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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y 21. 2024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원라이너> 3화.



나의 태양은 노랗다


브런치 이웃 이미경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아!" 쓰려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글이 떠올랐다.

'나의 태양은 노랗다'는 제목의 노랑노랑한 글과 그림은 내가 쓰고 싶었던 소재와 주제가 너무 일치해서 놀라웠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일을 할 때, 나의 포지션은 내 담당 크리에이터가 구현하고 싶어 하는 장면을 기술적으로 만들어내어 씽크를 맞추는 제작자였다. 크리에이터가 낮처럼 드러나고, 제작자인 나는 밤 같은 역할, 영화로 치면 주인공과 대역 배우 같았다. 


한 번은 해와 달을 채색하는데, 나는 해는 노랗게, 달은 은빛으로 채색을 했는데, 크리에이터가 해는 빨강, 달은 노랑으로 지정했고,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해는 빨강, 달은 노랑으로 채색해야 했다. 

한 번은 친구가 물었다. 그렇게 얼굴 없는 제작자로 일하면서 자기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느냐고? 자아가 있는 성인으로서 내 의지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지만, 분리해야 할 일이었다. 그곳의 세계관 속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었으므로 어떤 불만도 없었다(라고 생각했다).


엄마 놀이를 할 때 내가 아이를 맡아놓고 아빠가 엄마와 잔다고 불만스러워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아빠와 자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일이었다. 일정한 화폐를 받고 내 재능을 파는 대가로 내가 원하는 황금빛 해와 은빛 달을 그리면 안 되었는 것이 그곳에서의 약속이었다.





최초로 감정을 그린 선구자 고흐


나는 고흐를 좋아하지만 그림 자체의 느낌으로 좋아했지 고흐에 대해 깊이 있게 읽고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고, 그 감상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잊고 있었던 것이 이미경 작가님 글을 읽다가 연결되었다. 


고흐를 잘 모를 경우, 살아생전 인정을 받지 못한 불운한 화가, 귀를 자른 기행이라든가, 삶의 마지막을 정신 병동에서 보냈다는 암울한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좋아하긴 했지만, 그림이 왜 좋아 보였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고흐는 감정을 색채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이 가진 색채 그대로 화폭에서 구현하는 것이 화가의 일이었다면, 고흐는 그 틀을 깨고 보이는 대로의 색채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반영한 색, 느낌대로의 색, 심리적인 색, 내면에서 원하는 색, 자신감을 주고, 활력을 주는 색채를 사용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지금 시대에서 생각해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발상을 했던 것이니, 대단히 창의적이고, 용기 있는,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던 것이다.








'고흐의 방'으로 알려진 '아를의 침실' 원래 벽지의 색깔은 흰색이고, 침대도 흰색이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파랑색으로 변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계속된 연구에 의하면 고흐는 마지막으로 벽지를 연보라색으로, 침대와 가구들과 바닥을 나무색으로 칠했고, 실제 사물들과 다른 그 색들은 스스로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색을 실험적으로 시도해 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The Night Cafe (1888)


노란 집이 있는 거리 (1888)


해바라기 (1988)


고흐가 사랑했던 색  Indian Yelioiw




19세기 일본 회화




고흐는 일본 회화에 매료되었고, 그림의 느낌으로 일본이 열대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에 가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으므로 가능한 한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곳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프랑스의 아를이었고, 이곳에서 2년, 고흐의 생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그림들을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그렸고, 불멸의 명작들을 남겼다. 


고흐가 좋아했던 색은 노랑이었다. 노랑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고도 불린다. 노랑에 대한 집착이 정신병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빛을 바라본 낙관과 희망의 상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특히 인디언 옐로를 가장 좋아해서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방, 집, 카페, 밀밭, 밤하늘의 별 등 많은 부분에 인디언 옐로의 환함이 남아있다. 









사는 대로 사니 

가는 대로 사니 

그냥 되는 대로 사니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신해철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우리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교란시킨다. 욕망대로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적응하면서, 조화롭게 살기 위해 습득한 습관에 지배당한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누군가에 의해, 환경에 의해, 트렌드에 의해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게 되었다. 대단한 가치를 찾기보다는 작은 취향이라도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고흐가 일본 회화를 좋아하고, 따뜻한 나라를 갈망하고, 태양을 사랑하고, 인디언 옐로를 찾았듯이.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오스트리아(벨베데레 궁전 소장), 1907-1908, 캔버스에 유채




스탕달 신드롬


클림트의 키스를 처음 보았을 때, 그림을 보고 눈이 부시다든가, 눈물을 흘렸다든가, 그림 하나를 보고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갔다든가 하는, 극적인 체험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일명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한 것이다.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은 아름다운 그림 같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 혼란, 어지러움증, 환각 등의 증상을 경험하는 현상이다.


이 세상 퀄리티가 아닌듯한 신적인 사랑, 부족함 없는 충만한 기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기심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이 그림을 무슨 비밀 화첩이라도 되는 것처럼 폴더에 숨겨놓고 가끔씩 들여다보면서 내가 느꼈던 심층의 감정이 뭔지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살아내야 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리한다.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나이 들면 혼자가 제일이다. 스스로에게 수없는 명언을 투척하면서 버텨오던 어느 날, 내 안의 연약한 동물은 말했다. 

"사랑받고 싶다." 

당혹스러운 고백이었다. 


뿌리가 얽히고 껍질이 거칠어진 나는 이제 더는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 강해지기 위해 견뎌오는 동안도 끊임없이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을 가진 내 안의 어린아이는 모든 실수와 아픔까지 아름답게 변화시킬 마지막 사랑을 꿈꾸고 있었다. 

위대한 화가가, 황금빛 그림이, 스탕달 신드롬이 왜 필요한지, 예술이 어떻게 마음을 어루만지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랑, 그것이야 마음대로 안되더라도, 이 세상 모든 것이 시간 속에 사라지더라도, 예술은 영원하리라~!




Don McLean - Vincent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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