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의 시간> 21화.
말은 침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말을 통해서 진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침묵 속에도 역시 진리가 있다는 것은 다만 그 침묵이 존재 일반의 질서 속에 있는 진리에 참여하는 한에서이다. 침묵 속에서 진리는 수동적이다. 진리는 침묵 속에서는 잠들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말속에서 진리는 깨어 있고, 말속에서 진리와 허위에 대한 능동적인 결단이 내려진다.
말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짧다. 그것은 다만 침묵 속의 한 틈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말은 진리를 통해서 비로소 그 지속성을 얻게 되고, 진리를 통해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가 된다. 그리고 진리를 통해서 말에 지속성이 생기는 까닭에 말은 소멸하지 않는다. 말이 생겨서 나왔던 침묵은 이제는 진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 변하게 된다.
진리가 없다면 말은 침묵 위에 드리워진 막연한 말의 안개에 불과할 뿐이며, 진리가 없다면 말은 하나의 불분명한 중얼거림으로 와해되고 말 것이다. 진리에 의해서 말은 분명한 것, 확고한 것이 된다. 그리고 진실된 것과 거짓된 것을 가르는 선을 받침대로 하여 말은 스스로를 안정시킨다. 진리를 통하여 말은 침묵과 마주하여 독립적인 것이 되고,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리하여 말은 자신의 배후에 하나의 세계, 즉 침묵의 세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자기 곁에 또 하나의 세계, 즉 진리의 세계를 가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진리의 말을 위해서는 침묵과 연관이 꼭 필요하다. 그러한 연관 없이는 진리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만 개개의 진리만이 있게 될 것이다. 개별적 진리의 지나친 엄격함은 그 관계가, 즉 진리의 체계가 부인된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서 본질적인 점은 어떤 개별자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체 속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침묵의 가까움은 또한 용서와 사랑의 가까움을 뜻한다. 용서와 사랑을 위한 자연적인 토대가 곧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연적인 토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면 용서와 사랑이 먼저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수단을 창조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침묵, 말 그리고 진리 (35-36쪽)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지음 | 최승자 옮김
까치
진리는 말속에서 드러나고,
진리의 말을 위해서 침묵이 필요하고,
말이 진리 속에서 지속될 때 침묵은 신비가 된다.
침묵의 가까움은 용서와 사랑의 가까움을 뜻한다.
이 글을 여러 번 읽으면서 말과 침묵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이런 종류의 글을 이해하려면 와닿는 단어나 문장을 오랫동안 품고 있어야 한다. 과일이 달콤한 결실을 맺기 위해 오랜 시간 비바람을 이기고 여물어 가듯이. 가을을 알리는 세찬 비가 내리는 주일, 침묵과 연관된 말을 통해서, 말과 연결된 침묵을 통해서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영원한 진리 한 조각 맛보게 되기를, 빛을 품은 어둠 속에서 간절히 원하고 바란다.
연재브런치북 <삭의 시간>은 침묵에 대한 내용이니만큼 댓글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보는 것으로 침묵과 말에 대한 실제적인 차이를 느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