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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Nov 25. 2019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윤후명 단편소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위 말은 '베르세르크' 라는 만화의 주인공이 뱉은 대사이다. 아무리 비옥한 땅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는다 할지라도, 끝까지 견디면서 일궈낸 성과가 빛을 채 발하지도 못한 채 자리를 떠나게 되면 그저 허탈함만 남을 뿐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반복되는 과오의 원인이 자신의 반복되는 행적에 존재한다는 것을 끝까지 모르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깨닫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진짜 자신의 광원을 찾지 못한 채, 영겁 속에서 방랑으로 가득찬 시간의 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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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가는 이들을 욕할 수는 없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이루기엔 너무나도 가혹하다. 아무리 예쁜 꽃을 피워낸다 할지라도, 어떤 것은 상품이 되고 어떤 것은 하품으로 낙인찍히는 곳에서 과연 우리들의 의지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대다수의 소시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에만 해도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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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과정을 목격하고 반복하면서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수많은 꽃들을 키우고 피워낸다. 그저 자신이 지금껏 행해온 행적들에 대한 미련일까, 아니면 미련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숭고한 개념 때문인 걸까. 그들에게 있어서 꽃은 자신들의 꿈으로 간주될 수 있을 거였다. 이루기 위해 걸어온 그 순간 순간 길을 잃어버리거나, 이탈하거나, 목적지를 잘못 찾아와서 되돌아갈 지언정 자신의 깊은 꿈은 간직해야했다. 그걸 위해서라도 꽃을 피우는 행위를 그쳐선 안 되었다. 이루지 못하면 결국 흙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에.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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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고. 사람의 도보는 어쩌면 일직선 아닌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이뤄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그 원동력은 어디서부터 우러나오는 걸까. 꿈을 이룬 뒤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그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맛보기 위해? 우리 삶의 깊은 원류, 개개의 사건이 아닌, 삶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그 알 수 없는 원동력을 위해? 그걸 눈 앞에서 보기 위해 그는 결국 자신이 갇혔었던 노예선, 서울로 돌아간다. 어쩌면 이것이 꿈을 찾고자 하는 소시민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도망치고 되돌아가고,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서라도 결국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놓치지 못하고 계속 붙잡는 모습.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꿈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수미상관, 도돌이표라는 또 다른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이 그들이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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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주인공은 원예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자신이 일궈낸 꽃들이 상품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폐기처분되자 이에 회의를 느껴서 공장을 나간다. 그리고 우연히 원예학에 능통한 임씨를 보고 경기도 시흥에서 원예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 울려퍼지는 커다란 집이 있었다. 꽃을 팔아서 집안 여식을 대학까지 보내게 해준 그 집 근처에서 그들은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꽃 농장을 일구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났을까, 주인공은 점점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시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목표가 사그러들었고, 매너리즘에 갇히기 시작했다. 그 즈음, 그는 알함브라가 울려퍼진 집의 여식으로부터 같이 도망가자는 제의를 받는다. 그러자, 그는 짐을 싼 뒤 그녀가 기다리겠다는 정류장 앞에 도착하지만, 막상 그녀와 같이 가려고 하질 않는다. 결국 그녀는 홀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타고, 그는 근처 주막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곧이어 그 역시 시흥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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