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본질 속에 아직도 침묵이 존재하는 인간은 그 침묵으로부터 외부 세계로 움직여 나아간다. 침묵이 그 사람의 중심이다. 그때 그 움직임은 직접적으로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침묵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침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70쪽)
침묵의 실체가 자신의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의 모든 움직임은 그 자신의 침묵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래서 그의 움직임은 완만하다. 그의 움직임들은 서로 격하게 충동하지 않는다. 그의 움직임들은 침묵에 실려 다닌다. 그 운동들은 침묵의 파동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인간은 명백하게 현존하고 있으며 그의 말 또한 명백하게 현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침묵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고 따라서 그의 모습은 침묵 없이 인간의 말과 소음이 하나의 계속되는 잡음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더욱 명백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귀함은 그가 이 세상 속으로 침묵을 실어다 준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그러한 인간은 안정 속에서 경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안정은 이때에는 침묵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묵은 모든 경계선을 넓히고, 그리하여 안정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 밖으로 뻗어나가게 되며, 그 때문에 결코 경직되지 않는다. 그때에는 불안정도 인간을 소진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침묵의 진동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나 침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안정이 경직되는 까닭에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불안정은 인간을 소진시키는 까닭에 그 속에서 인간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끊임없이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무겁게 나아갈 수밖에 없고, 그의 모든 시작 속에는 불가피하게 불안함이 스며드는 것이다." -괴레스 (72-73쪽)
자아와 침묵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 최승자 옮김
까치
흔들리는 터전에서 인간은 늘 안정을 추구한다. 그러나 안정을 찾은 인간은 안정을 찾는 즉시 경직되어 또 다른 불안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불안정은 인간을 소진시켜 견딜 수 없게 만들기에 불안정에 놓인 인간은 또다시 안정을 찾아 도약한다. 괴레스는 안정으로의 경직과 불안정에서의 소진은 침묵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안정의 경직과 불안정의 소진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침묵을 역설한다.
필요한 것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의 침묵, 경직과 소진 사이의 침묵, 꿈과 현실 사이의 침묵, 잠과 깸 사이의 침묵, 아기와 노인 사이의 침묵, 생각과 감정 사이의 침묵, 고뇌와 평정 사이의 침묵, 눈물과 웃음 사이의 침묵, 변화와 새로움을 위한 침묵, 우왕좌왕을 방지하기 위한 침묵, 지속가능과 무한한 지혜를 위한 깊고 광대한 침묵, 규정되지 않은 너와 나를 위한 침묵, 깊고 맑고 투명함을 위한 침묵, 언젠가 태어날 명료함을 위한 침묵이다.
댓글 미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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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