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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05. 2018

타인의 외도

타인의 외도는 쉽고 가볍지만은 않다.

“있잖아. 실은 내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선배에게 그 말을 듣자마자 몹시 난감해졌다. 결혼한 친구들과 대화중에 흔히 나오던 이야기지만, 조금 먼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던 외도. 그것을 직접 행하고 있는 사람의 고백이라니.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깜깜했다. 아무 말 없이 통화를 이어갈 수 없어 아무 말이나 꺼냈다.

“아, 네….”


지금 생각해도 무슨 대답이 저런가 싶다. 외도를 고백한 사람에게 ‘네’라니. 그렇다고 내가 화를 내거나 훈계할 입장도 아니니 지금 생각해도 뾰족한 답이 없는 건 다르지 않다.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는 내게 선배는 안도하는 눈치였다.

“너는 역시 별 말 안 하네. 역시 너한테는 털어놔도 될 것 같았어.”

이게 무슨 전개인가, 알딸딸했다. 선배는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내가 나이 어린 여자보다 많은 여자 좋아한다는 거. 상대가 나보다 열 살이 넘게 많아. 난 그 여자가 너무 좋거든. 그런데 헤어지재. 남편이 외국에 주재원으로 있었는데 이번에 들어온다고.”


외도라는 게 상대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좋게 끄덕끄덕할 소재는 아닌데, 선배는 내게 너무 허심탄회했다.

“그런데 나는 헤어지기 싫거든. 남편이 들어와도 만나는 건 만날 수 있는 거잖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 나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나는 혼인으로 엮여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결혼과 혼인신고란 사랑을 기반으로 그 가정을 온전히 지켜내야 하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선배의 그런 솔직함에 시원한 답을 줄 리 만무했다.


“아니, 그게. 상대가 만나기 싫다면 존중도 할 줄 알아야죠.”

고작 한 말은 이 정도였다. 선배의 외도 상대를 존중하라는 이상한 연애코치 같은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아, 나는 진짜 미칠 것 같은데. 여자들은 원래 이렇게 칼같이 자르는 게 되니?”


그런 건 선배 아내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상대가 이제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가 보죠. 그게 아니면 선배는 지금 그 상대한테 가정은 나 몰라라 하고 선배한테만 잘 하라고 떼쓰는 것 밖에 더 돼요?”

“그렇긴 한데, 난 앞으로도 자신 있단 말이야.”

“무슨 자신이요?”

“안 걸리고 만날 자신!”


이게 무슨 말이람. 전화를 끊고 싶은데 그간 쌓아온 선배에 대한 신뢰와 시간의 움막이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에 무너질 것 같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선배, 내가 해줄 말은 솔직히 별로 없어요. 그래도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선배 와이프한테 걸리지 마. 걸리면 와이프 너무 화날 거예요. 진짜 못 참을 거야.”

“안 걸릴 수 있다니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 사람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건데….”




정말 답이 없었다. 얼토당토않는 연애상담을 하고 나니 기운이 쪽 빠졌다. 결국 시원한 결말 없는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주방으로 나가 찬 물을 꺼내 마셨다. 대체 어쩌자고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토로한 걸까. 내가 무슨 답이 된다고.


그리고 슬그머니 화도 났다. 어디 가서 시원하게 터놓지 못할 그런 고민을 내게 털어놓은 선배는 정작 속이 시원할 테니 말이다.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고민을 들어버린 나는 귀가 쟁쟁했다. 나까지 공범이 된 것 같아 가슴속이 탁해졌다.


선배의 아내는 눈웃음이 예쁘고 동글동글한 얼굴이 선량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재력을 가진 부모의 딸로 자랐고, 그 부모는 금전적으로 부족한 선배 부부의 울타리를 만들어줬다.


아침이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선배를 출근시키고,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문화센터에서 소소한 무언가를 배우고는 어린이집을 마친 아이를 집에 데려와 씻기고 간식을 먹이는 평범한 주부였다. 내가 아는 한 다정한 아내였다.

나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선배의 죄책감을 나눠가진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선배의 아내를 마주치면 괜히 내가 미안해질 것만 같았다. 잘못된 고민상담은 그렇게 무게를 나눠 갖게 된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그 뒤로도 선배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나는 그때마다 모른 척을 했다. 그 일의 뒷이야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앞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누구하고든 나눠도 문제가 되지 않을 이야기나 두런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타인의 외도는 그리 쉽고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일 년쯤 지났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니 나는 선배의 외도에 대한 감각도, 선배 아내에 대한 묘한 죄책감도 다소 줄었다. 애초에 타인의 외도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렇게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내겐 좋았다. 그러다 뜬금없는 선배의 연락이 왔다.


“너 요즘 내 SNS 불편하지 않니?”

“음? 그게 왜요?”

“아, 그게 말이야. 내 SNS에 올리는 글들이랑 사진이 다 그 사람에게 쓰는 거거든. 네가 불편할까 봐. 너는 눈치채고 있었지?”

갑자기 일 년 전 대책 없던 그 대화가 떠올랐다.


“아, 솔직히 그분한테 쓰는 건지도 몰랐고. 그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아니, 그래도 네가 나의 그런 외도에 대해 불편해하고, 또 그 계정을 보면서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요. 끊을까요?”

“꼭 그렇다기보다는….”

“아, 그까짓 거. 언팔하면 되잖아요!


그동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타인의 외도를 모른 척, 어쩌면 가식적이게도 쿨한 척하던 나는 이날 폭발하고 말았다.

“SNS 그게 뭐 대수라고. 선배, 우리 그 이야기 좀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냉정하게 말하고 나니 선배는 네가 그리 말하면 서글프다며 말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타인의 외도라는 게 또 다른 타인에게 전가하는 무거움, 그 께름칙함을 나는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생활을 고요히 유지하고 있는 내게 달가울 수 없는 소재임이 분명했다.


선배와의 대화를 마치고 즉시 SNS에 들어가 선배와의 팔로우를 끊었다. 마음 한 구석에 매달려 있던 무언가가 톡, 소리를 내고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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