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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04. 2018

우리 집은 일곱 살

일곱 살 먹은 집의 뒷바라지

어제는 욕실 중 한쪽의 변기를 교체했다. 얼마 전 변기 옆구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금이 늘었다. 여기로 물이라도 새면 끔찍할 것 같아서 일이 커지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직면하면 일단 검색부터 하듯, 나 역시 검색부터 했다. 포털 사이트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나 싶다.


검색과 몇 번의 통화를 거쳐 설비기사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어제 하얗고 반듯한 변기가 우리 집 욕실에 사뿐히 앉았다. 이 과정에서 고생한 사람이야 욕실 설비기사지만, 나는 뭔가 해낸 것 마냥 뿌듯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들이라 그런 것일까?


올해로 우리 집은 지어진 지 7년째다. 5년째에 내가 이사 왔고, 2년째 살고 있다. 갓 지은 집이 아니고, 내가 들어오기 전 세입자가 살았더래서 집의 일부가 살짝 닳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은 조금씩 집을 손봐야 하고, 처음 겪는 일이 많다.


욕실 변기도 그랬다. 처음 금이 간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검색부터 했고, 남편은 실리콘을 바르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언젠가 남편은 베란다 배수관 작은 틈을 실리콘으로 메운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실리콘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리콘 주장에 나도 잠시 흔들렸다.

“실리콘으로 붙을까?”

“글쎄, 안 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우리가 망설이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변기는 미세한 금을 굵직하게 넓혔고, 없던 금도 만들어냈다. 검색한 바로는 물이 새지만 않는다면 괜찮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결코 물이 새는 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변기를 교체하기로 하고 업체들을 알아보고, 견적을 비교한 뒤 설비기사와 약속을 잡은 것이다.


변기를 살펴보다 알게 된 문제가 또 있었는데 샤워부스 쪽 배수구 안 부속물이 부서진 것이다. 7년을 살아온 집이니 부속물이나 소모품이 생명을 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그것을 발견했을 때도 우리는 어디 물어볼 데도 없이 검색부터 시작했다.


신기한 건 매우 일상적인 일들인데 결혼 전에는 왜 한 번도 겪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분명 결혼하기 전 살던 친정집에서도 변기를 교체하고, 배수구의 소모품을 교체하고 집안의 온갖 것들이 신호를 보냈을 텐데 나는 왜 한 번도 몰랐던 걸까? 너무나 당연하게 엄마의 몫으로 생각하고 무심했던 것들이 이제야 내 일상으로 불쑥 찾아온 걸까?


하지만 도리가 없다. 내가 사는 곳이고, 대충 떠넘길 사람은 없다. 무턱대고 남편에게 의존하는 것도 마뜩잖다.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거친 일을 맡아야 하고, 공구를 손에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남편이든 나든 형편껏 일을 해내야 한다.


그렇게 해낸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특히 첫 신혼집은 지은 지 25년 된 오래된 아파트였다. 내킬 때마다 흘러나오는 녹물 때문에 모든 수도에 필터를 달아야 하는 것과 외벽이 있는 방을 매일 환기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집에서 처음 알았다.


작은 집의 아일랜드 식탁 위치가 왜 중요한지, 방의 구조에 따라 가구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도 첫 신혼집에서 뼈저리게 배워 나왔다. 집이라는 게 그저 가구와 살림살이를 단정하게 채워놓고 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집이든 사람이든 손길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이런 나에게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다급하게 입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은 ‘엄마’였다. 나보다 당연히 오래 사셨고, 집안 살림에 능숙한 엄마에게 상담을 하면 명쾌한 답이 나오는 날이 많긴 하지만 그에 비례하는 잔소리도 보장되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엄마가 끝집은 안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고집을 부리더니!”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헛돈을 쓰고 그러니!”


혹은 엄마도 모르는 질문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런 답도 나왔다.

“대충 살아!”

대충 살라는 답까지 나오는 날이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쯤이면 나와 남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첫 신혼집에서는 아랫집에 물이 새 우리 집 바닥과 붙박이장까지 모조리 뜯은 적도 있었고, 욕실 공사를 새로 하는 바람에 며칠 동안 호텔 신세를 지기도 했다.


첫 집에서 고된 2년을 지내고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도 사는 동안 별 일이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집의 소소한 구석들이 나를 보챈다. 일단 변기와 배수구가 ‘이제 늙었으니 나를 편히 보내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지난해에는 안방 욕실 샤워부스의 유리문이 떨어지는 바람에 아찔했다. 7년을 사용한 방문 손잡이가 지독하게 잠기는 바람에 온 집안의 손잡이들을 교체했다. 방문이 잠겼을 때 집에 혼자 있었으면 꼼짝없이 갇힐 뻔한 것이다. 예전 세입자가 사는 동안 한 번도 닦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창과 방충망은 물티슈를 갖다 대자마자 엄청난 먼지를 뿜어댔다. 남편보다 팔이 긴 나는 안간힘을 써가며 유리창을 닦았다.


이렇게 집을 손 보고 관리하는 과정이 마치 일곱 살 아이 어르는 것 같다. 일곱 살 먹은 집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다. 꼭 집도 사람 같다.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를 사고 치지 말자, 어지럽히지 말자, 얌전히 있자며 어르듯. 그렇게 집도 어르면서 건강하게 가꿔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결하며 살겠지만, 손 봐야 할 것은 제발 한 번에 하나씩만 나와 줬으면 하고 바라본다.


또 이런 사소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묵묵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해치운 엄마의 지난날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 역시 남은 생만큼 해치워야 할 일들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일곱 살 우리 집 이 녀석, 사춘기 올 무렵이면 나를 얼마나 괴롭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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