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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n 18. 2024

내 안의 어린아이가 즐거워하는 글을 쓴다

-<원라이너> 7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나는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제 이름은 삐삐로타 델리카테샤 원도셰이크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이에요.


무슨 글이든 쓰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왜 글을 쓰는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가끔 돌아보며 생각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은 이것이다.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정신을 이어받아 '내 안의 어린아이가 즐거워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말괄량이 삐삐'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삐삐 롱스타킹'의 원작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10대 중반부터 남편 린드그렌을 만나기 전, 작가가 되기 전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그린 덴마크, 스웨덴 합작 전기 영화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소녀인 아스트리드는 1920년 스웨덴의 시골에서 집안일을 돕거나 동생들을 돌보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자란다. 기독교 집안의 엄격한 가풍으로 이성교제는 물론 머리모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글 쓰는 재능을 인정받아 지역 신문의 인턴으로 일하게 되는데......

악조건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개척해 가는 진취적인 여정이 담겨있다.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 사이사이에,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내온 편지의 나레이션이 감동을 더한다.



안녕하세요. 전 제니예요.
죽음 이야기를 많이 쓰셨죠.
책 속에 죽은 사람이 많아요.
삐삐 엄마도 그렇고
요나탄도 죽고
칼도 죽죠
미오 엄마도 죽었고요
그런데 책으로 보면
살고 싶어 져요
그냥 살고 싶어 져요.


책에 나오는 애들은 뭐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삐삐는 부모님 없이도 잘 지내죠.
에밀은 벌로 헛간에 갇혀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미오는 배가 고파서 죽을 거라도 생각했지만, 결국 악과 싸워 이겼고요.
저도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외롭고 배고파도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될래요.




엔딩곡, 아네 브룬(Ane Brun)의 Spinga


뛰어올라, 용감하게 뛰어올라

절망을 지나 삶으로

뛰어올라, 용감하게 뛰어올라

어둠을 지나 빛으로

너만의 인생을 살아, 즐기는 거야

너만을 위한 여름을 느껴봐

너만의 인생을 살아, 앞으로 나아

뒤로 가고 싶다면

뒤로 가도 돼

너만의 인생을 살아

그곳에 있어

폭풍 속에서

소리를 질러봐


좌절하지 마. 넌 울게 될 수 있어

미래가 널 용서할 수 있도록 정면으로 마주 봐

네가 가진 도화지에 전부 새까맣게만 그리지 마

다른 색이 끼어들 틈이 있게 적당히 허용해

후회만 하고 있지 마

넌 거기에서 배울 수 있어

그래야만 네가 미로를 외워서 걸을 수 있어




아멜리에



자기 자신이 없는 오늘은, 어제의 찌꺼기에 불과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프랑스 영화, 아밀리에(원작의 제목은 '아멜리 풀랭의 환상적 운명')의 주인공 아밀리에는 불행한 환경을 타고난 사람이다.


아멜리에(오드리 토투)는 몽마르트의 한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시골 처녀다. 어려서 의사인 아버지가 심장이 약하다고 오진하여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교사인 어머니에게 배웠기 때문에 친구가 없다. 곡식자루에 손 집어넣기, 파이의 딱딱한 표면을 숟가락으로 깨뜨리기, 생마르땡 운하에 돌멩이를 던져서 물수제비 뜨기가 그녀의 취미다.


어느 날, 영국 다이애너 비가 파리 지하차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이웃에게 좋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날 저녁, 우연찮게 벽에 뚫린 구멍에 숨겨둔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 그걸 숨겨둔 사람,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소년을 찾아 나선다. 수소문과 우여곡절 끝에 40년 전 보물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고 어른이 된 소년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아밀리에는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아밀리에는 타인의 기쁨을 찾아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친구가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서툴었던 아밀리에는 타인을 도와주면서 그녀가 도왔던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랑을 얻게 된다. 

불행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알려주는 로맨틱 코미디




오랜 오렌



big big paper
big big world


큰 큰 종이에
큰 큰 세상을 쓰고 그립니다
작고 작은 기쁨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반에서 유치원에 안 다닌 사람은 나와 어떤 친구 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유치원에 안 보낸 이유는 언니가 유치원에 갔다가 너무 많이 우는 바람에 원장 수녀님께서 이 애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데려가라고 했고, 그 이유로 나도 유치원에  안 다니게 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1학년 선생님으로 적합하지 않은 불친절한 담임 선생님을 만난 것은 진정 불행한 일이었다. 늘 회색 양복을 입고 2:8 가르마에 버번쩍 동백기름을 바른 할아버지 선생님은 유치원에 다니지 않아서 규칙을 모르는 우리 둘에 대한 의무를 망각하고 기본적인 생활 수칙을 알려주지 않았다.



1학년 첫날 비가 왔고, 학교 뒷담 아래에서 두꺼비가 나왔다. 첫 쉬는 시간,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우리 둘은 쉬는 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렸는지도 모르고 두꺼비를 구경하고 있었고, 곧 담임 선생님이 우리를 잡으러 나왔다. 선생님은 우리 둘을 교단 앞에 세웠다. 그리고는 교탁 위에 있던 커다란 초록색 출석부를 들어서 우리 머리통을 한 대씩 퉁퉁!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신성한 학교 생활이 시작되는 첫날, 나는 나를 맡아줄 담임 선생님을 미친 영감쟁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나는 웬일인지 집에 말하지 않았고, 잠깐 주눅 들어 있었지만, 곧 괜찮아졌다.

나는 비록 유치원에 안 다녔지만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동안 집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커다란 종이에 인형을 그리고, 가위로 오리고, 인형집을 만들었다. 오후에는 유치원 갔다가 돌아온 친구들과 놀았는데, 나는 뭐든지 잘해서 골목대장이었다. 계단에서 뛰어내리기도 내가 제일 잘했고, 달리기도 제일 빨랐고, 유리구슬도 제일 많이 모았다. 종이인형이 제일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유리구슬을 들여다보며 소원을 빌었다. 다시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행복한 일만 있게 해달라고.



유리구슬은 소원구슬은 아니었다. 불행의 그림자는 우리 집을 또 한 번 덮쳤다. 동생이 태권도 학원을 갔다 오던 길에 건널목을 건너다가 버스 뒤에서 튀어나오는 택시를 보지 못하고 그만 차에 치이고 말았다. 동생은 오른쪽 발목이 부러졌고, 수술을 받고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동생의 회복에 모든 신경을 쏟았고, 나와 언니는 커다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우리가 그리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놀았다.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안녕? 너는 누구니?"

"나는 수지라고 해. 너는 누구니?"

"나는 장미. 우리 뭐 하고 놀까?"

수지와 장미는 우리의 몸보다 몇 배나 큰 종이 위에서 동서남북으로 뱅뱅 돌면서 이야기를 그렸다. 한참을 그리고 이야기하다가 무슨 일인지 서로가 그린 그림에 황칠을 했다.

황칠을 하고 종이를 찢고 나아가서는 종이가 아니라 서로 두들겨 패면서 끝이 났다.



언니가 장기입원을 했을 때도, 동생이 장기입원을 했을 때도,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을 때도, 학교 첫날 선생님한테 머리를 맞았을 때도 나는 별로 불행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빅빅페이퍼가 있었으니까.

작고 작은 일들을 넘고 넘어서

크고 큰 세상을 살아나간다.

빅빅페이퍼를 가득 채운 튼튼한 두 팔로.









big big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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