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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l 23. 2018

부부의 취향

취향은 조금씩, 천천히 한 방향으로 흐른다.

오만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던 결혼 전, 부질없는 걱정 하나를 꽤 오랫동안 했다.

‘서로 취향이 다른 걸 결혼 후에 알게 되면 어쩌지?’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생활 중에 알게 되는 상대와의 다른 취향이 서로에 대한 권태로 변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서로 멀어지고, 말이 없어지고, 따로 식사를 하고. 그런 슬픈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웃긴 건 남자 친구나 결혼을 이야기하는 상대가 없을 때도 그런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20대 시절부터 김칫국 마시기의 달인이었다.


그래서 이성을 소개받거나 좋은 진전이 보이는 상대가 생기면 요모조모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를테면 나는 tv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상대는 주말이면 늘어져 tv를 본다고 하면 마이너스. 나는 콩나물과 당근을 싫어하는데, 상대가 콩나물국밥이나 당근이 가득한 요리 광이라든가. 나는 커피를 매우 좋아하는데, 상대는 ‘이런 쓴 물을 왜 마시냐’고 핀잔을 주면 고개를 절레절레. 이런 사소한 것을 살펴보고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먹으며 ‘역시 나랑은 안 되겠어.’ 등의 나약한 생각을 해왔다.


남편과는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고, 연애를 시작한 지 일 년을 조금 못 채워 결혼을 했다. 결혼 전날까지 나는 아직 덜 살펴본 게 아닐까, 아직 나와 취향이 잘 맞는지 백 프로 확인하지 못했는데 어쩌나 걱정했다. 어쩌면 콩깍지 덕분에 제대로 살펴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윽고 함께 살기 시작한 우리 부부의 취향은 반쯤은 굉장히 잘 맞고, 반쯤은 너무 다르다. 나와 남편이 잘 맞는 부분은 책을 좋아하고 일식을 좋아하는 것, 탕수육의 부먹과 찍먹에 연연하지 않는 자세, 어른들의 훈계를 극도로 싫어하는 점, 정치 성향, 판타지 영화,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에 집중하는 자세, 침대에서 귤 까먹기를 즐기는 등이다.


반면 다른 부분은 남편은 게으르게 뒹굴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게으름을 몹시 싫어한다거나 남편은 문 꼭 닫고 따뜻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나는 수시로 문을 열어 환기를 즐긴다. 책을 읽어도 나는 문학과 법학을 좋아하는데, 남편은 경제와 철학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결혼생활 중 가장 극명하기 갈리는 취향이 있는데 드라마와 치킨이다.


어젯밤 남편이 내게 제안을 했다.

“여보, 우리 오래간만에 같이 드라마 한 편 시작할까?”

“오! 좋아!”


우리는 종종 재미있는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를 1편부터 시작해 함께 보곤 했다. 미국 드라마 중에는 <슈퍼 내추럴>을 재밌게 봤고, 작년에는 <도깨비>도 주말을 기다려가며 보곤 했다.


어떤 드라마를 볼지 이야기하며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했다. 남편이 고른 작품은 웃음을 유도하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이었다. 나는 심드렁해졌다.

“남 연애하는 이야기가 뭐가 재밌어.”

“연애하는 이야기가 재밌지. 웃기고 기분 좋아지잖아.”

“우리 연애도 재밌었잖아. 우리 연애 생각해.”

“그러는 여보는 무슨 드라마 골랐는데?”

나는 공포, 살인, 범죄, 스릴러, 악마, 귀신이 등장하는 작품을 골랐다. 이번엔 남편이 심드렁하다.

“여보는 뭐 이렇게 무서운 걸 좋아해.”

“응. 난 범죄나 공포 이런 게 재밌더라.”

“이런 건 보면 찝찝하고 불편하잖아.”

“난 귀신 이야기 설레고 좋은데. 밤에 보면 더 좋아.”

“여보는 참 이상해. 공포물에 왜 설레.”

“남 연애하는 얘기보단 이런 게 낫지.”


남편은 양보하지 않고 로맨틱 코미디를 권했다.

“아우, 난 싫어. 가벼운 걸로 보자. 달달하고 평화로운 게 좋아.”

“간질거리게 자꾸 로맨틱을 보재. 나랑 사는 게 이미 로맨틱한데 뭘 자꾸 남 연애에 관심이야.”

“아, 나는 공포 싫다니까!”

“그래 알았어. 그럼 공포 말고 연쇄살인 이야기 어때?”


결국 우리는 자신이 고른 드라마를 우기며 아옹다옹하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극장에 가도 나는 공포물 광인데 비해, 남편은 역사와 스토리가 있고 영상미가 좋은 영화를 고른다. 언젠가 <곡성>을 보며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남편은 모자를 눌러쓰고 “이거 언제 끝나….”하며 괴로워했던 날도 있었다.


제가 원래 버블티를 못 먹었거든요. 그런데 남편 따라 먹다보니 요샌 아주 좋아합니다:)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취향이 있다면 시간의 변화로 인해 일치되는 취향도 있다. 나는 결혼 전부터 치킨을 먹을 때 무조건 ‘뼈닭’이었고, 남편은 무조건 ‘순살’이었다. 남편은 발라먹기 귀찮게 왜 자꾸 뼈 있는 것을 시키느냐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뼈에 붙은 살을 포크로 깨끗하게 발라내는 쾌감이 좋아. 나중에 나 치아 약해지고 턱관절 약해지면 그때 순살 시켜줄게.”라며 뼈닭을 고수했다.


그랬던 내가 치아가 약해진 건 아니지만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날부턴가 닭뼈와 살 사이의 핏줄을 눈으로 확인하면 입맛이 딱 떨어지고 닭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아 뼈닭을 못 먹게 된 것이다. 나이 먹으면 입맛이 바뀌고, 잘 먹던 것도 역해져 못 먹게 된다는데 그런 변화가 벌써 찾아올 줄이야.


그래서 이제는 남편의 취향에 맞게 고분고분 순살 치킨을 주문한다. 순순해진 나를 보며 남편은 고소하단 표정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취향이 어떤 이유로든 바뀌게 된다는 점은 우리 부부의 일상에 좋은 영향을 주니 말이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다른 취향은 얼마든지 있다. 결혼 전 ‘서로 취향이 다른 걸 결혼 후에 알게 되면 어쩌지?’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과거의 나에게 편지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을 알려주고 싶다.


결혼은 어차피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 취향도 천천히 한쪽으로 향한다는 점. 드라마를 고르다 토닥거리고 치킨을 고르며 신경전을 벌여도 결국 닮아가는 게 부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결혼 전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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