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놀이터> 7화. 종이인형 옷갈아입히기
가시나무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정신분석을 받을 때, 너무도 많이 분열된 자아의 상이 출몰해서 어떤 것이 나인지 혼란스러웠고, '가시나무' 노랫말이 절로 떠올랐다.
너무도 많은 나로 인해 너무도 많은 사람을 괴롭혔고, 누구보다 나 자신을 혹사시켰다.
모든 것이 내가 아니고, 모든 것이 나인 한 인간의 정신은 역겹도록 강박적이고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나는 누구인가?
자기(Self)는 누구인가?
자기는 모든 것!
자기를 말하려면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자기는 전체 인격이기 때문이다.
페르조나, 그림자, 아니마와 아니무스, 각종 콤플렉스, 열등한 기능, 의식, 자아(ego), 개인적. 집단적 무의식, 원형들... 이 모든 것이 자기를 이룬다.
C.G. 융은 '자기실현'이라는 말보다 '개성화'(individuation)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였다. 두 용어가 다 개인의 전체정신을 실현한다는 뜻에서 같은 말이다. 자기라는 말이나 개성이라는 말은 같은 것을 다른 측면에서 표현했을 뿐이다.
자아실현이 아닌, 자기실현
자아는 의식의 중심이지만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은 전체정신의 중심이다. 전체정신은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은 발달, 분화, 또는 강화될지언정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실현이란 아직 모르는 크기의 전인격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왜 자기실현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인간의 핵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냥 행복하게, 즐겁게 살면되지 왜 꼭 자기실현을 해야하는가? 질문할 수도 있다.
자기실현은 엄숙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다. 바로 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나 초인이 되라는 요구가 아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으나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삶을 가능한 한 많이 실현하라는 것이다.
C.G. 융은 인간 심성 속에서 이와 같은 자기실현의 보편적. 원초적 충동을 발견하고 여기에 이름을 붙이고 이 현상을 기술하였다.
자기실현은 삶의 본연의 목표이며 값진 열매와도 같다.
자연은 값진 열매를 헐값에 내주지 않으므로 이 과정은 당연히 갈등과 방황이라는 고통스러운 시련을 수반하기도 한다.
성장과 성숙을 위한 고통과 시련을 마다한다면 통찰의 희열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이부영. 분석심리학의 탐구 3
<자기와 자기실현 -하나의 경지, 하나가 되는 길>
23-30 쪽 요약. 편집
아무 것도 아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릴적, 종이인형을 그리고 오려서 옷갈아입히는 놀이를 많이도 했다.
이건 지역과 세대를 아울러 전승되는 놀이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의식의 반영이었던 것 같다.
공주와 왕자, 왕과 왕비, 거인과 난쟁이, 요정과 정령, 마녀와 도깨비, 배우와 거지, 최고의 영광스러운 성공과 최악의 실패와 두려움... 그 사이에서의 끝없는 분투,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찬란한 생성의 자유...
A - B - A'
흙으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지만, 똑같은 흙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 복잡다단한 B가 존재한다. B를 얼마나 풍성하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A'가 결정된다.
선택할 수 없이 흙으로 태어나지만, B를 선택함으로써 '가 결정된다.
아름다운 삶을 선택하면,
아름다운 흙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점이 될 수 있다.
종이인형 옷갈아입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