키가 180이 훨씬 넘었고, 얼굴도 잘 생겨서 특히 인기가 있었고, 사마귀 오빠는 여자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키가 작고 왜소해서 살짝만 밀쳐도 나자빠지는 몸 개그를 시전했다. 그 둘은 콤비로 썩 잘 어울렸다. 실제로 선생님이 둘이 개그 오디션에 나가보라고 진지하게 조언하기도 했었다. 이름이 메뚜기와 사마귀일리는 없고, 그렇다면 별명이 왜 메뚜기와 사마귀냐 하면 말이다. 나이트에 가면 메뚜기와 사마귀처럼 팔딱 팔딱 춤을 잘 춰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했다. 삼수생 오빠들은 이미 법적으로 성인이어서 가끔씩 나이트에 가는 것 같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서 늘 선생님들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그게 들킨 날은 또 복도에 불려나가서 빳다 방맹이로 맞곤했다. 오빠들이 얻어맞는 날은 우리는 조용히 그림에 집중했다.
나는 사마귀 오빠보다 메뚜기 오빠가 좋았다.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춤을 잘 춰서가 아니었다. 사마귀 오빠는 "넌 다 좋은데 이거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을 했고, 메뚜기 오빠는 "넌 다 안 좋은데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 두 문장은 얼핏 들으면 비슷하지만 상당히 큰 감정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메뚜기 오빠는 어딘가 불건전하고 삐딱하고 불량해 보였지만 어떤 말을 해도 밉지가 않았다. 당연했다. 사마귀 오빠는 나의 많은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하나를 말했고, 메뚜기 오빠는 나의 많은 안 좋은 점 가운데서도 좋은 것을 말했으니까.
밥 먹으러 간다고 나가다가 화실 복도에서 스쳐지나더라도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밥 많이 먹어라. 오빠는 선생님한테 잡혀서 오늘 밥 못 먹으니까 오빠 것 까지 많이 묵고 온나."라고 말했고, 어떤 날은 막대 사탕을 내밀면서 "자. 니도 알잖아. 오빠 인기 많은거. 여자 애들이 하도 줘서 오빠 방에 꽉찼다."하면서 사탕이나 초콜릿도 많이 줬다. 당시에 살이 찌는데 메뚜기 오빠가 준 간식들이 한 몫을 했던 것도 같다. 살 쪄서 안 먹는다고 이제 주지 말라고 하면 "살 찌면 귀여워서 좋고 살 빠지면 섹시해서 좋다" 는 미묘한 라임을 만들어 내며 고수의 향기를 풍기곤 했다.
그림이 안 늘어서 우울해하고 있으면 이젤 뒤에서 폴짝! 나타나서는 "임마! 또 똥폼 잡고 있제. 아까 오빠 얻어터지는 게 봤제? 니는 진짜 잘 그리는거다. 나는 니 만할 때 존나 선 긋기 하고 있었다.”하면서 웃게 했다. 웃어주면 기분이 좋아져서는 필살기인 메뚜기 댄스를 파닥 파닥! 선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포복절도하다가 정신이 혼미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메뚜기 오빠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조용히 이젤 앞에 앉아서 4B연필을 쥐어들고는 지긋이 눈을 감고 마치 그림이 된 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 대학가면 살 빼서 오빠한테 프로포즈 해라. 오빠가 기다릴게." 갑자기 살이 많이 쪄서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나에게 메뚜기 오빠는 진지한 듯, 장난인 듯 말했다. 오빠를 위해서 살을 뺄 생각도 없었고, 프로포즈 할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었지만, 늘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이 불편하고, 나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진 것 같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던 프리다 칼로 화실에서 지내는 동안 메뚜기 오빠가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
어쩌다가 그 불량한 메뚜기 오빠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합격을 했고, 어느 순간 부터 둘이 부쩍 같이 다니는 날이 많아졌다. 한날은 예비 모임이었는지 학교에 갔다가 둘이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오빠가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골목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등 뒤에 뭔가를 숨긴채 팔딱 팔딱 뛰어와서는 사람들도 많은 길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노란 장미 한 송이를 주는 것이 아닌가! 쪽팔리게 왜 이러냐고 화들짝 놀라서 장미를 받는둥 마는둥하고는 늘 그랬듯이 또 쓰잘떼기 없는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길을 걸었다.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할 때면 오빠가 진짜 나를 좋아하는 건가 헷갈리기도 했지만, 언니들한테 들은 나쁜 소문도 걸렸고, 자기는 늘 여자들이 많다는 자랑을 떠벌렸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결론내렸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메뚜기 오빠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영과 헬스 두 가지나 하면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맹렬한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어느 정도 봄 원피스가 어울리는 핏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겨울 어느 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메뚜기 오빠가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메뚜기 오빠가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빠가 없는 학교에 다니는 것은 한동안 무척 힘들었다.
지금, 그 시절의 메뚜기 오빠 보다 더 나이를 먹은 딸의 추천으로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를 보다가 30년 전의 메뚜기 오빠가 생각났다. "나는 다 괜찮은데 이거 하나가 부족해."보다 "나는 다 별로지만 이거 하나는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로 우리의 키는 자란다. 행복 속의 불행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불행 중의 다행은 모든 것을 이끌어간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를 진짜로 좋아한 건지, 아니었는지 헷갈리게 했던 메뚜기 오빠, 그 헷갈림 조차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준 메뚜기 오빠가 푸르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