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라이너> 6화.
보노보노 명대사
보노보노 : 내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가 '됐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아직 안 됐으면 '안 됐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럼 나도 좀 안심이 될 것 같다. 그럼 나도 좀 알 것 같다.
너부리 : 어른이 '놀고 있다'라고 말하면 멋지지 않잖아. 그래서 '취미'라고 말하는 것뿐이야.
너부리 : 문제는 말이야. 너가 진짜로 포로리를 좋아하느냐야.
보노보노 : 당연하지 않아? 이제 와서 무슨 말이야?
너부리 : 그럼 그 증거를 보여줘.
보노보노 : 너부리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두 사람만의 문제야. 반드시 누군가가 증명해야 되는 건 아니야.
도로리 : 보노보노, 내가 갑자기 우니까 곤란하지? 그럼 갑자기 울지 않고 나중에 우는 건 괜찮아? 내가 갑자기 잠들면 곤란하지? 그러니까 자기감정대로만 행동하면 상대방은 곤란해지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는 거야.
너부리 : 보노보노, 도대체 넌 아는 게 뭐가 있냐?
포로리 : 너부리야, 보노보노는 모르는 게 아냐. 알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거야!
포로리 : 다른 사람의 욕을 그대로 믿는 건 그 욕을 말한 사람만큼이나 나쁜 거야.
보노보노 : 우리가 진짜 친굴까? 함께 놀지도 않고, 맨날 옛날얘기만 하고. 이렇게 시선을 마주치면 옛날엔 금방 뭔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끄덕거리기만 하잖아.
포로리 : 하지만 그것도 재미있지 않니?
보노보노 : 엥? 끄덕거리기만 하는 게?
포로리 : 응. 친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거야.
보노보노 오프닝 | 지름길로 가고파
야옹이 형
책정리를 하다가 만화책 <보노보노>를 다시 보았다. 독특한 구성과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철학적이고 심오한 언어들에 매료되어서 전집을 샀는데, 의식의 변화와 함께 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착하고 순진해서 매사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인공, 아기해달 보노보노와 언젠가는 있는 힘껏 낙지를 한방에 날리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 해보진 못한 포로리를 좋아했었는데, 이번에는 단연 폭풍 간지 야옹이 형이었다.
야옹이 형은 하찮은 말 같은 건 안 한다.
야옹이 형은 별로 얘길 안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만 힐끔 풍경을 보고, 쿵쿵 걸어간다.
숲 속 동물들은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홀로 동굴에서 지내고 있는 야옹이 형은 고독한 존재로 항상 방관자로 있고 싶어 한다.
과거가 폭로될 것 같지만 그때마다 사라져서 비밀이 유지된다.
야옹이 형은 누군가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야옹이 형의 은밀한 즐거움은 작은 즐거움이다.
이렇게 쓸쓸한 즐거움은 자신과 남을 배반하지 않는다.
야옹이 형의 모토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해. 모두가 함께 하는 일은 모두 함께 해.'이다.
야옹이 형 : "그래, 넌 뭘 물어보려고 왔니?"
보노보노 : "재밌는 건 왜 끝나는지 알고 싶어서요."
야옹이 형 :" 재밌는 게 끝나는 이유는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을 반드시 끝내기 위해서란다."
보노보노 : "그럼 재밌는 것만 계속되면 좋잖아요."
야옹이 형 : "그럴까?"
야옹이 형 : "그럼 저 태양이 계속 하늘에 떠 있는 게 좋을까?"
보노보노 : "그러면 밤이 안 오겠네요."
야옹이 형 : "그렇지, 해가 져서 밤이 오고 그리고 또 해가 떠서 아침이 오듯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을 끝내기 위해 재밌는 일이 끝나는 거란다."
보노보노 : 잘은 모르지만 오늘도 재밌는 일이 시작된다! 분명히 그럴 거야...
멘토 언니
룸메이드 일은 처음 배울 때 멘토가 지정되고, 사수인 그 멘토 언니에게 베드메이킹을 비롯한 구체적인 정비 기술을 배우게 된다. 다행히 나의 멘토 언니는 일반 사회에서도 만나기 힘든 멋진 사람이었다.
룸메이드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은 멘토 언니에게 농담처럼 '내가 잘되면 한턱 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언니는,
"메이드가 잘 돼 봤자 메이드지 뭐..."
하면서 냉소적으로 말했다.
멘토 언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몸과 마음이 반듯하고 건강했고, 모든 면에서 적절한 언행과 태도를 견지해서 타의 모범이 되는 모습으로 눈 여겨봐지는 인물이었다. 단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에 대해서, 또 자신을 포함한 우리에 대해서 낮추어 말하는 점이었다.
"메이드는 아무리 자기가 잘났다 해도 결국 우린 다 똑같아. 메이드는 그림자야."
이런 식의 말을 자주 해서 주변 사람들까지 다운되게 만들었다.
언니는 자주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을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우리를 그렇게 보는 사회적 시선과 위치, 구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말을 하는 이 언니의 언어가 대단히 세련되고 품격이 있었으며 동료들이 그 언니의 말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남 볼래 에뛰드 삐아쁘 노래를 듣고, 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 유료 앱으로 소설을 읽는 등 직업의 귀천과는 별개인 본능적인 존재 욕구가 언뜻언뜻 보였다.
정해진 시간에 비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메이드 일에 대해 불안이 높은 후배들에게 멘토 언니는 특유의 촌철살인의 명언을 투척했다. 가령 이런 것들이었다.
"호랑이가 쫓아와도 정해진 동선대로 끝까지 밀고나가야 돼!"
"살아남아야 다음이 있는거야."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전 존재를 던져야해!"
"진심은 통하게 돼있어."
그 말만 들으면 여기가 선수촌이라도 되고, 우리가 국가대표 선수인 것만 같았다.
또는 멘토언니가 큰 스님 같아 보였고, 호텔이 법당 같아 보였다.
일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채 샤워실에 들어갈 때 마다 정말로 선수촌 샤워실인가 싶을 만큼 오랫동안 일한 언니들의 뒷모습은 잔근육으로 단련되어 눈부시게 빛났다.
'이따위 청소 하나 하는데 전 존재를 던지라고?' 처음에는 그 말이 상황에 안 맞는 것 같았고,
'저 언니가 책 좀 읽었다고 멋지게 보이려고 저러나...'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서 그 말은 '지금 여기', 실제에서 유용한 실탄으로 작용했다.
현실에 뿌리내리고 제대로 기능하면서 살아남으려면 작은 일 하나에도 전 존재를 던져야만 가능했다.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전속력을 내는 사자와 같이.
그렇게 멋진 말을 던지고 사라지는 멘토 언니에게서 검은 곰의 털 사이로 황금빛을 살짝 본 것 같았다.
자신의 반듯한 몸가짐이나 바람처럼 가볍게, 빛처럼 빠른 속도로, 어떠한 상황이든 성공적으로 해내는 모습이라든가, 일처리가 늦고 미숙한 후배가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방 하나를 번개처럼 후딱 처리하고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언니가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고 카리스마 작렬해 보이는지 스스로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메이드는 메이드일 뿐이고, 그림자일 뿐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멋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멋짐을 잘 모르는 이 멋진 언니가 아침에 락커에서 삶은 달걀 3개를 주었다.
달걀은 메이드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간식거리 중 하나였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을 하면서 배가 쉽게 고파지는데, 고단백의 완전식품인 달걀은 허기를 속이는데 아주 유용했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이 베낭에 비상 식량을 챙기듯이 아침마다 락커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달걀이나 떡 같은걸 나누는 장면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한때 달걀 다이어트를 한다고 질리도록 삶은 달걀을 먹어대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건만,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한 일터에서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동료들에게 받는 달걀이 애틋했다.
데미안 바닷가
하루 종일 달걀 하나 까먹을 틈 없이 바빴다가 퇴근 후 바닷가에 앉았는데 아침에 받은 달걀이 생각났다.
급히 까먹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데미안이 생각났고, 이미 조금 깐 달걀 하나와 나머지 두 개는 막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연출을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호텔에서의 시간은 내 안에 큰 질문으로 있었던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첫 구절을 이해하느라 분투했던 시간이었고,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끝나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면서 조각난 것들이 통합될 줄 알았다.
얻는 것도 많았고 잃은 것도 있었고, 아름다웠지만 아팠고, 불협화음이 있음으로써 조화로운 화음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미안의 메시지처럼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고자 하는 여정은 끝이 없으며, 오직 길 자체만이 의미로 드러난다는 걸 깨닫고 있다.
달걀 퍼포먼스를 마친 후 혹시 모래가 묻지 않았는지 잘 살펴보고는 껍질을 까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밤바다에 앉아서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을 다시금 보았다.
주인공 앤디가 규정에 위배되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동료 죄수들은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며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한순간을 경험한다. 이 죄수들과 같이 존재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매일매일 자폐의 벽을 조금씩 뚫어나가고 있었던 나도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까똑! 까똑!"
여름 성수기가 다가오면 아직도 메이드 동료들에게서 톡이 온다.
시간 되면 와서 카바 쳐달라고. 일당 두배로 준다고.
이제 일당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메이드 동료들의 연락처를 삭제하지 않았다.
"까똑! 까똑!"
여름 성수기, 그 두려웠던 러시를 떠올리게 하는 긴박한 톡을 들여다본다.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쇼생크 탈출 OST.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이중창
'산들바람은 부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