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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16. 2018

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코끼리의 마음, 을 읽었습니다.

나는 어른을 위한 동화안 읽는 편이었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작년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즐겨보기 시작하면서 이런 동화 종류의 책도 조금씩 보게 됐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작가의 이름이다 싶어 보니 지난번 '고슴도치의 소원'의 톤 텔레헨이다.

띠지에 쓰여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어'라는 말이 이 책이 가장 말하려는 것, 그리고 가장 어려운 거라고 느끼며, 오늘도 책에서 좋았던 부분을 메모해 본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물맴이가 다시는, 앞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정말 다시는 아무것도 쓰지 않게 될까? 다시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면, 아프다고도 쓰지 않는다면, 정말 다시는 아프지 않을까? 그리고 물맴이도 나처럼 이런 모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까? 19p.


이 부분을 읽는데 픽 웃음이 났다. 언젠가 내가 연애를 끝내고 괴로워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연애를 쉬라'고 했다.

넌 연애를 좀 쉬어야 돼, 또 상처받을 수 있으니 연애를 당분간 하지 마 등등의 말들이었다.


이게 얼핏 보면 나를 걱정하는 말이긴 한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를 방해하는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며 한 번도 공감할 수 없었다.

연애라는 게 내가 "아, 이제 쉽시다!"하면 끝내는 것도 아니고

생각지 못하게 이어지는 인연인데, 그걸 어떻게 인위적으로 쉬고 거부할 수 있을까?

'난 이제 연애를 쉬어야 하니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거부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또 그것만큼 바보스러운 게 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당연히 아프고, 시간이 지나면 또 괜찮아진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연애를 안 하면 아플 일도 없고, 헤어질 일도 없고, 슬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코끼리가 생각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건 덜 아프기 위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아픔은 존재하는 것 중 가장 평범해.
거의 모든 것이 평범해.
잠에서 깨는 것,
일어나는 것, 태양, 종달새,
나무 진액 향기, 발아래 뚝 부러진 나뭇가지,
하늘의 푸름까지도.
준비하는 것도, 숙고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다 평범해.
엄숙하고 진지한 계획 세우기도 있지.
그 계획은 평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것은 아니야.
계획 세우기를 싫어하는 것도 평범하고,
그건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평범하지.
가장 평범한 것은 아픔이고,
아픔은 존재하는 것 중 가장 평범하며,
아픔은 곳곳에 있어. 191p.


후반의 잠 옷 이룬 밤에 코끼리가 끄적거린 일기는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직설적인 부분이다.


매일 다치고 아우! 소리를 하는 코끼리는

살이 까지고 갈비뼈가 부러져가면서도 나무에 오르려 한다.

나무에 오르면 무엇을 얻느냐고 생각한다면

나무에 오르는 그 자체를 얻기 위함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할 만한 결론이지만

코끼리는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면서

아픔을 진지하게 배우고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배운다.


평범한 삶이 싫고, 지금의 생활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코끼리를 따라 나무에 올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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