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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28. 2018

결혼 후 성실히 불린 것

어머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무거워졌네

결혼 후 달라진 것, 혹은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며 달라진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체형이다. 결혼 전에는 무슨 옷을 입든 자신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 있게 입을 옷이 결코 없다. 결혼 후 지금까지 총 6kg이 쪘다. 그것도 단번에 찌는 게 아니라 아주 서서히, 살이 찐다는 감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늘었다. 반년마다 500그램쯤 늘었다고 할까. 정말이지 내 몸은 아주 성실하게 살을 찌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대식가라거나 간식을 입에 달고 산다거나, 결혼 후 야식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다. 간식을 먹느니 하루 세 번 밥을 잘 챙겨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기름기 있는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식성에 은근한 변화가 있었다. 남편이 과자회사에 다니는데 어쩌다 가져온 과자 한 봉지도 혼자 먹으려면 여러 차례 나눠 먹어야 하는 처지라 주변 사람들과 나눠먹곤 한다.


밥을 짜고 기름지게 먹나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예전에도 적은 바 있는데 나는 아침은 보통 과일을 먹고 점심은 채식, 저녁은 남편과 든든히 먹는다. 짠 음식을 잘 못 먹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저염식이다. 대신 밤에 든든히 먹지 않으면 잠들기 전 허기가 지므로 저녁은 밥 한 공기를 다 비운다.


운동 안 하고 퍼져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루에 유산소 운동 40분에 근력운동 10분을 꼬박 한다. 주말을 제외하곤 평일엔 늘 하는 운동이라 근육량을 측정하면 늘 괜찮은 수치가 나왔다. 평소 차 타는 것을 안 좋아하니 적당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이런 내가 왜 서서히 살이 찐 걸까. 가끔 들여다보는 웨딩사진 속 내 팔뚝이 어찌나 여리한지 모른다. 다리도 늘씬하다. 턱부터 목덜미의 각도 나쁘지 않다. 생각해보면 나는 결혼 전 늘 저체중이었다. 건강검진을 받거나 체중을 재야 하는 자리에서 부끄러움 없이 체중계에 쑥 올라갈 정도로 날씬했다. 결혼을 앞두고 별도의 다이어트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하루 한 끼 채식도 하지 않았고, 주말이면 끝없이 들어갈 것 같은 위장에 술을 부었고, 버터가 잔뜩 들어간 빵도 서슴지 않고 먹었건만. 잠시 살이 좀 찐 듯 느껴지면 하루 한 끼 정도 과일을 먹고 삼십 분쯤 걸어 다니는 것을 며칠 하면 몇 킬로는 빠지곤 했다.


그랬던 내 몸이 태도를 바꿨다. 먹는 족족 토실하게 살을 붙이고, 늘씬했던 다리는 튼실하게 만들고 말았다. 지난여름휴가 때 찍은 사진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깨 아래로 둥글고 굵직한 팔뚝이 내 것이 맞는지, 태어나 처음 본 두툼하고 못난 팔뚝이 아닌가!

하루 섭취하는 칼로리가 높지 않고 운동도 하고 있음에도 살이 찌고 있으니 어쩌면 내 몸은 ‘구제불능’ 상태가 싶다. 통통해진 배를 보며 마치 남의 배 대하듯 말을 건네 본다.

“넌 대체 어디에서 왔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 후 살이 찐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결혼 후 9㎏이 불었다. 결혼 전 불규칙한 식습관을 가졌던 남편이 나와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서 1년 사이에 급격히 살이 찐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살이 쪄도 어쩐지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 다녔다.

“부인이 잘해주나 봐.”

“남자는 결혼하고 살이 좀 쪄야 장가 잘 갔다는 소리 듣지.”

“남자가 결혼하고 살 빠지면 여자가 욕먹는 거야.”


결혼해서 똑같이 살이 쪘는데 남편은 삶이 편안한 결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살이 찐 내게는 아무도 “남편이 잘해주나 봐.”, “여자는 결혼하고 살이 좀 쪄야 시집 잘 갔다는 소리 듣지.” 등의 말이 없다. 오히려 “여자는 결혼해도 관리해야 한다.”는 타박만 받는다. 나와 남편 둘 다 살쪘는데, 나만 찐 것 아닌데. 왜 내게는 좋으냐고 아무도 안 물어보는 걸까?


여하튼 살이 찐 우리 부부는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살이 쪘어도 정상체중이라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남편은 건강검진에서 비만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대사증후군 위험군이라는 결과서까지 나오고 나니 아차, 싶었다.


이후 남편은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운동을 했다. 저렇게 운동하다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밥도 평소의 절반 정도로 먹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함께 식사하는 동료들이 내 남편에게 “걸그룹 식사하냐.” 놀렸다고도 한다.


고생 끝에 남편에게는 낙이 왔다. 불어난 9kg 중 7kg이 빠졌다.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2kg는 더 빼야 하지만, 살 빠진 남편은 예전보다 피로를 덜 느끼고 혈색도 좋아졌다.


편이 살을 뺐으니 이제 과제는 나뿐인가. 운동도 하고, 음식도 줄여보고, 맥주 마시는 횟수도 줄였건만 빠지지 않는 내 몸뚱이가 솔직히 미워 죽을 지경이다. 한번 마음 내키는 대로 과식을 하면 1~2㎏은 금세 늘어나는 주제에, 운동량을 늘리고 식단을 바꿔 봐도 어쩜 그렇게 1도 안 빠지는지. 살찐 내 몸이 미워서 마구 꼬집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위안을 얻은 적 있다. 가쿠타 미스요의 수필집인 <무심하게 산다>에서였다. 내용은 이러하다.

30대도 중반을 지나자 체중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 부동의 상태에 딱 들어섰다. 몇 해 전쯤에는 밤을 꼬박 새우거나 한 끼를 거르기만 해도 1~2킬로그램은 금세 빠졌는데, 이제는 단호하게 줄지 않았다. 감기로 이틀을 앓아누우면 그때는 눈곱만큼 빠지지만 완쾌하면 바로 다시 원상태로 복귀했다. 이 정확성에 놀랄 지경이었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 책을 읽고 있었는데 너무나 공감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 완전 내 이야기 아냐?’하고 “어머나, 어머나.”하고 연달아 감탄했다. 나이를 먹으며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그토록 쉬우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줄지 않는 체중이 원망스러운 심정은 내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나만 이런 건 아니야. 다들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살이 찌긴 하나 봐. 게다가 나는 아직 정상체중 범위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금세 ‘정상체중 이래 봤자 몸이 예쁜 건 아니잖아! 6kg이나 늘었으면서!’하고 또다시 자책하고 죄 없는 뱃살을 꼬집는다.


몸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영혼이 아름다우면 그릇의 생김이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 그릇이 보다 날렵하고 예뻤으면 좋겠다. 영혼이 예쁜데 그릇까지 예쁘면 얼마나 좋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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