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가소개

-오랜일기

by 오렌



연말 회사 전체 회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꽤 오랜만에, 마지막으로 수정한 브런치 작가소개를 읽으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매일 조금씩 읽고 쓸 때만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헛되지 않게, 충실하게, 내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숨이 턱에 차도록 땀 흘려 일하고도 충실하지 못한 느낌, 궤도를 이탈한 듯한 헛헛한 기분이 누적되어 급기야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고, 마침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로베르트 발저, 산문집 <세상의 끝>에 수록된 '어느 화가가 어느 시인에게 쓴 편지(1915년)'를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다음은 그 마지막 문장이다.


'진심으로 잘 지내기 바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두 사람은, 시인인 너나 화가인 나는 인내와 용기와 힘과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거야. 거듭 잘 지내기를 바라며, 치통이 없기를 바라고, 돈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밤새 읽을 수 있도록 긴 편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그렇다. 나에게 필요한 건, 인내와 용기와 힘과 끈기다. 거창한 무언가를 해내려는 치기보다 작고 분명하고 느리고 꾸준한, 구체적인 실천이다. 미하엘 엔데의 거북이, 트란퀼라처럼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다.


'속 깊은 인터넷 친구'라는 부제를 붙인 <오랜일기>는 지금은 오십 대가 된 내가 이십 대 때 온라인으로 연재한 그림일기였고, 공교롭게도 그때도 또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밤에 '지금 당장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즉흥적으로 시작한 글이었다.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어리석게도. 흥미롭게도. 다행히도.



2025년 12월 14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승리에 대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