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 May 28. 2024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도 없을 거야!

-<원라이너> 4화. 나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의 힘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 없습니다."

이 말은 한때 유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이 했던 멘트다

대결 구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정해진 규율에 따라 누군가는 승자가 되어 다음 무대로 향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운명을 가르게 되는 잔혹한 멘트였다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열심히 갈고닦은 재능을 펼치는 무대를 즐기기도 했지만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라는 선고를 받았을 때 참가자들의 반응을 유심히 보았다그 멘트가 나오면 다양한 모습들이 보여졌는데크게는 두 가지 반응으로 요약되었다



하나는 "더 이상 준비한 것을 보여줄 수 없어서 아쉽게 생각한다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께 감사한다다른 곳에서 계속 작업을 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와 같이 힘들어하면서도 그 상황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한 행동이었다실제 마음과 다를 수 있고 준비된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통제하는 힘과 성숙한 태도가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다대부분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너무 서글프게 울어서 방청객들도 같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기 때문에 다음을 생각할 마음의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당장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결과를 인정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제 나에게 펼쳐진 현실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 없습니다." 라는 멘트가 나오면

… …’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음소거 상태가 되었다마음속에서 충격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간일 것이다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 장면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진 선택의 순간은 우리 인생의 여정 속에서 내 의지가 아닌 채 맞닥뜨리게 되는 불합격과 이별박탈과 결핍상실을 연상시켰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을 상실의 인정에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이럴 경우 불만낙담체념상황에 대한 회피저항자기 비하, 자기 연민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가치 있는 수용 행동으로 마음을 확장해 나갈 때 성장이 이루어진다



성장! 그것은 켜켜이 쌓이는 나이테처럼 지난한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성장이란 것은 얼마나 지루하고 아픈 것인가? 또한 성장을 통해 아로새겨진 무늬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 성장통을 겪어내며 여기 이 곳에 살아 쉼쉬는 우리는 얼마나 강인하고 대견한가?


 

내 인생의 여정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실의 순간들이 곳곳에서 나타났고 그 감정을 수용하는 데에 실재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 이야기 한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매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정신세계에서 바로 나온 지혜가 담긴 그림 형제 이야기가 주요 텍스트였고가능하면 토씨까지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외워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들은 삶 속에서 새로운 교훈으로 살아나 나에게 다시금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그림 형제가 수집한 수많은 이야기 중 특별히 나에게 다가온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행운아 한스행운아 한스는 사소하게는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나 크게는 소중하게 여겼던 유형무형의 소유물을 정리할 때혹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상실을 애도로 전환시킬 때영혼을 정화하는 마법의 힘이 있는 이야기다.     



한스가 주인집에서 7년간 일을 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인사를 하자 주인이 그동안 성실히 일해 준 보답으로 큰 금덩어리를 준다한스는 무거운 금덩어리를 메고 고향으로 향한다집으로 가는 길에 소를 탄 사람을 만나서 소와 금덩어리를 바꾸게 된다또 길을 가던 도중에 돼지를 몰고 가는 아이를 만나게 되고 이번에는 소와 돼지를 바꾼다다음에는 돼지와 오리를, 이어서 오리와 가위를 가는 돌덩어리와 맞바꾸게 된다바꾸는 장면에서 소와 돼지와 오리의 주인들과 가위 가는 사람은 한스가 가지고 있는 것을 탐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이지만 너를 위해서 바꾸어 주는 것이며 너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꼬드긴다순진한 한스는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 자신이 오랫동안 힘들게 일해서 번 재물을 더 작고 가치가 낮은 것들과 바꾸면서도 그 사람들 말처럼 자기가 운이 좋아서 더 나은 것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한다그런 한스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안타깝다속고 있는 줄 모르고 좋아하는 한스의 말로가 어떻게 될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결국 7년간 일해서 받은 금덩어리를 최종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돌덩어리로 맞바꾸게 된 한스는 돌덩어리가 너무 무거워서 지친 나머지 우물가에 놓아두고 물을 마시게되고, 그러다가 돌덩어리가 우물에 빠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돌덩어리가 우물 깊이 빠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의  한스의 행동이 압권이다정확한 문장이 궁금해져서 수년 만에 그림 형제 이야기책을 뒤적였다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전과 역설의 카타르시스가 그대로 살아있었다



우물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돌들을 보고 한스는 기뻐서 펄쩍 뛰었습니다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자신에게 그토록 큰 축복을 내려서 돌덩이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하느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정말로 그 돌들은 그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으니까요.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도 없을 거야!”

모든 짐에서 벗어난 한스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렇게 외치며 어머니가 계신 고향마을로 달려갔습니다.’     



 행운아 한스는 저마다 다르게 의미와 가치를 갖는 금덩어리와 소와 돼지와 오리를 바꾸거나 잃어버렸을 때 겪게 되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자세에 대해 유쾌하게 알려준다그 상실이 고통만이 아닌 것을 받아들일 때스스로 버릴 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지금까지 무엇을 버렸는지다음으로 정리할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가벼워진 자리에 새로운 종류의 명랑함과 기쁨이 차오른다



이야기 하나를 마음에 간직한 것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할 수 있을까있다놀랍게도 그랬다우울과 분노혐오의 감정 수준에서 좀 더 높은 수준의 수용 행동이 가능해지려면 언어적 과정의 조정이 필요하다. 변화를 향한 언어의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유용한 텍스트로 지혜로운 옛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어떤 현자가 말했다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무엇도 관점을 바꾸고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행이고 내공이다마음이 다다

A.I. 가 우리의 일자리를 대신하고 직업의 대다수가 사라진다는 위협으로 불안이 팽배한 저성장 시대생산과 소비의 가치에서 소통과 학습으로타자와의 경쟁에서 내면의 욕구로 초점을 돌리고 지혜로운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스폰지밥 | 찢어진 바지







이전 03화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