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최훈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를 읽었습니다.

by 귀리밥

내가 이 책을 빌렸을 때, 남편은 앞으로 내가 채식만 차릴 것을 걱정하고 슬퍼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고기를 확 끊을 정도로 의지가 강하지 못한 나는 남편의 우려와 달리 고기 섞은 식단을 잘 차려내고 있다.


다만 읽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마냥 채식하고, 그저 채식이 좋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왜 채식을 해야 하는지, 내가 놓치고 있던 채식의 윤리적 이면에 대해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채식은 자유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에 조금 위험한 부분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식생활에 예민하다. 종교적 이유로 음식을 가리고, 가치관에 따라 특정 음식을 먹는 이들을 비판한다.


나의 자유의사에 의해 내 입 안에 무엇을 집어넣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요,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입에 무엇을 넣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때는 옳고 그름의 문제 즉 윤리가 개입된다. 79.p


채식을 하는 저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타인이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먹는 식생활이 타인, 타자에게 혹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 없이 사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내가 먹는 식재료의 원산지와 유통기한은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왜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떤 경로를 통해 도살되고, 어떤 길을 따라 유통됐는지 관심을 갖지 않을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육식은 대체적으로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한 줄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예제와 구조적 논리를 사용한 설명이 있다. 예를 들어, 갓난아기와 지적장애인은 의사표현을 거의 못 하고 고통을 느끼는지 여부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갓난아기와 지적장애인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통을 느끼는지 공감하기 어렵고 의사표현이 되지 않는 동물은 잡아먹어도 되는 걸까? 이런 방식으로 저자의 논리가 한 걸음씩 뻗어나간다.

이 모든 본성에 우선하여 동물들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본성이 있다. 그것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는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동물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자주 먹는 소, 돼지, 닭, 물고기 등의 동물들은 고통을 주면 싫어하고 그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동물이 고통을 주는데 무덤덤하게 있거나 그 고통을 즐기겠는가? 따라서 사람에게는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되지만 동물에게는 고통을 줘도 된다는 종차별주의적 관행은 옳지 못하다. 105p


다시 말해 저자가 말하는 채식의 윤리적 이면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여부, 사육환경, 육식이 야기하는 폐해, 동물의 수명 결정 등이다. 단순하게 '둥물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윤리를 추구하면서 식사의 잇속 앞에서는 스스로에게 관대 해지는 인간의 못난 부분을 꼬집는 것이다.


나는 하루에 한 끼에서 두 끼 정도는 채식을 한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건강 때문이었기 때문에 윤리적인 면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며칠에 걸쳐 이 책을 읽고 나니 이타적인 사회활동을 통해 진보적으로 살고 싶었던 내가 사실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이었나 곱씹게 됐다.


완전히 고기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채식의 비중을 늘리고 육식을 줄여가면서 조금이나마 윤리적인 인간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 저녁은 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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