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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Apr 23. 2024

물이나 한 잔

-용서에 대하여


브런치 마을의 이웃,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글, <용서할 있는 마음을 허락하소서 -용서를 위한 기도>와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면서 용서에 대한 내 인생의 강렬한 체험이 되살아났다.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이 붙든 용서에 대한 기도에 내가 지금껏 보아온 브런치 댓글 중 가장 장문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댓글 창에는 지나칠 수 없었던 수많은 브런치 이웃들의 말들이 적혀 있었고,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고해의 바다 한가운데서 같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기분이 들었다. 용서는 용기를 수반한 행동이다. 실은 제가 용서받을 일이 더 많은 듯하여 마음이 켕긴다. 전 저를 용서하고 싶어요. 너무 애쓰지 마세요. 용서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면서, 어떤 이는 자신이 읽은 책 이야기로, 어떤 이는 영화 이야기를 꺼내며, 모두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었고, 그 자체가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이 붙잡은 용서의 기도의 열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대열의 끝에서 나의 이야기를 보탰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혹여 "나는 용서를 하니 홀가분해졌어요. 작가님도 어서 용서하세요!"라고 읽히지는 않을지 살짝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럴 수는 없다. 버지니아 울프도 말하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면, 대신 그것 자체에의 것만 생각하세요.

작가님의 너무 아픈 상처를 엿보면서 내 흉터를 보았던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그것 자체, 용서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페이지를 만들었다.




오래전, 나에게도 절대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 정체된 감정의 돌부리는 점점 커져서 바윗 덩어리가 되어 내 삶을 무겁게 짓눌렀고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으로부터 그 사람의 이름을 넣은 'ooo를 용서한다'라는 문장을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라는 권고를 받고 희귀한 현상을 경험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목구멍에 종잇장 같은 것이 가로막혀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지지를 받으면서 마치 산고를 치르듯이 진땀을 흘리고 혼 힘을 모아서 '나는 ooo를 용서한다'를 말했다. 말의 용서가 끝나자 선생님은 마치 어린아이를 칭찬하듯이 잘했다고 해주셨고, 그 칭찬을 받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통곡에 가까운 폭포수 같은 눈물을 한참 동안 쏟아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주셨던, 신부님이셨던 상담 선생님은 멋진 클로징 멘트를 치셨다. 


용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감정이 아니라,
내 어깨 위에서 무거운 짐을 스스로 내려놓는 거야.

그날, 돌아오는 길에 희귀한 현상이 지속되었다. 긴장하고 움츠려서 늘 아팠던 어깨가 시원해지고 코끼리 같이 무겁던 다리도 가벼워지고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별들이 나에게 기립박수를 쳐주는 것 같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수옥 <대화>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의 글에 쓴 나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글에서의 나는 이미 용서를 한 성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감정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유령과도 같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한 올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삭발을 했지만 이내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맑았다가 금방 먹구름이 끼고 폭풍우가 치는 하늘처럼. 감정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인간의 불행이고 또한 엄청난 다행이다. 내 마음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딸그림아빠글 작가님이 쓰신 아픈 용서의 글에 머물지도 않았을 것이다. 작가님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불편할 수도 있는 많은 댓글들 앞에 마음을 열고 읽겠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마음에서 아직이 아니라 이미 용서하신, 충분히 넉넉한 힘이 느껴졌다.



달라이 라마는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며,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용서하라고 말한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를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리를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내면의 힘을 시험한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분노와 미움을 가지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삶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모두 일시적이며, 결국 죽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결국 사라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건너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의 육체 안에 있는 연약한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하게 하라

너의 절망에 대해 말하라

그럼 내 절망에 대해 말할 테니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빗방울들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메리 올리버, 기러기




나에게 두 가지 상자가 있다. 하나는 누군가가 준 쓰레기가 가득 든 상자이고, 하나는 유년기의 황금이 가득 든 보물상자다. 쓰레기 상자를 열어보고 분노할 때마다 황금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쓰레기 상자에 고개를 처박고 오랜 시간 분노하다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변에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있었고, 나에게 보물 상자가 있었는지 조차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나는 비로소 쓰레기가 든 상자를 버렸다. 나의 황금이 든 상자는 열어서 들여다 보면 볼수록 더 커지고 더 빛나며 기쁨을 준다. 주변까지도 환해진다. 쓰레기를 준 사람이 왜 하필 나에게 이걸 줬는지, 그 사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잃어버린 황금 상자를 되찾는 것, 그것을 갈고닦아 눈부시게 만드는 것이다. 용서는 한 번뿐인 내 인생을 구하고 당당할 수 있는 마음이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이다. 지금 이 순간, 소중한 나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시원한 물이나 한잔 마시자. 쪼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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