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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Feb 21. 2018

나도 괴로웠어 #MeToo

힘겹게 미투를 적었던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며칠 전 연로한 연극연출가가 과거 성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공개사과를 했다. 회색 머리에 지긋한 나이의 그는 명백한 과거를 갖게 된 셈이다. ‘미투 열풍’의 한 줄기에 매듭이 완성되는 걸까. 사과라도 해서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계속되는 폭로에 다시 씁쓸함이 밀려왔다.


과거 성폭력 사례를 고백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법조계, 문학계 등 부문에서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졌다. 대중 앞에 나설 기회를 조금 더 부여받은 부문에서 이런 고백과 고발을 실천하는 분들께는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표하고 싶다.


굳이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이유는 그런 직군 외에도 많은 곳에서 성폭력이 계속될 것 같아서다. 그러니 이런 시작과 용기가 귀중할 수밖에 없다.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는 위치의 피해자들이 먼저 용기를 내주면, 그다음은 또 예상치 못했던 누군가의 고백과 고발이 이어지면서 웅크린 피해자들에게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어느 직군이든 사각지대가 있게 마련이니까.


무엇하나 중요치 않은 직군, 억울하지 않은 피해자는 없겠지만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흔히 ‘직장인’이라 일컫는 기업 소속의 ‘회사원들’에게 빈번히 벌어지는 성폭력이 수면 위로 오르는 것이다. 지금 어느 극단의 누구, 법조계 어느 조직의 누가 거론되듯 어느 기업의 ‘누구’를 고발하는 미투가 시작되면 엄청난 사례가 쏟아질 테니 말이다.


내가 경험한 폭력의 사례도 기업에서 벌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D회사에 취업한 적 있다. 정확히는 졸업 후 첫 직장인데, 나는 이곳을 첫 직장이라 생각하거나 추억한 적이 없다. 그저 찝찝한 어느 회사, 어느 사무실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오히려 내가 첫 직장으로 추억하고 가끔 글에 등장시켰던 회사는 D를 퇴사한 다음 입사한 S 회사다.


어쨌든 D회사는 건설, 철강 부문에서 잘 알려진 기업이었다. 직원 수가 천 명이 넘었으니 결코 작은 규모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적성에 맞지 않게도 그 회사의 재경 관련 부서에 입사했다. 첫날부터 무릎길이 스커트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게 불편했지만, 규모가 크고 여러 가지 복지조건이 괜찮았던 그 회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 나와 함께 입사한 같은 부서의 신입직원들과 교육을 받았다. 부서장이었던 Y부장이 회의실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신입직원을 앉혀놓고 회사의 연혁에 대해 설명했다. Y부장의 설명 중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러니까 0000년도에 우리 회사 발기인대회에서 설립이 시작한 건데. 발기인 말이야. 다들 알지? 건강한 남자라면 되는 거. 다들 알잖아?”


교육을 듣던 신입직원 중 나를 빼고 나머지 두 명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처음에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나만 웃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니, 다시 Y부장이 나를 훑어보며 불쾌한 말을 이었다.

“꼭 이럴 때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심각한 애들 있다니까.”


뭔지 잘 몰라도 불쾌감이 엄습했다. 교육을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왔다. 함께 교육을 들었던 신입직원 중 한 명은 나보다 한 살 아래 여자동생이었다. 동생을 붙잡고 물어봤다.

“그런데 아까 그거 무슨 소리야? 왜 나만 빼고 다 웃은 거야?”

“아, 언니 그게 그 뜻이잖아요.”


동생의 설명을 듣고 나니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그러니까 내가 저 안에서 지금 성희롱을 당하고 나온 거구나.’하고 결론이 났다. 부들거리며 자리에 와서 앉았는데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함께 교육을 들었던 동기들을 쳐다봤다. 내게 그 단어를 설명해준 동생은 생글생글 웃으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평소와 똑같이 PC를 보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다.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언가 시원하게 해결하기에 나는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시간을 보내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유니폼을 갈아입다가 같은 부서에 몇 년 먼저 입사한 선배에게 잠시 면담 요청을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선배에게 회의실에서 있던 이야기를 했다. 선배는 웃으며 손 사레를 쳤다.

“그 인간 원래 그래. 그냥 넘겨.”

“네? 그냥 넘겨요?”

“네가 안 넘기면 어쩔 건데? 그냥 무시해. 무시하고 니 일이나 잘 해.”


그 일 이후로 나는 Y부장의 얼굴을 보는 게 끔찍했다. 그런 내게 부서 사람들은 예민하다, 까칠하다고 핀잔을 줬다. Y부장은 자리에 앉아있는 여직원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PC로 업무 중인 여직원의 뒤에서 껴안듯 마우스를 잡고 가르쳐주는 시늉을 하는 둥 추잡한 행동도 했다. 그럼에도 다들 ‘원래 저러니까’하고 넘겨버렸다. 하지만 나는 Y부장의 손길이 언젠가 내게도 미칠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공포였다.


결국 나는 그 회사를 몇 개월 다니지 못하고 나왔다. 구렁이처럼 능글거리는 Y부장, 그의 성희롱을 방치하는 직원들, 여직원에게 당연하게 주문하는 커피와 설거지 심부름, 불만을 토로하는 내게 ‘까칠하다’고 붙어버린 꼬리표. 그 불쾌한 몇 개월간의 기억을 나는 이력서에 넣지도 않는다.


D회사를 다닐 때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더러운 Y부장의 언변을 들었던 귀를 씻고 싶었다. 다른 여직원들의 머리카락과 손을 더듬던 추태를 목격한 내 눈도 씻고 싶었다. 아직 D회사에 다니는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Y부장은 여전히 그 회사에서 승진하면서 잘 지내고, 징그러운 행동도 여전하다고 들었다. 고발당하지 않은 이들은 그렇게 잘 먹고 잘도 산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법조계와 문학계에서 촉발된 미투 운동이 보통의 회사원들에게도 널리 퍼졌으면 한다. 물론 한 사무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고백과 고발은 버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법조계, 문단, 연극계의 미투 열풍은 그 직군이 특별해서 부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 남자와 여자가 섞여 일할 만한 직군이라면 어디든 이 열풍은 불어야 한다. 인구밀도로 따져 봐도 일반 기업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의 횟수가 훨씬 많지 않겠는가.


피해사례가 월등히 많은 여성들의 문제 못지않게 남성들의 피해 고발도 한 번쯤 나왔으면 한다. 미투 운동이 오로지 여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은 못 들어봤다. 여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남성은 수치스럽다며 고발도, 주위에 호소도 잘 못한다는데 그 스트레스는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또 남성이 남성으로부터 듣는 성희롱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의 경우 과거 상사가 여직원들에게 ‘여자는 집에서 애나 봐라.’, ‘남자 잘 만나라,’ 등의 망언을 했다는데, 옆에서 그것을 듣는 것이 꽤나 고통이었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 상사가 동의까지 구하면 고통은 배가 된다. 남성에게도 성희롱은 충격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연극연출가의 사과를 보며 나는 잊고 싶었지만 잊혀지지 않고, 그래서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던 소재의 글을 오늘 쓰고 말았다. 미투 열풍에 동참하기엔 소심한 시도이고, 피해상황이 크지 않 보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늘 내가 키보드를 두드린 목적은 힘겹게 미투를 적었던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치는 것. 그리고 아직 고백하지 못한 누군가에게 도움닫기가 되길 바라서이다. 이 올바른 미풍이 쉼 없이 불어 세상이 조금이나마 깨끗해지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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