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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n 28. 2024

발리 스피릿 욕실 만들기

-<종이놀이터> 8화.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는 과거에 같이 일하던 장 동료들과 함께했던 글쓰기 모임의 이름이다. 당시에 낮에는 호텔 메이드 일을 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힘들게 번 돈으로 가슴 떨리게 비싼 심리학, 철학, 신학, 과학 등등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읽었다. 고된 육체노동으로 책을 읽다가 조는 일이 더 많았고, 졸고 나면 의지는 더 강해지는 고통스러운 쾌감이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마침 글쓰기 책,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읽으면서, 책 속에 나오는 형태의 글쓰기 모임에 부쩍 관심이 갔다. 글제를 선정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참여한 구성원들 모두가 글을 쓰고, 자신이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그 책에 나온, 내가 하고 싶었던 글쓰기 모임의 진행 방식이었다.

그즈음, 과거에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고, 오랜만에 만났다.



유치원에서 일할 때, 나를 의지했던 그 선생님은 나 역시 특별히 믿고 아끼던 후배였다. 우리 둘 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그 일을 힘들어하면서도 초월적인 의미에 큰 매력을 느꼈으므로 다독이며 나아가던 중이었고,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좌초됨으로써 각자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다.

당시에 미혼이었던 그 선생님은 그동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었고, 당시에 기혼이었던 나는 그동안 이혼을 해서 다시 솔로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반갑게 그간의 이야기를 쏟아냈고, 운동을 해야 된다에서부터 시작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에 이르기까지, 결국 기-승-전-공부로 흘러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 욕심이 많은 우리가 다시 만난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게 생각하고 있던 글쓰기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덪붙여서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둘이서 의기투합해서 만든 모임 소식은 곧 다른 선생님에게 흘러가 닿아서 곧 세 명이 되었고, 그 선생님의 친구인 고등학교 기간제 선생님 한 분이 참여해서 네 명이 되었다.



거기에 호텔에서 일할 때, 나를 따르던 동생 두 명까지 합세해서 참으로 독특한 구성원들의 글쓰기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 동생 두 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명은 입사 동기로 도쿄에 있는 미술 대학을 나오고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메이드 일로 생활비를 벌면서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였고, 한 명은 너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이십 대에 이혼을 한 후,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메이드 일을 하면서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업으로 메이드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각자 초현실적인 지향이 분명했던 우리는 가끔 퇴근 후 호텔 앞 카페나 바닷가에 앉아서 그날의 감정을 쏟아내고 그곳을 벗어나서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곤 했다.



각자 다른 생업들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모여서 두세 시간가량 정해진 책을 읽고, 정해진 주제로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돌아가면서 자기가 쓴 글을 읽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격정적인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에는 나이가 제일 많고, 모두와 친분이 있고, 모임을 주도한 내가 글제를 정했다면, 회차가 거듭되면서 구성원들이 돌아가면서 정했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도 다들 좋아했지만, 돌아가면서 글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샘이 폭발하는 경험을 신기하게 여겼다.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는 3년 정도 지속되다가 코로나 시대를 맞으면서 중단되었고, 공부 모임을 하던 공간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늘, <종이 놀이터> 8화. 발리 스피릿 욕실 만들기 스톱모션 영상을 고를 때의 생각은 곧 장마가 시작되는 것을 의식하고는 습기 차고 눅눅한 현실의 공간을 깨부수고 판타지의 세계로 잠깐 떠나보자는 것이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쓸까 생각하다가 자유 연상된 이 이야기를 쓰게 되었고, 글을 다 쓴 시점에서 이 글이 발리 스피릿 욕실 만들기와 무슨 상관인지 갑자기 연결이 안 되어 잠시 혼돈에 빠졌다.



한참 생각하다 보니, '스피릿' 때문이었다. 영혼... 그걸 생각하다가 그 일들과, 그 사람들과, 그 눈물들을 떠올렸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듬직하고 착한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예쁜 아이가 있음에도 늘 좌불안석하고 바깥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웃던 그 후배는 안정을 찾았을까?

같이 공부를 하던 중에 심리상담대학원에 진학했던, 박사까지 공부하겠다던 야심만만하던 그 후배는 박사가 되었을까?

모임 때마다 기간제 교사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며 불평등과 결핍에 분노하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의 그 친구는 평온을 찾았을까?

자기가 번 돈과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꼭 하겠다던, 특별히 빛나는 눈을 가 그 동기는 전시회를 했을까?

간호조무사가 되어서 메이드를 하루빨리 때려치우겠다던, 내가 현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예뻤던 그 동생은 제일 예쁜 간호조무사가 되었을까?



평일 저녁,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어린아이를 남편에게,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는 격정적인 눈물을 쏟아냈던 그들의 영혼이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어디에 있든 평화롭기를.




이웃 해조음 작가님 오늘 발행글, <oren 핑여사 만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능가하는 야심찬 시나리오를 소개하오니 시간되시는 분, 우울한 분, 희망이 안보이는 분, 장마를 앞두고 마음이 무거운 분, 입맛이 없으신 분, 행복해지고 싶으신 분들께 해조음 스피릿 일독을 권합니다.





발리 스피릿 욕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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