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학교> 4화. 무지개 유치원 2
아침 열기
유치원에서의 하루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아침에 등원해서 하원할 때까지 활동을 하고, 놀고, 먹고, 지내는 모든 일이 잘 조직된 들숨과 날숨의 고른 호흡으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 일상의 호흡이 아이들의 건강한 신체와 맑고 투명한 경계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메인 교사는 그날의 활동이나 아이들의 상태, 아이들 서로간의 관계, 날씨 등 하루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있어야하고, 모든 것에 초집중해서 잠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았다. 수면 위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백조의, 수면 아래에서의 바지런한 발길질 처럼 미리 치밀하게 계산된 준비가 필요했다.
무지개 유치원은 4세부터 7세까지 혼합연령의 아이들, 그중에는 자폐, ADHD 등의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도 함께 지냈다. 전체 일과를 이끌어가는 메인 교사와 보조 교사, 그림자 교사, 주방 선생님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움직여야 전체의 기능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아이가 다친다거나 아픈 아이가 생긴다거나 싸움이 나는 등의 문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엄청난 경험의 축적과 순발력, 판단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거북알이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폭탄처럼 둥그런 모양의 쭈쭈바 같은 거북알의 비닐로 된 꼭지를 따는 순간, 내용물이 나오기 시작해 다 먹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특이한 역학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개봉과 동시에 잠깐 쉬고 싶어도 꼭지에서 입을 뗄 수 없이 계속 먹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아이스크림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만난 초기의 나의 상태는 첫 아이의 등원이 바로 거북알의 꼭지를 따는 순간이었다.
아직 손가락으로 발꿈치 쪽의 구겨진 부분을 펴서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는 어린아이들, 신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나오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어야 하는 고통, 수영을 하지 못하는 데 바다에 던져진 두려움과 비슷했다.
트레이닝을 받는 수년의 시간 동안, 모든 것으로의 초긴장 상태가 지속되었고, 누적된 긴장으로 진통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몰래 상습적으로 먹기도 했고, 힘들다는 넋두리를 들어야 하는 가족들은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라고 해서 주변에 말도 못 할 상황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이 몹시 힘들어했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속속들이 나왔다.
'천상의 퀄리티'라며 감탄하고 들어온 무지개 유치원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까지 해야되나?' 불만과 의문으로 가득찰 만큼 고된 노동과 인내를 요구했다. 우리 모두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리듬이 깨져있는 상태에서 건강한 리듬 안으로 들어오려 했기 때문에 직면한 저항이었다는 걸 나는 몸이 바로 서고 리듬이 자연에 순응하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죽을 듯이 힘들었던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일치했다. 발도르프 유아교육이 인간을 바라보는 깊고 넓은 시각 때문이었고, 이 글을 그토록 쓰고 싶었던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곳에 닿아있다.
인간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 인지학 배경의 유아교육
어린아이라는 존재는 매우 소중하고 사랑스럽지만 막상 일상에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일인지 헷갈리게 되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 상태가 된다. 어린아이는 신체부터 정신, 영혼에 이르기까지 어른의 축소판인 작인 사람이 아닌, 그 자체로서 천사나 강아지처럼 완전히 다른 존재이므로 그 존재 상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루돌프 슈타이너가 창시한 인지학이라는 철학적 배경을 토대로 한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일과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래에 열거한 몇 가지 사항은 그 소제목 하나로도 매우 방대하고 심오한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핵심만 다루도록 하겠다.
의식과 무의식
인간의 의식에는 의식할 수 있는 상태와 의식할 수 없는 상태인 무의식이 있다. 보이지 않는 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예로든 빙산 그림으로 말하자면, 7세 이전의 유아의 의식 상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 거대하게 잠겨있는 빙산과도 같다.
무의식이 지배적인 어린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언어와는 다르다. 그들의 의식 상태는 달에 가까우며 달의 언어는 문자가 아니라 그림이고 노래다. 그러므로 언어적인 설명과 지시는 그들에게 무의미하다. 하루의 리듬을 조직할 때, 하나의 활동에서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때, 일과의 모든 순간은 그림과 노래와 춤으로, 이야기로, 아티스틱한 무대처럼, 축제처럼 연출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똘똘한 아이들을 awake child, 깨어있는 아이라고 불렀고, 의식적으로 깨어있지 않은 상태의 아이들을 dreamy child, 꿈결 같은 아이라고 불렀다.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깨어있는 상태가 좋은 것, 꿈결 같은 상태가 나쁜 것, 늦된 아이는 걱정해야하는 상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더 낫고 부족하고의 분류가 아닌 각각의 아이의 상태를 인식하고 도움을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너무 깨어있는 아이는 꿈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돕는 것이고, 꿈결 같은 아이는 깨워주는 것이 돕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너무 질문이 많거나 성에 일찍 눈을 뜨거나 하는 깨어있는 아이들에게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는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꿈결 같은 노래나 이야기를 들려준다든가, 꿈결 같은 아이는 신체 활동을 할 때 더 많이 참여시킨다든가, 말로 부르기보다 손이나 어깨 같은 몸을 터치하는 형태로 깨워준다.
꿈결같은 아이는 손을 잡을 때나 안아줄 때에도 깨어있는 아이보다 더 꼬-옥! 살 속 깊이 느껴지도록 잡아주고, 안아주었다. 피부가 여린 아이들과 접촉하는 교사는 화장을 하지않고 향수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건강한 형태의 터치를 통해 천상의 존재가 지상에 온전히 육화한다고 보았다.
3 fold human being 인간의 3 구성체
슈타이너는 인간에게 의지, 감정, 생각이 있다고 했고, 의지를 씨앗으로, 감정을 꽃으로, 생각을 열매로 보았다. 의지가 자라나서 감정이 꽃피고, 생각으로 열매 맺는 것이다. 유아교육은 철저히 의지의 교육에 해당한다. 씨앗이 잘 발아해야만 싱싱한 꽃으로 피어나고 약속된 튼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부모와 교사는 감정이 건강해야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환경은 자연이 있는 유치원이나 넓은 집, 형제나 친구, 유기농 음식이나 친환경 놀잇감이 아닌 어른들의 건강한 감정이다. 어른들의 감정 상태는 아이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가장 좋은 선물은 건강한 감정이다.
감정이 나빠지면 기운이 빠져서 몸이 안 좋아지고, 감정이 살아나면 기운이 북돋아져서 몸이 좋아진다. 감정이 안 좋은데 억압하면서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사랑을 나눈다든가 하는 감정의 거짓말이 쌓이면 몸이 안 좋아지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4 fold human being 인간의 4 구성체
슈타이너는 인간을 구성하는 몸을 4가지 요소로, 각각의 몸이 완성되는 시기를 7년 주기로 보았다. 그리고, 각 7년의 주기에 해당하는 행성의 특성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구성체는 7년 주기가 시작될 때 태어나지만, 완성되기까지 7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마치 로켓의 엔진이 1단, 2단, 3단 분리되어 마침내 궤도에 진입하듯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식으로 인간이 되어간다고 했다.
1. 물질몸 : 0세 - 7세
2. 에테릭체(기체) : 7세 - 14세
3. 아스트랄체(감정체, 별몸) : 14세 - 21세
4. 자아체(이고) : 21세 - 28세
아래에 링크한 영상은 곤 사토시 감독이 남긴 유일한 단편(1분) 애니메이션으로 슈타이너가 말한 인간의 4 구성체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Ohayo - Satoshi kon
4 기질론
슈타이너가 차용한 4 기질론은 히포크라테스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물, 불, 공기, 흙의 4요소로 보았고, 자연의 그 요소가 인간의 몸에서 점액, 담즙, 다혈, 우울로 작용해서 해당 체액이 더 지배적인가에 따라 각각 점액질, 담즙질, 다혈질, 우울질로 분류했다. 이 네 가지 기질은 각각 해당 내장 기관의 체액, 외형적인 특징, 계절 등 많은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기질의 성향이 혼재되어 있기도 하고, 자라면서 바뀌기도 하지만, 보다 우세한 기질이 있고, 교사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 관찰과 경험을 통해 기질을 파악하고 아이가 가진 기질을 참고해서 활동이나 모든 생활에 반영한다.
가령 자리 배치를 정할 때도 같은 기질의 아이들을 붙여서 앉힌다든가 하는 식인데, 기질론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늘 같이 붙어서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 그래서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하고 교사를 당혹스럽게 하는 아이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분리시켜 다른 기질의 아이들 옆에 앉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의 편의를 위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기질을 분석해서 배치하는 자리는 비슷한 기질의 아이들이 같이 앉게 해서 장난치도록 하는 식이었다. (오 마이 갓! 트레이닝을 받는 초기에는 이런 식의 허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점액질이나 우울질 아이들의 경우도 말수가 적거나 비교적 얌전한 이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활발한 아이들과 섞여서 앉히지 않고, 그 아이들끼리 앉혔다. 비교적 체구가 작은 그 아이들은 같이 앉아서 개미처럼 소곤거리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어도 어색해하지 않고 편안해 보였다. 처음에는 그런 자리 배치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대로 표현하자면, 맹수는 맹수들끼리, 토끼와 다람쥐는 그들끼리 있을 때 안정감이 있고 재미있는 법이었다.
섣부른 어른들의 걱정으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면서 활발한 아이와 친하게 만들려고 한다든가, 너무 활발하다는 이유로 정적인 아이 옆에 앉힌다든가 하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기질을 살리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기질을 참고해서 교육에 활용하는 의미는 각 기질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여 아이가 가진 본성을 해치지 않고 성장시킨다는데 있다.
7 year life cycle 7년의 생애 주기 돌아보기 : 교사의 자기 교육
이곳에서의 가장 힘들었던 지점과 가장 의미 있었던 지점은 결국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었다. 이 모든 것의 핵심에는 교사 자신의 엄격한 자기 교육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기질론을 아무리 공부하고, 아이들의 기질을 잘 아는 교사도 자신의 기질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유치원 근무를 하면서도 주말에 교사연수와 소그룹 공부모임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교사의 자기 교육을 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만나면서 쌓인 힘듦과 불만, 의문과 갈등을 초기화시킬 수 있었다. 그림이나 바느질, 뜨개질, 이야기, 노래, 손유희 같은 기능적인 것도 공부하고 배웠지만, 교사 교육의 핵심은 바이오그라피, 즉 생애 돌아보기였다.
나 자신의 인생을 7년 주기로 나누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작업은 이후에 정신 분석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한 나 알기의 핵심 텍스트였다. 이 작업은 방법을 배우거나 한 두 번 해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반복적으로 빌딩 업해나가야 할 자산인 것 같다.
0세 - 7세 : 달
7세 - 14세 : 수성
14세 - 21세 : 금성
21세 - 28세 : 태양
28세 - 35세 : 태양
35세 - 42세 : 태양
42세 - 49세 : 화성
49세 - 56세 : 목성
56세 - 63세 : 토성
슈타이너가 제안한 생애 돌아보기의 기본적인 방법은 위에 열거한 7년 주기에 따라 그때 일어난 인상적인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노트를 하나 정해서 주기별로 기억나는 일들을 메모한다. 일정한 주기를 정해서 다시 노트를 들여다보고 또 생각나는 것을 기록한다. 이런 방식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빌딩업해나가면 점차 기억이 풍성해지고 섬세해지게 된다. 과거를 아는 만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슈타이너는 바이오그라피를 63세 까지만 말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인데, 63세가 넘어가면 별의 힘에서 멀어진다고 보았다.
저녁 닫기
★
인지학적 배경을 꺼내는 데 있어 조심스러웠던 점은,
이러한 지식을 대할 때 현학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그동안 만난 선생님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배운 것을 아는체 떠벌린다든가, 자료수집에 열을 올린다든가......
엄정하게 주의를 주셨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도 그들을 흉내 내어 조심스럽게 전한다.
"이러한 지식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도움을 줄 때만이라고 한다."
★★
친구들, 재미있을 줄 알고 왔는데, 너무 어려워서 재미없었나요?
하지만 쪼끔 재미없어도 꼭 필요하고 유익한 공부도 있는 법이랍니다.
선생님은 @해조음 친구가 사랑의 학교가 너무 좋다고 친구들에게 같이 가지고 말한 사실과,
@이미경 친구가 발은 모으고 귀는 쫑긋! 수업들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던 말,
@매미 친구가 간식으로 그릭 요구르트를 먹고 싶다고 하고, 등원시간 잘 지켜서 힙하게 입고 오겠다고 말한 것,
@블리야 친구가 베이컨이 든 햄버거를 점심으로 먹고 싶다고 한 말,
@고운로 그 아이 친구가 수업을 듣기위해 번호표 뽑았다고 한 말,
@초코파이 친구가 무지개유치원을 응원한다고 한 말,
@라얀 친구가 수업을 잘 따라가 보겠다고 한 일,
모두 모두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답니다.
선생님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좀 지루했을지 모르겠네요.
집 가서 양치하고 손 깨끗이 씻고 재미있게 지내고,
호박 마차가 오면 얼른 타고 꿈나라에서 만나기로 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