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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Oct 01. 2016

턴다운 첫 날

-삶을 긍정하는 글쓰기


 턴다운으로 전향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도 회사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뭐든 생각이 정해졌으면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해보는 나의 성향과 턴다운 메이드가 시급했던 회사 상황이 제대로 맞물린듯 했다.
 마음을 정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전 날은 온갖 악몽에 시달리고 한 순간은 대단히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내가 턴다운으로 간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락카나 복도에서 만나지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안부를 다.
 "잘 생각했다. 한번 해봐라. 괜찮을거다."

 와 같은 긍정적인 격려도 있고,

 "힘들면 다시 돌아오라."든가,

 "너랑 밥 한번 먹고싶었는데 이제 잘 못보겠다."

 "턴다운 엄청 힘든데 왜 갔느냐."

 "밤에 혼자 무서울텐데. 알고 가느냐."

 "전에 턴다운 하던 사람은 스트레스 받아서 살이 찌고 밤에 잠도 잘 못잤다더라..."

 기타 등등 부정적인 반응들이 더 많았다.
 의식적으로는 단단히 마음 잡고 다른 사람 말에 개의치 말자고 하면서도 그런 걱정 섞인 소리를 들은 것들이 무의식의 불안을 휘저어 놓았다.

 한 순간은 '내가 일 잘하고 있다가 갑자기 왜 그런 선택을 한거지!' 하는 난데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 순간은 '혹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경쟁적으로 일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 내가 지켜야 할 내 자리를 회피한게 아닐까'. '곧 안정적이어질건데 지금껏 고생하고 이제 A가 되어 한층을 담당하면 훨씬 여유로와질텐데 왜 굳이 잡체인지 까지 하고 난리법석을 쳤을까.' 이런 의심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시커먼 먹구름 처럼 몰려왔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정해졌는데 이제와서 다시 돌아간다면 변덕쟁이에다가 뭘 잘 모르는 신입이 혼자 튀고 까불더니 왔다갔다 한다고 더 무시당하겠지.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턴다운에 말뚝을 박아야하겠지.'
 아직 시작도 안해보고 온갖 흑탕물 같은 망상들이 휘몰아쳤다.

 그러다 다시 균형을 잡았다.
 '나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내 걱정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중 누구도 턴다운을 해본적이 없지 않은가. 다 그만둔 사람들이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생긴 자기 이미지를 나에게 투사하는 것 뿐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허깨비같은 소리일 뿐이다. 그렇게 실체도 없는 소문에 두려워하니까 그 일을 안하는 것이고 나는 오직 내 감각만을 믿을 것이니 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직면하고 싸우고 하루하루 견디면서 만들어온 귀한 나의 정신이 그깟 허깨비들에 또 한번 휘청거렸다니... 짧은 순간이지만 나약해진 모습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다시 좋은 점들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몸이 피곤한건 리듬이 바뀌고 있으니 당연한거야. 게다가 이제 겨우 첫날, 시작도 하지 않았잖아. 실제로 해보면 분명히 다를거야. 하루, 이틀, 사흘 후면 생각보다 괜찮아질거고, 3주 후면 리듬이 안정을 찾아서 훨씬 좋아질거고, 석달 후면 턴다운 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감 있는 회사 생활을 하게 될거고, 1년 후면 꽃을 피우게 될거야.'

 룸정비를 마치고 하우스키핑 사무실로 내려가서 첫날 업무를 배웠다. 컴퓨터로 오늘 일할 리포트를 뽑고 고객 상황을 점검하고 기록하는 등의 사전 작업을 하고 저녁을 먹고 턴다운을 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서 그날 업무 내용을 정리하는 형식이었다.
 상상했던 일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힘든 장면들을 상상했지만 실제는 반은 정비고 반은 사무직에 가까운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메이드 잡에 비해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태도와 순발력, 판단력이 요구되는 일이라 200%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인듯 기쁨으로 차올랐다.
 외국인 손님 위주라 간단한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내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짧은 몇 문장의 한계를 넘어서서 좀 더 고급 표현으로 고객과 대화하고 싶다는 욕구도 분출되었다.
 호텔 전층을 뛰아다니면서 어느새 나는 즐기고 있었다.
 '그래, 즐겁지 않다면 뭣하러 일을 할 것인가. 돈도 벌고 운동도 되고 마치면 맛있는 것도 사먹을 수 있다. 비싼 돈과 시간 들여서 일부러 여행오는 해운대 밤바다를 원하는대로 거닐수도 있다. 얼마나 좋은가. 쓰레기통만 비울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걱정과 불안이나 싹싹 비우자. 그리고 즐기자. 살아있는 건강한 감각으로 턴다운 서비스를! 이 모든 실존을!'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비치된 스위트룸용 커피 머신으로 커피전문점에서 제공되는 퀼리티의 드립커피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한 락커에서 샤워를 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안마 의자에 누워서 안마까지 받았다.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은 직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덤이다.)
 회사를 나와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밤바다에 앉아서 실내악 연주를 들었다. 나의 잡체인지 성공적인 첫날을 축하하고자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모였다.(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시작일 뿐이다. 노동으로 잘 조각된 근사한 몸으로 아침 태양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푸른 바닷가를 달려갈 내일을 상상해. 선그라스를 끼고 해변 노천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을 날도 있다고. 그림도, 글도, 음악도, 춤도.. 니가 그렇게 원하던 모든 것들을 하면서 살아보자고. 한번뿐인 인생. 어쩔것이냐.'


-더 높이 솟은 태양 아래, 아침 글쓰기 19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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