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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28. 2018

다시 만난 야채장

풍성한 야채 앞에서 들뜨는 4년 차 주부

1년 하고도 3개월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 동네로 올라오는 길, 조금은 텅 빈 전철이 좋았고,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은 듯 해 좋았고, 무엇보다 남편이 이 집을 참 마음에 들어했다. 부동산 중개사와 함께 아파트에 동행한 날, 남편은 무척 설렌 얼굴이었다.


“여보, 나 여기 좋아. 우리 여기 오자.”

“여기 말고 하나 더 봐 뒀던 그 집은?”

“난 여기가 좋은데.”


이 집과 다른 집 하나를 두고 반반쯤 고민을 무게를 재고 있던 나는 남편이 이 집을 이토록 선호하는 것을 운명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여보가 좋으면 나도 좋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계약금을 걸었다. 중도금 날짜에는 현금을 몽땅 쏟아부었다. 우리 이름의 집을 살 때 얼마나 많은 서류가 필요한지, 어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지, 거기 발생하는 비용은 우리 이름의 빚으로 남는다는 사실도 처음 겪어봤다. 그 과정에 때때로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발생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사 온 집은 지은 지 5년 된 아파트다. 새집증후군을 조심해야 할 남편에게 알맞았고, 평소 업무공간을 따로 갖고 싶었던 내게 드디어 서재가 생겼다. 넉넉한 사이즈의 침대를 넣고도 공간이 남았다. 수납공간이 부족해 오븐을 저 높은 곳에 넣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사 날 기분 좋았던 것은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덕담이었다.


“쪼그만 집에서 짐을 빼서 다시 쪼그만 집 가는 줄 알았는데 큰집으로 왔네!”

“젊은 사람들이 알뜰하구먼!”

듣기 좋으라고, 앞으로 더 잘 풀리라고 해주시는 말로 들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이사를 잘 마쳤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첫 신혼집 이사 때와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이사 오기 한 달쯤 전부터 나는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털이를 했다. 남은 기간은 주로 외식을 했다. 이삿짐센터에서 보관했던 식재료라고는 식용유와 유자차 정도가 다였다. 2년 전과 같이 속이 텅 빈 냉장고는 입을 벌리고 뭐라도 좀 넣어보라고 채근했다. 


당장 아침에 먹을 것도 없었다. 얼른 남편을 깨웠다.

“여보, 우리 먹을 게 없어.”

“어?”

“나가면 슈퍼가 있긴 한데 그런 것 말고…. 우리 야채 어디서 사?”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신혼집에서 겪은 야채 고민을 남편도 기억했던 것이다.

“그러게. 야채 어디서 사지?”


우리는 어제 사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빈속에 나와 아파트 단지 내 슈퍼를 찾았다. 간단히 우유와 아이스크림 등을 바구니에 담고 야채 코너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냉장실 안의 애호박 꼭지에는 하얀 곰팡이가 매달려 있었다. 시든 파뿌리는 이보다 더 늙을 수 없다고 외치고 있었다. 붉은 망 안쪽으로 엷은 보라색으로 물든 양파는 살짝만 눌러도 물컹하게 자욱이 남았다. 바구니에 담은 우유와 아이스크림만 얼른 계산해 집으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물론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긴 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장보기에 나쁘지 않은 거리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 신혼집도 마찬가지였다. 첫 신혼집에서도 대형마트는 내게 행복한 야채장을 선사하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풍성한 야채, 새벽까지 흙속에서 잠자다 끌려 나온듯한 신선한 야채를 구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신선한 야채를 사수하기 위한 탐사 프로젝트. 주 1회씩 집 주변 구역을 나눠 가까운 곳부터 탐사를 시작한다. 탐사에는 대형마트를 포함해 작은 가게까지 신선도와 가격대, 야채의 다양성을 비교한다. 거리가 좀 있더라도 배달이 된다면 괜찮다. 이사 온 곳이 도농복합지역이니 가능한 로컬 푸드를 파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퇴근 후 저녁시간, 주말을 이용해 산책을 겸한 탐사에 들어갔다. 야채가게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산책을 하면서 동네 주변을 알아가고, 맛있어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한 번씩 들러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탐사는 잠시 멈추고 일단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야채장을 탐사하는 시간만큼은 행성에서 생물의 발자취를 찾아내려던 우주 탐사팀 못지않게 치열했다. 몇 군데의 대형마트와 슈퍼를 탐사했다. 그나마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대형마트는 소포장된 과일이 많아 2인 가구인 우리에게 알맞았다. 다만 과일과 야채의 가격이 심각하게 비쌌다. 겨울철이라 더욱 그랬을지 모르지만, 어쩐지 첫 신혼집 동네의 대형마트와 체감온도가 판이했다.


다른 대형슈퍼도 찾아냈다. 마트보다는 조금 쌌지만 신선도가 몹시 떨어졌다. 포장봉투를 샅샅이 뒤져 원산지를 확인하면 대부분 중국산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토끼처럼 어금니를 굴려가며 야채를 씹는 즐거움, 이 도시에선 불가능한 것일까?




약 3개월간의 탐사를 하면서 우리는 거의 포기에 도달했다. 그때까지 좋은 야채장을 못 찾은 상태라 대형마트의 온라인 장보기를 주로 이용했다. 야채 몇 가지만 담아도 4만 원이 훌쩍 넘는 마트의 온라인 장보기는 편리하긴 했다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육류나 다른 제품과 맞먹는 야채의 가격은 주방에서의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야채를 거의 포기한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일산으로 외출을 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우리 집은 일산과 파주의 경계였다. 차를 타고 조금만 지나면 일산이라는 것, 일산에는 쇼핑가와 식당가가 즐비하다는 정보를 그쯤에야 알게 됐다.


나간 김에 식사를 하고 봄옷을 좀 사서 오자며 버스를 탔다. 집 앞에서 일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유통이라는 큰 간판을 만났다.

‘저게 뭘까. 도매업체인가….’


식자재, 야채 등의 글씨를 발견한 나는 남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보, 저기 좀 봐.”

남편도 창밖으로 그곳을 둘러본 뒤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다.

“저게 뭘까?”

다음 주말, 우리는 기억 속 그 간판을 찾아 걸어갔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다시 그 대형 간판을 만났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곳은 도매와 소매를 동시에 하는 대형마트였다. 나처럼 소량 구입을 원하는 소비자와 식당 등을 운영하며 식재료의 대량 구입을 원하는 소비자가 모두 이용하는 곳이었다.


너른 마당에는 쇼핑카트가 줄지어 서있었고, 즉석에서 튀겨 파는 찹쌀 도넛 노점도 있었다. 카트를 잡고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큰 마트였다. 오른편에는 ‘신선실’이라는 이름의 코너가 있었다. ‘신선’이라는 단어에 들뜨는 나란 사람, 이쯤 되면 야채 성애자다.


신선실에는 온갖 야채가 다양하게 진열돼 있었다. 어디서 밭떼기로 들여오는 건지 엄청난 양의 피망이 봉지에 담겨 있었는데, 천원도 되지 않았다. 또 대량으로 묶여있는 고구마와 나물 종류, 과일 등이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새 동네에서 만난 나의 야채!


카트에 이것저것 야채를 담고 있는데 구수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생선가스를 깜짝 세일한다는 방송을 했다. 세일을 알리는 목소리는 어딜 가나 이렇게 구성지고, 트로트에 어울릴 법한 가락을 타고 흐른다. 남편과 나는 카트를 끌고 깜짝 세일 코너로 가서 생선가스 한 팩을 수줍게 담았다.


막 시작한 신혼 시절, 길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야채가게를 찾던 나는 몇 년치 성장을 한 모양이었다. 조금 담담해졌고, 노하우가 생겼다. 그리고 풍성한 야채 앞에서는 너무나 들뜨고 기분이 좋은 4년 차 주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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