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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15. 2018

평범한 게 어려워서

그저 잔잔하기만 해도 행복한 것

환경이 열악했던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해야 했던 대학시절. 내가 입버릇처럼 말한 소망이 있다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였다. 내가 사는 모습이 혀를 끌끌 차도록 불행했다기보다는 타인의 삶이 안락해 보였던 걸까.


부모님이 내주시는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아르바이트로는 자신의 여행비용이나 부족한 용돈 충당 정도를 하는 삶. 학교 준비물이나 과제에 필요한 돈을 부모님께 오래도록 부탁해 겨우 받아내는 게 아니라 매우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 나는 그런 환경이 굉장히 부러웠고, 그것은 어이없게도 남들에게는 ‘평범한’ 환경이었다.


이런 것을 부러워하는 내게 친구들은 늘 물음표를 보여줬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부모님께 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친구들 사이에서 걱정 투성이인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집안 환경이며 경제 사정이며 구구절절 말하기 싫어서 설명하지 않았던 내 대학시절은 몹시 바빴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카페, 호프집,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간 단위로 쪼개 일정을 소화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조금이나마 더 벌고 싶어 집에 돌아오면 열쇠고리를 조립하는 부업도 했다. 졸업 전 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새벽까지 호프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마치면 바로 토익 새벽반으로 향하던 내게 친구들은 속도 모르고 “돈 욕심이 많다.”라고 놀렸다. 그렇지만 내겐 간절했다. 친구들의 평범함이, 그 당연함이.


제일 괴로웠던 건 아파도 병원에 마음껏 다닐 수 없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벌어 학비와 용돈을 만들고, 집에 생활비까지 내야 했던 고학생에게 병원은 사치였다. 아파도 적당히 넘겨야 했다. 아프면 안 되다고 늘 긴장하고 살았다.


한 번은 이런 내 몸에 과로가 겹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반년쯤 통원치료가 필요한 때가 있었다. 2주마다 병원에 방문해 피검사를 하고, 수치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약을 받아야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어찌나 살이 떨리던지. 주사가 팔을 찌르는 건 아픈 게 아니라 피로였다.


내가 이 병원에 오기 위해 얼마의 시간을 버리고, 얼마나 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지 초조하게 계산했다.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은 아프면 응급실도 가고, 병원도 가고, 가족들의 간병도 받는다고 했다.


언젠가 과 동기가 “어젯밤 장염으로 너무 아파서 응급실 다녀왔다.”라고 토로할 때 나는 혼자 속으로 삭였다. ‘나는 응급실 비용이 비싸서 아프면 죽기 살기로 버티다가 아침에 병원 가는데. 좋겠다.

나는 오롯이 혼자 아팠다. 각자 힘들고 바쁜 가족들에게 나는 응석을 부릴 수 없었다.

늘 그렇게 쫓기듯 살아서인지 나는 “평범한 게 제일 어렵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평범한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사람마다 다른 잣대를 갖고 있는 그 평범. 마음을 고르게 먹을 때 쓰는 ‘평’이라는 글자에 입술을 꼭 붙여 마무리하는 ‘범’이라는 글자가 만나, 세상 무엇보다 어려운 그 가치를 만든다.


사람을 소개할 때 우리는 흔히 ‘평범하다’고 표현한다. 평범함이 소망이었던 지라 나는 이 말을 사람에게 쉽게 붙이지 못한다. 지인이나 친구를 소개할 때 “평범하다”라고 소개하는 게 부담이고, 한 구석이 아프게 찔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평범해지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면 그 어휘 하나를 쓰는데 무게가 실린다.


졸업하고도 생활이 곧장 펴지는 건 아니었다. 취업만 하면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환경은 나의 어려운 소속을 분명히 알려줬다. 집에는 여러 차례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고, 나는 그때마다 적금을 해약했다.


취업해서 월급쟁이로 살다 보면 목돈을 모으고, 결혼할 밑천 마련하고, 하다못해 가게라도 하나 차려 편히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평범은 여전히 소망이었다. 이쯤 되면 평범이 어려운 건지, 가난이 어려운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제 서른여섯이 되고 나니 대출받아 산 우리 집이 있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살고, 낡은 옷은 망설이지 않고 버릴 수 있다. 그중 제일 좋은 건 아프면 참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아프기 전 예방도 하고 검사도 받아가며 몸을 챙길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나도 평범한 삶의 궤적에 발을 들인 건가? 마음 편히 병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벌기도 하지만 남편이 함께 벌기 때문에 이렇게나마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평범하게 살아 부러웠던 타인의 삶을 내가 이제야 살고 있다. 내가 원하던 평범이 이런 거였다니. 소소한 꿈이었구나, 싶다가도 지난했던 과거가 떠오르면 온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어제는 저녁에 차를 마시던 중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평범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애쓰는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 노력처럼 말하는 어른들이 싫어.”

그 말에서 나와 다른 의미로 남편도 평범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고 느꼈다. 즐겁지만은 않은 회사생활, 편치 않은 정장 차림의 일상, 웃으면서 야근하라는 상사의 억지,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


내가 가난에서 평범을 찾고 있었다면 남편은 자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평범을 찾고 있을 것이다. ‘나 젊을 때는 노력하면 성공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우리 때처럼 노력하지 않는다.’며 훈계하는 어른들에게 남편은 지금 시대에서 평범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평범’이 ‘평화’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퍼지는 물결에 물고기가 놀라고 새가 날아가듯, 평범은 그저 잔잔하기만 해도 행복한 것. 이십 대 후반까지 이어진 고난과 피로가 떠받쳐주는 지금의 평범한 삶.


나는 이것을 꼭 지키고 싶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으므로 밀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30대의 평범한 삶에서 다시 40대의 평범한 삶으로 건너가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하게 사는 건 멈출 수 없고, 결코 쉬울 수 없다. 또 나와 다른 목적의 평범을 추구하는 남편에게 그늘이 돼줘야 하는 것도 나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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