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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n 29. 2024

최고로 웃긴 이야기

-<오랜 우화> 9화. 쥐. 새. 소시지



이 이야기는 그림형제 동화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했던 이야기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일곱 살 남자아이가 이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너무 웃다가 한 번은 의자에서 떨어져서 바닥에서 뒹굴 정도로 재미있어했고, 나중에는 다른 아이들까지도 그 아이의 반응 때문인지 진짜 이 이야기가 재미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모두들 너무 심하게 웃어서 더 이상 들려줄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야기 항아리 밑바닥에 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보았다. 

의식이 고착화된 성인으로서 교훈을 찾아내며 분석적으로 읽어지는 이 이야기는 삶의 페이소스가 진하게 녹아있는, 전혀 웃긴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느꼈던 신비로운 느낌을 떠올려본다. 



그림형제의 텍스트는 현대의 창작동화에서와 달리 잔인하게 신체를 훼손하는 묘사나 계모의 학대, 재난과 병과 죽음 등 삶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을 미화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가감 없이 들려준다. 

의식의 필터로 걸러내지 않는 아이들은 무의식의 힘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듣는다. 

그렇게 수용한 모든 감정들은 밝고 재미있고 좋은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불행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된다고 믿었다.



각설하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번 들어보시라.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쥐와 새와 소시지가 만나 한 식구가 되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평화롭고 행복하게 지냈으며 재산도 많이 모았다. 

새가 맡은 일은 매일 숲 속으로 날아가 땔감을 물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쥐는 물을 길고 불을 피우고 밥상을 차리는 일을 했고, 소시지는 요리를 했다.

그런데 편안하게 살다 보면 항상 좀 더 편해질 방법을 찾는 것이 세상 이치, 어느 날 숲 속으로 날아간 새는 다른 새를 만나 자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자기네는 아주 근사하게 지내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다른 새는 대뜸 쥐와 소시지는 집안에서 편히 놀고먹는데 새는 죽도록 고생만 한다고 하면서 새에게 바보라고 놀렸다. 



사실 쥐는 불을 피우고 물을 길어온 뒤 밥상을 펴기 전까지 자기 방에 가서 편히 쉬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시지는 뱀비 곁에 붙어 서서 음식이 끓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식사 시간 직전에 냄비 속에서 끓고 있는 스튜나 야채들 속에 슬쩍 몸을 담갔다가 빼냄으로써 간도 맞추고 맛도 내곤 했다. 소시지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새가 집에 들어와 땔감을 내려놓으면 그들은 밥상 주위에 둘러앉곤 했으며, 식사가 끝난 뒤에는 이튿날 아침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곤 했다. 그들의 근사한 생활이란 바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새는 다른 새의 말을 듣고 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이튿날 쥐와 소시지에게 이제 더 이상 숲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새는 자기가 오랫동안 그들의 노예로 지내왔으면 그들은 자기를 바보 취급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이제부터는 하던 일을 서로 바꾸어서 해보자고 주장했다. 

쥐와 소시지는 새의 말에 반대했지만 새는 좀처럼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새로운 방법을 시험해 보자고 우겼다. 그들은 결국 제비를 뽑기로 했는데, 그 결과 소시지는 땔감을 구해오는 일을 맡게 되었고, 쥐는 요리를, 새는 물을 길어 오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소시지가 나무하러 간 뒤 새는 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쥐는 난로 위에 솥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소시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소시지가 나간 시간이 한참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새가 소시지를 찾으러 나갔다. 그리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개 한 마리를 발견했고, 그 개가 소시지를 임자 없는 먹이로 생각하고는 덥석 물어 삼켜 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새는 너무나 화가 나 그 개에게 날강도라고 욕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개는 소시지에 가짜 상표가 붙어 있었으므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새는 슬픔에 잠긴 채 소시지가 떨어뜨린 땔감을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는 쥐에게 자기가 보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은 몹시 슬퍼했다. 그러나 그들은 둘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함께 살아보자고 약속했다. 이제 새는 밥상을 차리는 일을 했고 쥐는 음식을 요리했다. 쥐는 소시지가 하던 대로 간도 맞추고 맛도 내기 위해 끓고 있는 야채 냄비 속에 슬쩍 제 몸을 담갔다. 그러나 쥐는 야채 속에 제대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만 냄비 속에 빠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새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식탁 앞으로 왔는데 요리를 맡은 쥐가 보이지 않았다. 새는 몹시 걱정이 되어 잔뜩 쌓여 있는 땔감을 이리저리 헤치고 쥐를 소리쳐 부르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새가 헤쳐 놓은 땔감에 그만 불이 붙어 버려 그들이 살던 집에 불이 났다. 

새는 물을 길어 오려고 우물가로 달려갔다. 그런데 두레박이 우물 속으로 빠지면서 그것을 물고 있던 새까지 끌려들어 갔다. 결국 새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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