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박물관 기행, 을 읽고 있습니다.
남편이 빌려온 책인데 재밌어 보여서 내가 먼저 읽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관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 여행을 할 때 일정에 별 문제가 없으면 인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한 번씩 들르는 편이다.
박물관은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한다. 회사에서 전철로 조금만 이동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 나를 만나기 전 남편은 박물관이 늦게까지 개장하는 수요일이면 퇴근 후 들러 반가사유상을 보며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했다나.
내게 박물관은 찌는듯한 여름날 눌러앉아 관람을 하며 쉬는 곳, 미술관은 내 눈에 흠뻑 아름다움을 얹어주는 곳.
여하튼 우리 부부에게 박물관은 그렇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시각으로 박물관을 말하고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 활동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통과의례'의 과정은 어느 누구나 동일하지만, 그 방식은 문화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요즘 우리 생활에서 전통문화와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우리 민속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과 관련된 이런 통과의례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통과의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거나 답답해지는 것은 왜일까? 생각해 보면 버클리 유학시절 스승님이 들려주시던 이야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일장춘몽인데 젊을 때는 그걸 모른단 말이지. 아까 학교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키스를 그렇게 길게 하는데 그걸 보고 내가 눈물이 막 났어. 두 사람이 저렇게 좋아하지만, 황홀한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니 말이야."
지나간 인생을 다시 살 수는 없지만, 이런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인생을 훨씬 아름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 18p.
이 부분을 읽으며 혼자 오-하고 감탄했다.
지나간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이렇게 유물과 형태로 남아 기억되거나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계단에 쌓여 있는 수십 개의 다듬잇돌이 눈길을 끈다. 이 다듬잇돌은 언뜻 크기와 모양이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모아 진열해 놓고 보니 아래쪽 모양과 문양이 제각각이고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48p.
책 중에 전국 유일의 종가 박물관이라는 충현박물관에 대해서도 나온다. 반가운 단락이었다.
충현박물관(나는 박물관이라기보다 이원익 생가로 기억)은 첫 신혼집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나오는 곳인데, 처음에 버스를 잘못 내려 엄한 곳에 갔던 기억이 난다.
충현박물관에 들어서는 계단에는 큼직한 수국이 피어있고, 계단을 따라 각양각색의 다듬잇돌이 놓여있었다. 그 장소를 참 좋아했는데, 이 책에서도 그 다듬잇돌에 대해 설명이 나온다. 반갑고 아련했다. 연고도 없이 회사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택했던 신혼집이 광명시에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그곳을 이토록 아련하게 기억할 줄은 몰랐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고미술 작품에 관한 책을 보다가 너무 궁금하고 실물을 보고 싶은 나머지
바로 다음날 중앙박물관으로 향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궁금했던 작품들은 대부분 보관실에 있었다. 오래된 작품은 마냥 전시를 할 체력이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습도, 온도, 조도를 제어해도 세월의 훼손을 막을 순 없다.
그럼에도 그날이 허탈하지 않았던 이유는 박물관에 상주해 있던 직원분이 내가 궁금했던 작품과 현재 전시 중인 작품에 대해 정말 자세히 설명해주셨기 때문이다.
느낌상 그분이 큐레이터, 전시기획자 같지는 않았지만 그 친절함, 자신이 속한 곳의 작품에 대한 깊은 지식에 감동받았다.
박물관의 직원으로 일한다는 것,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런 관점을 상기시키는 데에도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